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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칼럼] “오랑캐 땅에도 봄은 오고 꽃도 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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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칼럼] “오랑캐 땅에도 봄은 오고 꽃도 피는데…"

김형근 편집위원
김형근 편집위원
[글로벌이코노믹 김형근 편집위원] 꽃샘추위는 말 그대로 꽃을 시샘하는 추위다. 원래 꽃샘 추위는 대동강의 얼음도 풀린다는 우수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편다는 경칩 사이의 추위를 말한다. 바로 지금 쯤이다. 이 때 추위가 닥치면 봄을 준비하는 식물에 타격을 주어 정말 개화기가 늦어진다.

원래 문학이라는 게 뻥이지만 그 속에는 늘 운치와 묘미가 있다. 우리의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질투, 배신, 분노, 만남과 이별이 함께 하면서 수천년 동안 우리의 삶을 살찌게 해왔다. 아름다운 여성을 소재로한다면 그 뻥의 묘미와 운치는 더욱 깊어진다.
중국의 옛 문장가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일컬어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침어는 춘추시대 월 나라 미인 서시(西施)를 지칭하는 말이다. 서시의 눈부신 미모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리고 가라앉았다는 말이다.

그녀는 뱃놀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서시는 원래 구천의 애첩이었다.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망하여 굴욕을 당할 때 서시를 헌납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유명한 고사의 중심에 서시가 있다.

그러면 낙안은 누굴 지칭할까? 중국 한나라 원제(元帝)에게 후궁들이 많았다. 그래서 수천 명이 넘는 후궁을 하룻밤 선택하는데 직접 간섭해 얼굴을 보고 채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중화가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도록 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후궁을 낙점했다.

당시 절세 미녀였던 왕소군(王昭君)이 뇌물을 주지 않자 화가가 그녀의 얼굴을 매우 추하게 그려 바쳤다. 당시 한나라는 잦은 흉노족의 침입으로 귀찮을 지경이었다. 흉노의 왕이 한나라의 미녀를 왕비를 삼기를 청하자 황제는 추녀로 잘못 알고 있던 왕소군을 그에게 보내기로 약속했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나는 날 황제는 처음으로 왕소군을 실제로 보게 됐다. 격노한 왕은 왕소군을 추녀로 그린 그 화가를 죽여버렸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야 했다. 할 수 없이 흉노에게 시집가게 된 재주와 미모가 출중한 왕소군은 버림받아 오랑캐 땅으로 가는 서글픈 심정을 연주했다.

그 구슬픈 그 소리와 처연한 아름다운 모습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개 짓을 잊어버리고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서 공중으로 날다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뜻의 낙안(落雁)이라는 말이 생겼다. 아름다운 여자의 자태를 의미한다. 뛰어난 붓글씨를 평사낙안(平沙落雁)이라고도 한다. 모래사장에 살며시 내려앉는 기러기의 자태다.
왕소군은 역대 중국의 4대 미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춘추전국시대 월 나라의 미녀 서시,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의 부인 초선(貂蟬), 그리고 당나라 현종의 후궁 양귀비가 여기에 포함된다.

초선의 미모가 얼마나 아름다웠든지 달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고 해서 폐월(閉月)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이 양귀비의 미모를 보고 부끄러워 꽃잎을 오므라들었다고 해서 수화(羞花)라는 말이 생겼다. 미인을 지칭하는 침어낙안(沈魚落雁)과 폐월수화(閉月羞花)의 고사가 이렇게 생겼다.

훗날 구전문학으로 시와 소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는 왕소군이다. 과거에 내려오는 전설을 각색했다는 주장도 많다. 또한 중국과 흉노와의 갈등 속에서 생긴 일화일 수도 있다. 최근 왕소군이 중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녀의 충정이 어린 애국심 때문이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해석하자면 '오랑캐 땅이라 해서 화초가 피지않겠는가? 그러나 봄이 왔지만 봄 같지가 않구나' 다시 말해서 오랑캐 땅에도 화초가 피지만 정 붙이지 못하는 이역 땅에서 꽃을 대하니 봄이 되어도 봄날 같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나 정취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마음이다. 이후 사람들은 꽃샘추위를 왕소군의 조국에 대한 애착과 한이 서린 원망으로 표현했다.

봄의 기운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생명이 움트는 봄의 소리가 들린다. 파묻힌 낙엽 무더기 속에서 이름 모를 푸르름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봄처럼 느끼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춥고 힘들어도 봄은 온다. 거역할 수 없는 삼라만상의 이치이며 자연의 섭리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