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칼럼] ‘삼겹살=돈’

기사입력 : 2018-11-12 06:00 (최종수정 2018-12-1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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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겹살 자료 사진=뉴시스
[글로벌이코노믹 김영인 편집위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소금으로 만든 돈’ 이야기가 나온다. 오늘날의 중국 서창(西昌)인 건도(建都)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돈이다.

“소금물을 끓여서 틀 속에 넣으면 빵 덩어리처럼 아래는 평평하고 위는 둥그런 모양이 된다. 무게가 반 파운드 정도 되게 만든다. 그런 다음, 뜨거운 돌 위에 올려놓고 말려서 단단하게 굳힌다. 그 위에 군주의 인장을 찍는데 군주가 임명한 관리가 아니면 누구도 이런 돈을 만들 수 없다. 이것이 소액화폐로 쓰인다.”

이 ‘소금 돈’은 화폐의 기능 외에도 다른 용도가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소금 돈’이 부서져서 조각났을 때는 음식에 넣어서 먹기도 한다고 밝혔다. ‘소금 돈=식용 돈’이었다.

한나라 무제 때에는 ‘가죽 돈’을 만들었다. 임금의 전용 사냥터에서 사육되는 흰 사슴 가죽으로 만든 돈이었다. 세계 최초의 ‘가죽 돈’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털가죽을 찾아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바다 건너 아메리카의 알래스카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가죽=돈’이었다. ‘가죽 돈’은 필요할 경우 몸에 걸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유럽 사람들은 외로웠다. 가정이 필요했다. 물론 원주민 처녀들은 가는 곳마다 넘치도록 많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교도’였다. 이교도는 신방을 꾸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유럽에서 처녀를 ‘수입’하기로 했다.

최초로 90명의 처녀들이 신대륙에 도착했다. 1인당 120파운드의 담배를 지불하고 모셔온 ‘비싼’ 처녀들이었다. 120파운드의 담배는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오는 선박의 운임과 같은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담배=돈’이었다.

우리도 ‘담배=돈’인 적이 있었다. 조선 인조 임금 때 소의 전염병이 돌았다. 나라 안의 소가 거의 전멸하는 바람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별 수 없이 몽골에서 소를 수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값을 치를 수입대금이 문제였다. 호란을 겪으면서 재정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그 해결 방법이 ‘담배’였다. 담배가 추위를 견디고 정신을 집중하는 데 좋다며 꼬드겨서 소값으로 지불한 것이다. 당시 수입한 소는 181마리였는데, 우리나라의 소는 이때 들여온 소가 불어나서 퍼진 ‘후손’이라고 했다. 우리는 담배 덕분에 수많은 백성을 살릴 수 있었다.

반면, 몽골사람들은 골초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배운 담배로 기발한 담배를 만들었다. 냄새를 맡는 ‘코담배’다. 라마교 신자에게 담배 피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자 그 대신 냄새를 맡게 된 것이 코담배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21세기 중국에서 또 다른 돈이 생겼다. ‘돼지고기=돈’이다. 돼지는 한자로 돈(豚)이니까, ‘豚돈’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삼겹살=돈’이다.

중국의 어떤 돼지사육업체가 회사채의 이자를 현금 대신 돼지고기로 지급하기로 했다는 보도다. 아프리카의 돼지 열병이 확산되면서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지면서, 회사채 이자를 돼지고기 선물세트나 햄 등으로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채권 투자자들은 돼지고기를 사러 슈퍼까지 가는 수고를 덜 수 있게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김영인 편집위원 young@

김영인 기자(데스크)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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