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부시는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아버지다.
특히 그는 조종사 자격을 딴 후 해군 최연소 조종사를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58회 출격했다. 부시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비행기를 조종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전역 후 부시는 공부를 마치고 가문을 일으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1945년 1월 그는 바바라 피어스와 결혼, 장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차남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등 4남2녀를 두었다.
1952년에 코네티컷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아버지 프레스콧 부시의 뒤를 이어 조지 부시 역시 공직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텍사스 하원의원으로 두 번의 임기를 마쳤고 상원의원 선거에 두 번 도전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후 그는 UN 대사, 공화당 국가위원회장, 중화인민공화국 미국연락사무소장, 중앙정보국장 등 일련의 고위 공직을 두루 거쳤다.
로널드 레이건 시절 부통령을 지낸 부시는 1988년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돼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시는 40여 년에 걸친 냉전 종식과 함께 파나마운하와 현지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던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의 부패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미군병력을 파견했다. 노리에가는 마약거래 혐의로 미국 법정에 서게 되었다.
군사·외교적 승리로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경제침체, 도심에서의 폭동, 만성적인 재정적자 등 국내 악재를 감당할 수 없어 1992년 민주당후보였던 윌리엄 클린턴에게 패했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