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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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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민의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공자·소크라테스·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5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vs.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강정민(변호사·소설가)
강정민(변호사·소설가)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천국은 육신이 죽은 후에 가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어, 이거 뭐야.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말 아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이 천국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경전에 기록된 말씀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후 맥락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묻자 위와 같이 대답합니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고 물었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또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대한민국, 미국, 영국 등의 나라들처럼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같습니다. 또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유불성(皆有佛性), 즉 모든 중생 안에 불성이 있다는 만유불성(萬有佛性)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석가모니와 예수가 같은 가르침을 편 것일까요?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완전히 다른 의미라는 쪽에 비중이 쏠리는 듯합니다. 예수는 천국이 ‘네’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너희’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천국이 네 안에 있다고 했다면 일체유심조와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스승과 제자, 친구, 동료, 선후배 등등. 어떤 관계든지 원만하고 문제가 없을 때에는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생겨 관계ㅖ가 틀어지면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관계의 회복이 바로 천국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는 관계의 회복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다른 사람과 화목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봐야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가리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 의해 너와 나 사이에 가로막힌 담이 허물어졌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선악을 각자 스스로 판단하는 원죄로 인하여 너와 나를 구분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너와 나 사이에 두꺼운 담장이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원죄에서 비롯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갈등상태가 바로 중간에 막힌 담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선악을 각자 판단하되 각자 오류가 없는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절대자가 대신 판단해 주는 방법입니다. 불교와 유교는 전자의 방법을, 기독교는 후자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전자를 자력구원론(自力救援論), 후자를 타력구원론(他力救援論)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타력구원론의 요지는 “하나님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선악을 판단하시고 말씀으로 계시하여 주셨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선악을 분별함으로써 원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예수의 선포와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말씀이라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까? 강정민(변호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