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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하이네켄의 사심 가득한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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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하이네켄의 사심 가득한 캠페인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나의 형이 떠나갈 때 나에게 술을 많이 먹지 말라 하신 것은 내가 일을 그리칠까 염려하여 하신 말씀이다. 여러분들은 오늘만 술에 취하도록 마음껏 마시고 내일부터는 모두다 술을 끊고 나를 도와 성을 지키시오. 그럼 오늘 실컷 마십시다.”

먹장 낯, 고리 눈에 ‘다박수염’을 한 장비가 금주령을 내린 후 서주성을 맡기고 떠난 큰형님 유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술잔을 잡아 들었다. 내일부터는 못 먹으니 오늘까지만 먹겠노라는 다짐의 술판이었다.
‘먹장 낯’은 마치 먹을 갈아놓은 듯이 시커먼 얼굴을 말한다. ‘고리 눈’은 눈 주위로 흰자위가 둥근 고리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다박수염은 다박솔처럼 짧고 억세며 더부룩한 수염을 묘사한 것이다. 대충 그려진 장비의 겉모습에서도 술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 장비가 주는 술을 장수들은 유비의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아니 먹을 수 없었다. 헌데 유독 장비의 술을 거절한 장수가 있었다. 거절하기보단 술이 체질에 안 맞아 입 근처도 대지 못했던 조표가 그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술이 몸에 받지 않아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많은 장수들 앞에서 자신의 면이 서지 않았던 장비는 억지로 조표에게 술을 먹을 것을 권했고, 조표도 어쩔 수 없이 한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한번 술을 먹기 시작하면 술독을 부셔야 직성이 풀리는 장비인지라, 조표에게 억지 술을 먹인 후에도 수십잔의 술을 스스로 먹고 장수들에게도 일일이 따라주었다. 술잔이 또다시 조표에게 이르자 이번에도 조표는 사양하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말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
그 말에 장비는 주사를 부리기 시작한다.

“네놈이 나의 장령(將令)을 거역하니 곤장 100대를 맞아야 한다.”

장비의 매질에 조표는 결국 사위 여포를 뀌어 서주성을 차지해 버렸다. 유관장 삼형제가 도원결의 후 첫 근거지로 얻은 서주를 2년 만에 잃은 것이다. 여포가 서주성을 공격하자 장비는 술에 취해 유비의 가족도 내버려둔 채 유비한테로 도망쳐 왔다.

술을 잘 마시는 장비지만, 술로 인해 일을 그르치게 됐다는 삼국지 내용 중 유명한 일화다.

시간이 흘렀어도 술에 의한 실수는 여전하다. 실수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얼마 전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당한 윤창호군이 유명을 달리했다. 음주운전으로 인해 윤군을 잃은 윤군의 친구들은 음주운전 처벌강화를 위한 이른바 ‘윤창호법’ 입법시킨다. 음주운전에 대한 피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윤창호법이 입법되기까지 음주운전으로 인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이들이 적잖다. 조표 같은 피해자들이 많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다만 규제가 더 생기면서 술에 관대했던 사회적 문화도 점점 변화고 있다.

그렇잖아도 술을 마시는 이들이 줄어 주류업체의 매출이 바닥이다. 맥주 업체들은 가격을 크게 낮춰서라도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위스키 업체는 수입맥주에 입맛을 다시고 있다.

주류업체는 정부의 규제가 당연히 못마땅하다. 볼멘소리를 낼 수도 없다. 음주운전은 누군가의 생명에 위협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규제는 당연하다.

낯 간지러운 것은 이런 규제에도 할 건 다 한다는 것이다. 수입맥주업체 하이네켄은 얼마 전 음주운전 금지 영상을 제작해 선보였다. 영상에는 “운전 하실 건가요? 절대 술 마시지 마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전설의 레이서 ‘재키 스튜어트 경’이 등장한다. 그에게 술을 권하지만 운전을 해야 하니 술은 다음에 먹겠다는 영상이 여러 번 반복된다.

음주운전 금지 캠페인이지만 하이네켄 로고의 술병은 매 장면마다 노출되면 상당한 홍보효과를 이끌어 냈다. 음주운전 금지 캠페인도 하면서 자사 술도 홍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는 분명하다.

이래서 장비가 서주성을 빼앗긴 것이다. 음주운전 금지라는 캠페인을 명분 삼아 술을 홍보하는 행위야 말로 근절돼야 한다./ 조규봉 생활경제부장


조규봉 기자 ckb@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