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기업을 향해 ‘재벌개혁’을 외쳐왔던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공정경쟁’ ‘경제불평등 해소’ 등을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한껏 낮추고 있다. 오히려 ‘기업 활력’에 방점을 찍었다. 최근 고용 참사와 경제 부진 등 현재 경제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삼성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404만 주 처분을 시작으로 하반기까지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하면서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다. 이로써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 전반전은 마무리됐다. 이제는 삼성생명의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92%의 처리 여부로 시선이 쏠린다. 정부는 금산분리(금융·산업자본의 소유 및 지배금지)규제를 들어 매각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 20%가까이 육박하던 총수 일가 등의 지분이 11%대로 떨어져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어, 쉽사리 수용하기는 힘들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해법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2%를 삼성물산에 매각하는 방식이 있다. 이 경우 산업자본인 삼성물산이 6.65%가 돼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그러나 보유 자회사의 지분가치가 자산총액의 50%를 넘으면 지주사로 강제전환되는 공정거래법 규정이 걸림돌이다.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삼성전자 지분율을 20% 이상 확보해야 한다. 40조원이란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현실화가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자금 확보를 위해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지분율 43.4%)등 다른 자회사 주식을 팔아야 하지만 분식회계 논란과 삼바를 삼성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만큼 쉽지 않다.
올해 본격적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며 경영 신호탄을 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무산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연내에 완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연내 착공 호재로 경영 발걸음을 한층 힘이 실리고 있지만 지배구조 개편은 올해 정 수석부회장의 심판대로 꼽힌다.
주요 그룹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초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시장에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각각 인적분할해 합병한 뒤 지주회사로의 전환 △현대글로비스를 지주회사로 삼고 현대글로비스의 현대모비스 지배력을 확대하는 방안 등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다.
SK그룹은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이 현실화할지가 주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중간지주회사로서 투자부문(중간지주)과 사업부문(SK텔레콤)으로 물적분할한 뒤 투자회사가 SK하이닉스를 소유하는 구조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텔레콤을 정보통신기술(ICT) 중간지주회사로 만들어 SK텔레콤 통신사, 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ADT캡스, 11번가 등의 자회사를 투자지주사 밑에 두는 시나리오다.
SK텔레콤이 중간지주회사로 전환되면 SK하이닉스가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서 사업확대를 보다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M&A(인수합병)하려면 해당 회사의 지분 100%를 확보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SK㈜의 손자회사다.
LG그룹은 계열분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원칙을 따르는 LG가(家)는 승계가 완료되면 계열 분리를 해 왔다. LS, LIG, GS, 희성그룹 등도 이러한 원칙에서 계열분리가 됐다.
현재까지 계열분리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구본준 부회장이 LG디스플레이나 LG상사, 혹은 LG유플러스 등을 따로 떼어 나갈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남곤 유안타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속세는 확정됐고 계열분리 이슈는 단기간에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철 기자 minc07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