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는 최근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가상화폐 마이닝 반도체 관련 매출은 당초 예상치의 5분의 1인 1800만달러(약 202억원)에 그쳤다. 가상화폐 마이닝 컴퓨터 전용 GPU의 수요 감소 탓이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수요의 확대가 평소보다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슈퍼 사이클론이 가상화폐의 가격 침체를 불러왔고, 이는 곧 GPU의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과 함께 "사업 무대의 근거를 잃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의 발걸음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당초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가상화폐 마이닝의 수요 증감이 '슈퍼 사이클론'을 좌지우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급성장의 후유증에 따른 보상 저하로 인한 고성능 그래픽카드의 높은 가격은 가상화페 마이너들을 채굴장에서 급속도로 멀어지게 했다.
가상화폐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2010년 상반기 무렵에는 PC에 정통한 개인이 취미와 실익을 겸해서 마이닝을 즐겼다. 또 개인 단위에서 그룹 단위로, 이후 기업 단위로 변모하면서 마이닝 업체들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 마이닝 시장 80% 이상을 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확대했다. 이어 2016년에 접어들면서 전기 요금이 싼 북유럽과 아시아 내륙부 등으로 마이너들의 눈길이 쏠리면서 기업의 막대한 자금이 유입됐다. 이때부터 마이닝 사업은 데이터 센터 수준의 대형화로 전개됐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중국이 가상화폐를 통한 자금모집(ICO)을 전면 금지하고,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는 등 규제 정책을 택하면서 중국 내 가상화폐 거래자들의 투자 열풍은 식어갔다. 반면, 일찌감치 가상화폐를 공식 인정한 일본은 기회를 틈타 세력을 더욱 넓히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GMO 인터넷이나 SBI 홀딩스, DMM 등이 마이닝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비트코인의 경우 마이닝에 따르는 보상은 반감기라는 구조에 의해 약 3년에 한번 꼴로 반감된다. 따라서 반감기를 넘는 시기에 비트코인 마이닝에 대한 보수는 감소할 수밖에 없으며, 긴 안목으로 보면 앞으로도 보상은 더욱 감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치가 높아지면 그만큼 보상이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마이닝은 이러한 경제적인 원칙과는 반대되는 셈이다. 즉 앞으로 마이닝을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 등 합리성이 요구된다. 결국 GPU 반도체 가격이나 전력 비용을 줄여야만 마이닝 사업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마이닝 작업에 있어서 2017년부터 최근까지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업체가 바로 엔비디아와 AMD였다. 사실 GPU는 그래픽 처리 장치라는 네이밍 그대로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핵심부품으로, 3D 등을 고화질로 그리거나 4K 동영상 등 고화질 동영상을 편집하거나 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본래의 용도다. 하지만 계산 능력이 높다는 장점으로 인해 본래의 목적보다는 가상화폐 마이닝에 훨씬 많이 이용됐다. 수요가 늘어난 반면 한정된 공급량에 따라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채굴자가 늘어나면서 전력 대비 채굴량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결국 고성능 그래픽카드의 비용도 뽑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서 크립토 골드 러시는 서서히 시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갑작스런 붕괴에 투자자들이 망설이면서 수요와 수익 급감으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최고가를 구사하던 그래픽카드 가격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치가 무너지면, 반도체 가격이 덩달아 무너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 셈이다.
김길수 기자 g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