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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은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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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파파라치]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은 사람들에게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하늘길을 뚫어 돈을 번 기업들이 있다. 최고의 비행 서비스라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오르내린다. 하늘이 아니라 우리들 머리 꼭대기에서 올라앉은 것이다. 그들은 근사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호사를 누렸다.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 가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처럼 세상 사람의 박수까지 받는 취향과 교양 수준을 병행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아니, 너무 잘사는 것이 미안해서라도 남들에게 미안한 표정과 좋은 일 몇 번쯤 선심 쓰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그런데도 그들은 악다구니와 몰염치로 일관했다. 세상사 모를 일이어서 나도 그 꼴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남에게 미치는 고통을 무시했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해나 배려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들려줄 말이 있다.

공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노나라 사람이다. 칼과 창이 난무하는 시대였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세상을 돌며 인간의 선량함과 사람에 대한 예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가와 교육가로서 그의 일생은 비루했다. 변변한 벼슬 자리하나 얻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제자는 그의 생각이 비현실적이라고 조롱했다. 그런 그가 2500년이 넘도록 추앙 받는 이유는 뭘까? 나는 성북구의 한 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그의 진면목을 우연히 발견했다. 군대를 다녀온 분이라면 수긍할 것이다. 전쟁터에선 사람보다 말이 비싸다. 하루는 공자의 집에 불이 났다. 당신이라면 뭐라고 했을까? 공자는 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사람이 다쳤는가?”라고 물었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인이 대답하자 “그럼 되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또 다른 일화 한 가지. 자신이 이미 잘 아는 제사의 절차를 무덤을 지키는 묘지기에게 거듭 물었다. 그 이유를 제자가 묻자 “그것이 예다.”라고 답했다고 전한다. 공자 사상의 핵심은 서(恕)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들이 나처럼 공자를 만났었더라면.
인문은 인간이 겪는 만고풍상의 기록이다. 그 영양분도 그만큼 다양하다. 조르바의 원초적 생명력은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자의 호탕한 개방성이다. 고흐나 말러의 작품은 인생의 고통을 버텨낼 뽀빠이 시금치다. 광고인에게도 인문은 필수적이다. 대중성을 확보한 시나 소설, 영화나 미술의 요소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공감을 유도할 좋은 재료들이다. 자, 후안무치의 그들에겐 어떨까? 더 없이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다. 공자든 장발장이든 타인의 감정을 역지사지하는 훈련이 된다. 그러다보면 수치심을 아는 인간이 될 것이다. 칼 세이건은 지구에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분명 그들의 문명은 우리보다 뛰어날 것이고 우리를 위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명 발전의 동력이 되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사회적 지능(Social Intelligence hypothesis)이 뛰어날 테니 지구인을 위협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디지털의 초연결망이 열어가는 연대와 결속의 시대는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