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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설립 중대하자' 온수동 재건축에 한전 '책임 떠넘기기', 구로구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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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설립 중대하자' 온수동 재건축에 한전 '책임 떠넘기기', 구로구 '나몰라라'

한전, 송전탑·송전선로 지하매립 문제 조합주민과 지중선로 통과지역 주민에 협의 안해
협의 유무 확인 않고 인가 구로구청 책임론 제기에 "잘못되면 준공불허" 편의적 발상

조합 측이 사업부지 주변에 배치한 '공사 진행에 따른 우회 통학로 안내문'. 공사 예정기간이 2019년 8월~2021년 12월로 표기돼 있다. 사진=대흥·성원·동진빌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조합 측이 사업부지 주변에 배치한 '공사 진행에 따른 우회 통학로 안내문'. 공사 예정기간이 2019년 8월~2021년 12월로 표기돼 있다. 사진=대흥·성원·동진빌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글로벌이코노믹 김철훈 기자] 조합설립 과정에서 중대하자가 드러난 서울 구로구 온수동 재건축사업과 관련, 주민협의 절차 없이 조합 설립을 동의해 준 한국전력공사(한전)는 부서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사업시행 인가를 내준 구로구청도 '나 몰라라'로 일관하고 있어 조합주민에게 직·간접의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5일 온수동 재건축조합과 한전·구로구청에 따르면, 구로구청은 재개발부지 내 송전탑과 송전선의 지하화에 관해 한전과 조합간에 아무런 공식 협의가 없음에도 사업시행 인가를 내줬을 뿐 아니라 주민들에게 재건축사업 사전안내도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9일 구로구청으로부터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은 온수동 '대흥·성원·동진빌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은 6일 시공사 공개입찰을 마감, 조만간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서울 지하철 1·7호선 환승역인 온수역에 인접한 이들 3개 빌라의 조합원들은 상위 10위권 건설사들을 포함해 다수의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한 만큼 곧 시공사가 선정돼 착공에 들어갈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한전 남서울본부는 이 사업부지에 송전탑 및 송전선로가 있음에도 조합 주민들과 이들 설비의 이전 또는 지하화 관련 협의도 없이 지난 2015년 10월 조합 설립에 동의해 줬다.

관할구청인 구로구청 역시 별다른 검토 없이 조합설립 및 사업시행을 인가해 줌으로써 향후 사업 차질 우려에 빌미를 제공했음에도 '나 몰라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 구로구청 '송전탑 협의' 확인 않고 인가..."설계변경 시 준공불허 하면 그만" 어이없는 행정편의주의


재건축사업 시행계획 인가 2개월 전인 지난해 9월 구로구청은 조합에 '주택재건축 사업시행인가 조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냈다.

이 문서에는 재건축사업을 위해 조합이 구로구청을 비롯, 한전, 교육청, 경찰서, 국방부 등 여러 관공서들과 협의하거나 이행해야 할 사항들이 적시되어 있다.

협의 및 이행 사항들은 ▲사업지에 접한 도로는 준공 전 재포장할 것(구로구청) ▲소음·진동·비산먼지 배출 시 관련 법을 준수할 것(서울시교육청) ▲공사과정 중 CCTV 등 사각지대 최소화할 것(구로경찰서) ▲향후 설계변경으로 건축물 높이가 117m를 초과할 경우 방공작전 등으로 인해 재협의할 것(국방부) 등이다.

대부분 공사 진행 중에 이행해야 할 사항이거나 향후 설계변경 등 변동사항이 생길 경우 재협의해야 할 내용들이다.

하지만 한전과 협의사항은 비용이나 기간 등에서 규모가 다르다. 구로구청 문서에 따르면, 온수동 재건축조합은 한전과 온수동 항동공원부터 온수변전소까지 15만4000볼트(154kV) 송전선로를 지하매립(지중화)하는 사업을 협의해야 했다.

송전선로 지중화를 위한 한전과 온수동 재건축조합 간 충족 요건은 ▲지중선로 경과토지에 대한 권원확보 등 용지확보 ▲사업비 약 127억원을 요청자(조합)가 전액 부담 ▲공사기간(64개월) 확보 ▲대체설비 확보 뒤 송전탑 철거 등이었다.

그러나 구로구청 관계자 A씨는 "문서 명칭은 '인가조건'이지만 한전을 포함해 모든 관공서들과 협의 또는 이행해야 할 사항들은 착공 전에만 하면 된다"며 "인가는 이와 무관하게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과 협의사항은 교육청, 경찰서, 국방부 등과 협의사항과 달리 착공 전에만 하면 될 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특히, 한전이 제시한 항동공원~온수변전소 구간 사이에는 재건축 부지 외에 수백m에 걸쳐 다른 아파트와 빌라 단지가 소재해 있다. 이곳 주민들과 협의해 지중선로 경과 토지에 대한 권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한전은 물론 온수동 재건축조합도 아무런 협의를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수동 재건축개발과 전혀 관련 없는 인근 아파트·빌라 주민들이 자신들 집 아래로 고압선을 묻는 공사를 쉽게 동의해 줄지 미지수이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지중선로 경과토지 주민들과의 협의를 마쳐야 지중화 사업이 시작되고 사업비 127억원, 공사기간 5년 4개월을 거쳐 지중화 사업이 완료돼야 비로소 송전탑이 철거되고 재건축사업 착공이 가능하다.

또한 한전과 공식 협의가 없는 탓에 재건축조합도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 측이 사업부지 주변에 배치한 '공사 진행에 따른 우회 통학로 안내문'을 보면 공사 예정 기간이 올해 8월부터 2021년 12월까지로 돼있다.

곧 시공사를 선정해 착공에 들어가는 줄 알고 있는 조합원들로서는 자신들의 이주계획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게 됐다.

결국 한전과의 협의사항을 다른 관공서들의 협의사항과 똑같이 취급하면서 지중화 협의에 관한 아무런 확인 없이 인가를 내준 관할구청의 행정편의주의 때문에 애꿎은 조합주민들만 큰 혼란과 손실을 입게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럼에도 구로구청은 '나몰라라'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구로구청 A씨는 "이 문서상의 이행조건은 한전 등 각 관공서들로부터 전달받아 조합에 전달한 것일 뿐 구로구청이 요구한 사항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인가 후 한전과 조합 간에 협의가 안 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씨는 "그럼 송전탑을 그대로 두도록 설계변경을 할 테고 인가변경 신청이 들어오면 그때 검토하면 된다"고 말했다.

송전탑을 그대로 두면 아파트 공사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럼 나중에 준공을 안 해주면 된다"고 태연하게 답변했다.

이어 한전과 협의사항은 금액이나 기간이 너무 큰데 구청이 인가 전에 협의를 제대로 했는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A씨는 "전기공사는 기술적인 부분이라 한전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구청은 각 관공서의 요청사항을 취합해 전달했을 뿐"이라고 재차 변명을 늘어놨다.

■ 재건축시행 안내 일부 상가만 안내 부지서 제외...사실 모르는 주민 뒤늦게 '토지 수용' 통보 날벼락


온수동 재건축사업 관할기관인 구로구청도 한전의 조합설립 절차 중대하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정편의주의 태도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수십 년간 시계경관지구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됐던 온수동 재건축 부지는 지난 2008년 5월 지구단위계획 특별계획구역으로 고시돼 재건축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이 같은 내용이 구청 게시판을 통해 공람됐다.

문제는 구로구청이 재건축사업이 시행된다는 사실을 해당 부지 내 특정 주민에게만 등기우편을 통해 개별안내하고, 일부 주민에게는 개별 안내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등기우편 안내를 통해 자신의 토지가 재건축사업 부지에 편입됐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게 된 몇몇 상가 건물주는 구청에 재건축사업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요청했고 구청은 이를 받아들여 해당 상가건물을 재건축사업 부지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해당 재건축사업 부지에 편입돼 있던 다른 사업체의 소유주 B씨는 구청으로부터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하고 재건축 사업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2016년 9월 1일 법원으로부터 조합이 제기한 소유권이전청구소송 소장을 받고 비로소 자신의 토지가 재건축사업 부지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하루아침에 토지를 수용 당하게 된 B씨는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자신에게 보낸 구청의 안내우편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구로구청 관계자 C씨는 "법적으로 관보나 구청 게시판에 공람하도록 하면 될 뿐 우편 안내 의무는 없다"며 해명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5조(정비계획 입안을 위한 주민의견청취 등) 제1항에는 '정비계획의 입안권자는 정비계획을 입안하거나 변경하려면 주민에게 서면으로 통보한 후 주민설명회 및 30일 이상 주민에게 공람하여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구로구청의 다른 관계자 D씨도 누구에겐 개별 통보를 하고 누구에겐 안한 이유에 대해 “담당자가 재량으로 토지 일부가 도로에 편입되는 등 특별히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일부 주민에게만 등기우편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며 역시 구청에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안내 우편을 받은 상가나 안내 우편을 못 받은 사업체 모두 대로변에 나란히 위치해 있었고, 안내를 못 받은 사업체는 향후 조성될 아파트 단지의 정문이 들어설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관할구청의 안내가 더더욱 필요한 곳이었다는 주장이다. 구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의 재량 남용, 나아가 법규 위반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업체 소유주 B씨는 "우리 토지가 재건축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의심이 든다"며 "이는 명백한 재산권 침탈행위로 위법, 위헌적인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어 B씨는 "자신의 재산이 수용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의제기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개인에게는 전 재산이 걸린 재개발사업을 당사자에게 안내해 주지도 않고 구청 게시판에 14일 게재하고 마는 게 과연 이성 구로구청장이 말하는 '섬기는 행정'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철훈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