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대각(大覺)을 이룬 직후 “내가 깨달은 것은 남들에게 들려주어도 헛일이다. 내가 깨달은 법은 너무도 깊고 미묘해서 애욕(愛慾)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지로 인하여 고해(苦海)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중생들을 도저히 그냥 놔둘 수 없기에 가르침을 펴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석가모니의 도를 배우겠다고 몰려들지만 그들이 석가모니의 도의 정수를 깨닫기 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습니다. 이에 계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규칙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아직 지각이 발달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규칙이 왜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점차 자라나면서 규칙이 왜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계율을 통해 하늘의 지혜를 얻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이에 관해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로마서 2장 18절은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정혜(戒定慧)의 가르침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지혜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잠언 9장 10절, 골로새서 1장 9절). 요컨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인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시대와 성령시대를 구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율법시대에 살던 사람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습니다. 시편 147편 19·20절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석가모니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과 인간 본성에 하나님의 법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4장 16절은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2장 20절은 율법 안에 참된 지식이 있고 율법이 진리의 모본이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또 시편 19편 7·8절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蘇醒)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불교의 계율(戒律)과 성경의 율법(律法)의 공통점이 보이십니까? 강정민(변호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