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장영자 덕분에 생긴 제도 3가지

기사입력 : 2019-01-13 09:19 (최종수정 2019-01-13 10:35)

  • 인쇄
  • 폰트 크기 작게
  • 폰트 크기 크게
공유 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구글플러스 공유하기




center
[글로벌이코노믹 이정선 기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12일 미모의 사기범 장영자(74)의 삶을 방영,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속칭 ‘장영자 사건’, 또는 ‘장여인 사건’으로 일컬어졌던 ‘거액어음사취사건’은 1982년 봄에 불거지면서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시 사고 금액은 3276억 원에 달했다. 경제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던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규모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검토된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금융실명제, 또 하나는 예금자보호제도였다.

금융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해야 하고, 그래도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예금자에게 예금을 보상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예금자보호제도는 사건이 터진 이듬해인 1983년 ‘신용관리기금’이 발족하면서 이루어졌다.

금융기관들이 기금을 출연, 적립해두었다가 스스로 돈을 내주지 못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 기금에서 돈을 갚아주기로 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 사기꾼’ 덕분에 생겼던 것이다.

예금자보호제도가 있기는 했다. 지급준비율제도다. 은행 예금 가운에 일정 부분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예치하도록 하는 제도다. 은행이 예금을 한은에 강제로 예치하면 ‘지급불능’ 사태를 일부 방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용관리기금이 추가된 것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금융실명제’는 ‘반대논리’ 때문에 시간을 끌다가 1993년에야 실현될 수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이를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도 많은 후유증이 있었다. 실명제가 싫은 돈은 꽁꽁 숨어버렸다. 일부 돈은 실명제를 할 바에는 써버리자는 풍조도 생겼다. 이는 ‘과소비’로 이어졌다. 또 일부 돈은 ‘투기’로 돌아서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만연하기도 했다.

더 있었다. 장영자 사건을 계기로 ‘순환보직제’가 도입됐다.

금융기관 직원을 한 자리에 오래두면 사고를 낼 우려가 있으니 보직을 자주 바꾸도록 한 것이다. 금융기관 직원을 송두리째 ‘먹튀범’ 취급했던 희한한 조치였다. 이 조치로 금융기관 직원은 2∼3년마다 보직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순환보직제는 ‘실패작’이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금융사고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치지 않았을 정도가 아니라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영동개발사건, 광명사건 등등이다.

순환보직제가 오히려 금융시장의 퇴보를 불러오고 말았다. 보직을 자주 바꾸다 보니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직원은 일을 익힐만하면 다른 부서로 옮겨야 했다.

더구나 당시는 금융시장의 개방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한 사람의 전문가가 아까운 시점에 나온 ‘거꾸로 정책’이었다.


이정선 기자 jslee@g-enews.com

이정선 기자(데스크) jslee@g-enews.com

오늘의 핫 뉴스

실시간 속보

금융 최신기사

경제 많이 본 기사

가장 많이 공유 된 기사

생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