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칼럼] '빚쟁이 달력'

기사입력 : 2019-0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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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이정선 기자]


옛날 그리스에는 묘한 직업이 있었다. 돈을 빌려간 사람에게 이자를 갚으라고 매달 통보하는 직업이다. 이들은 돈 빌려간 사람을 매달 ‘불러들여서’ 이자를 독촉했다는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로 팔려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부른다’는 그리스어 ‘Kalends’가 로마시대에 들어와서는 매달 초하루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자를 매달 초하루에 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빚이 많은 사람들은 매달 초하루만 되면 끔찍했을 것이다.

이 ‘Kalends’라는 그리스어에서 ‘Kalendarium’ 또는 ‘Calendarium’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돈을 빌려준 장부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를테면 ‘대출 장부’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영국으로 넘어가서 ‘Calendar’, ‘달력’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시간은 돈’이라며 돈을 각별하게 따지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달력=돈’이었다.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은 달력 보기가 무서웠을 것이다.

우리 달력도 돈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해가 바뀔 때가 되면 관상감에서 이듬해의 달력을 만들어 대궐에 바쳤다. 그러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이를 적당하게 분배해줬다. 달력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임금의 옥새를 찍었다. 신하들은 임금이 하사한 달력을 다시 친척과 친지 등에게 나눠줬다.

그렇지만 달력은 귀했다. 얻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그런 집에서는 종이를 구해, 달력을 직접 베껴서 걸어놓기도 했다.

약삭빠른 사람에게는 이럴 때가 바로 ‘기회’였다. 달력을 미리 확보해놓았다가 대감이나, 사대부 집의 유능하다고 소문난 자제 등에게 생색을 내며 선물하는 것이다. 귀한 달력이라 무척 반가운 선물이었다.

물론 이유도 없이 달력을 바칠 리는 없었다. 달력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잘 풀리면 혹시 무엇인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선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반대급부’를 노리는 ‘뇌물 달력(?)’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희망대로만 풀릴 수는 없었다. 값진 달력을 받은 사람이 과거 급제에 실패하고, 출세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아까운 달력만 날리고 마는 것이다.

달력을 날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뒤돌아 앉아서 ‘달력 도둑(曆賊)’이라며 험담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뒤통수가 가려웠을 만했다.

빈부격차가 최악의 상황으로 벌어진 가운데, 가계 빚은 작년 9월말 현재 1514조4000억 원이다. 정부가 일부 자영업자 등의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서민들은 올해도 이자 부담이 벅찰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소득 증가율이 여전히 부채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이자까지 늘어나는 추세라 더욱 그렇다. 올해 경기가 좋아질 구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더더욱 그렇다. 서민들에게 새해 달력은 어쩌면 한숨 나오는 ‘빚쟁이 달력’이다.


이정선 기자 jslee@g-enews.com

이정선 기자 js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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