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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수련시절, "죽어도 무대 위에서 죽는다" 말 끼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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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수련시절, "죽어도 무대 위에서 죽는다" 말 끼고 살아

[미래의 한류스타(45)] 웨이란(魏然,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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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의 '중重 경輕, 그 사이'
하남에서 불어온 바람/ 소림사의 기운과 은나라의 전설이 비파를 타고 실려 온다/ 천안문 광장의 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동방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배나무 밭에서 꿈을 일구어간다// 녹녹치 않은 배 밭 일구기/ 황혼녘에 바라보는 고향오가는 구름/ 자신을 연마하는 줄 이은 담금질/ 뜨거운 열기와 땀방울이 플로어에서 이인무를 펼친다// 그리운 빛깔, 낯익은 꽃들을 위한 춤/ 범선의 허리로 다가오고/ 팅커벨의 램프를 든 소녀는 오늘도 춤을 춘다

웨이란(Weiran, 魏然)은 아버지 웨이웨이(魏伟)와 어머니 양군(杨群) 사이의 두 딸 중 장녀로 1995년 신양에서 태어났다. 신양시 제일실험초등학교(信阳市 第一实验小学), 베이징 중앙음악대학부속(中央音乐学院附属) 예중고 무용학과, 베이징 수도체육대학교 무용학과(首都体育学院, Capital Institute of Physical Education)를 졸업하고, 베이징소년궁 무용강사(2013~2014년) 경력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발레전공, 지도교수 조기숙)에 재학 중이다.
​두 살 때부터 춤이 좋아 몰입
음악만 틀면 흥겹게 몸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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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의 '중重 경輕,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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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의 '중重 경輕,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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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의 '중重 경輕, 그 사이'

웨이란은 아홉 살에 무용을 시작했다. 본 투 댄서(Born to Dancer), 그녀는 춤을 너무 좋아해서 두 살 때부터 음악만 틀면 춤을 추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접한 춤은 자신의 전공이 되었고, 운명으로 여기고 있다. 한 살 밑인 여동생 웨이위예(魏悦)도 춤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예중, 예고 시절에는 아침 6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문화수업 시간을 빼고 계속 춤을 춰야 했다. 고강도 수업에 견뎌내지 못한 학생들은 반에서 여섯 명이나 자퇴할 정도였다.

험난한 무용 수련시절,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오른 발 골절 같은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 있으면 아픔을 못 느낀다는 웨이란은 대학 입시 마지막 1년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밥도 안 먹고 춤을 출 정도로 집중력과 인내력을 보여 주었다. 부상을 털고 완전히 회복된 발이지만 다시 다칠까 봐 춤을 출 때 무의식적으로 다친 발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녀는 아직도 ‘죽어도 무대 위에 죽는다’라는 말을 끼고 산다.

움직임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부상당했던 발’, 밝히고 싶지 않은 정신적 상처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춤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웨이란은 자신의 안무작을 통해 자신이 과감하게 할 수 없었던, 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주면서 자신감을 되찾는다. 춤이 자신에게 도전의 고통을 주었지만 춤을 대하는 자신의 영적 자세, 그 열정에 대한 확신, 자신의 의지를 다잡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쓰린 흔적을 수련의 도구로 쓰는 바람직한 태도를 보인다.
자연스럽게 춤은 운명으로 여겨
한 살 아래 여동생도 춤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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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의 '기억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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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의 '기억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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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의 '기억의 흔적'.

웨이란이 아홉 살 부터 십 오년 간 춤추는 동안 그녀를 조련한 스승들은 예중, 예고 시절 무용가의 꿈에 힘을 실어 준 렌지아허(RENJIAHE, 仁家何)・조우위(ZHOUYI, 周怡)・허리우(HELIU, 何柳),・리우지아(LIUJIA, 刘佳), 대학 시절 춤추는 방법론을 지도한 페나이윤(FENAIYUN, 冯爱云), 야노유안(YAOYUAN, 姚远), 왕지페이(WANGZIFEI, 王梓菲), 리앙(LIANG, 李昂), 유멩루(YUMENGLU, 李昂), 왕진(WANGJIN, 王锦) 등 베이징무용대, 수도사범대, 허베이예술대, 중앙민족대 출신 교수들이었다.

웨이란이 제일 아끼는 작품은 이대 졸업 작품에 참가한 작품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자기 나라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자신이 쓸 수 있는 도구,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들이 모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웨이란에게 소중한 경험이 된 것은 작품 준비 과정에서 배우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다. 그래서 그녀의 석사 졸업 작품 <중重 경輕, 그 사이...>는 자신이 제일 아끼는 출연작이 되었다.

평생 춤출 수 있는 것이 꿈인 웨이란은 춤만 좋아하고 계속 해왔기 때문에 다른 장르는 춤을 위한 소재로만 기능하며, 춤을 좋아하고 물입하고 상처받더라도 계속 예술적 역량을 쌓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출연하거나 안무한 대표작은 <欢鼓, 환고>, <중重 경輕, 그 사이...>, <岁月如歌, 세월여가>, <红手绢>, 홍수건, <우리>, <咏荷, 영하>, <苗凳情, 묘등천>, <唐婉, 당완>, <筷子舞, 저가무>, <Contact & Connaction>이다.

춤이 인생에 도전 고통 주었지만
쓰린 흔적을 수련의 도구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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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魏然,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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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魏然,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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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란(魏然, 발레리나)

웨이란 안무의 <중重 경輕, 그 사이...>는 자신을 경・중에 비유하여 무용수인 자신의 부상과 이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혼돈을 극복해내는 이야기다. 청소정 안무의 <기억의 흔적>은 살아있는 기억과 사라진 기억을 오간다. 그 흔적들을 살피며 기억을 더듬어 보는 내용이다. 웨이란 안무의 <위구르족 춤>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위구르족 여성의 유연하고 아름다운 몸매, 눈빛을 강력하게 전달한 작품이다.

웨이란은 디키 제임스(Diqui James)가 연출한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의 창작력을 존중한다. 무용수들이 다 하고 싶은 공연, 모든 공간이 무대가 된 상상력 충만한 작품,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경계를 허문 작품이다, 웨이란의 무용공연에 대한 사고의 폭을 넓혀준 작품이다. 그녀가 ‘르네브 쇼’, ‘태양의 서커스’, ‘미스 사이공’ 같은 공연이나 보다 많은 버라이어티한 공연들은 오히려 그녀의 미니멀한 작품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된다.

웨이란, 자기 소신이 뚜렷한 무용 연기자이며 안무가인 중국 유학생이다. 그녀가 작은 꿈들을 하나씩 일구어가는 모습들은 지혜의 신 아테나를 닮아있다. 튤립처럼 붉은 열정이 한국에서 숙성되어 한국의 춤을 알리고, 자신의 특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녀는 청순한 이미지처럼 한국과 중국 춤의 화려한 희망의 새 장(場)을 열 미래의 한류(韓流, 漢流) 스타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자신을 성숙시키는 유학의 경험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되길 기원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