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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Biz 24] 영국 뿌리깊은 '계급 사회'…'SKY캐슬' 꿈꾸는 것은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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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Biz 24] 영국 뿌리깊은 '계급 사회'…'SKY캐슬' 꿈꾸는 것은 사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영국의 그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영국의 그림자는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비참하고 암울한 것으로 드러났다. 빈곤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돌고 있으며, 살 집을 잃고 노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영국의 그림자는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비참하고 암울한 것으로 드러났다. 빈곤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돌고 있으며, 살 집을 잃고 노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이코노믹 김길수 기자] 헨리 영국 왕자와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크리의 꿈 같은 결혼식. 거기에 초대된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와 전 세계 매체의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치장한 화려한 '로열 웨딩' 광경은 오직 영국만이 연출할 수 있는 부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영국의 그림자는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비참하고 암울한 것으로 드러났다. 빈곤에 허덕이며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돌고 있으며, 살 집을 잃고 노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특히 지난 겨울에는 이러한 노숙자의 어려움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참혹한 사건이 잇따라 이어졌다. 영국 사회에 뿌리 깊은 '계급 사회의 진실'과 '빈곤의 현실'을 파헤쳤다.
노숙자 평균 수명 일반인 절반, 살인도

지난 1월 28일(현지 시간) 밤 영국 잉글랜드 중부 웨스트미들랜즈 주 코번트리의 한 공원에서 남성 2명이 노숙 중인 노숙자의 손에 라이터 가스를 부어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숙자는 생명은 건졌지만 심한 화상을 입었으며, 실행범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그 전날에는 같은 주의 버밍엄시에서 노숙 상태에 있던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공식적으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남자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버밍엄의 '노숙자를 돕는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이 남성을 (이전부터) 본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겨울철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버밍엄시는 침낭과 따뜻한 식사를 배포하고 있으며, 이 남성은 오래전부터 그 서비스를 이용해 왔다고 한다.

영국 국가통계국의 조사에서는, 잉글랜드 웨일즈 지역에서 2017년에 사망한 노숙자는 총 597명으로 2013년의 482명에서 24%나 증가했다. 사망자의 평균 연령은 남성이 44세, 여성이 42세(영국 전체 인구의 수명이 남성은 76세, 여성이 81세)로 사인의 절반 이상은 약물 중독과 간 질환, 자살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정도에서 살인에 의한 사망자도 많지만, 그들이 노숙자라는 이유로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사건은 잊혀지고 있다.

또한 영국 정부의 최근 조사에서, 잉글랜드 지역에서 길거리 노숙을 하던 사람의 수는 지난해 가을 시점에서 4677명에 이른다. 이는 전년의 같은 조사보다 전체 숫자로는 74명 감소했지만, 런던과 잉글랜드 중부에서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10년 전과 비교할 때 3000명 이상 늘어난 수치다.

게다가 북부 스코틀랜드 지방과 서부 웨일즈 지방의 숫자를 포함하면, 음식과 살 곳을 잃어 노숙자가 된 사람은 5000명을 쉽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노숙자를 지원하는 자선 단체들은 노숙자의 수를 어떻게 계산하느냐가 지방마다 차이가 있어 "실제로 노숙자는 통계보다 몇 배나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지방의 경우 매년 10월 또는 11월 특정 날짜의 밤, 지방 자치 단체의 직원이 거리에 나와 노숙자나 야숙자의 수를 헤아린다. 게다가 지방 자치 단체에 따라서는, 지역의 자선 단체가 대충 파악한 숫자를 제출하고 있으며, 농지나 삼림 지역이 많은 장소에서는 조사 지역이 광대한 이유로, 직원이 구석구석까지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공표되는 숫자는 어디 까지나 '어느 날 스냅샷'적인 의미일 뿐이다.

한 번의 실수 재기 불능…노숙자 전락

1월 31일자 BBC 뉴스에서는 버밍엄 도심에서 노숙하는 노숙자들의 목소리를 취재해 그들의 사연과 애환을 내보냈는데, 이들이 노숙자로서의 삶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 번의 실수에도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지는 사회적 현실이 가장 큰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부터 길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제임스(41)라고 이름을 밝힌 노숙자는, 폭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9개월 후 출소해 아파트로 돌아왔으나, 5000파운드(약 746만원)에 달한 체납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해 집주인에게 쫓겨났다. 그는 "어젯밤, 간이 숙박소(정상 등기되지 않은 철거 혹은 개축 대상 건물)에 묵으려고 찾아보니 만실이었다"며 노숙자들은 그에게 마루바닥에서 자고 된다고 했지만 그럴 바에는 밖에서 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범죄 행위나 마약에 손을 댄 결과 6년 전부터 집을 나와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됐다는 루이스(29)는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탄하며, 버밍엄시의 직원이 따뜻한 음료와 샌드위치 가게에서 팔다 남은 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하루 9시간 이상의 중노동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생활을 위해 돈을 벌고 싶지만 "과거의 범죄 경력이나 정해진 주소가 없는 상태로는 직장을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세계 5대 경제체 중 하나로 '신사의 나라', '산업혁명의 나라'로 알려진 영국 내에 "왜 이렇게 노숙자가 많은 것인가?" 이에 대해, 노숙자를 지원하는 자선 단체 '셸터(Shelter)'의 웹 사이트에는 여러 가지 체험담이 올라와 있다.

수십 년 동안 건축업으로 생활해 온 크리스 씨는 어느 날 지붕에서 마지막 도장작업을 하던 중 뜻하지 않은 낙상사고를 당해 목과 뇌에 손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예전과 같은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집세를 지불하기 위해 지역 자치단체에 긴급 지원조치를 적용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끝내 좌절되어, 결국 노숙자의 길을 가야 했다.

하지만 크리스는 형과 함께 셸터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자치단체와 교섭을 시도한 끝에 저렴하게 입주할 수 있는 주거지를 찾게 되었다. 다행이 크리스는 셸터의 도움으로 행복한 결말을 안게 되었지만, 영국 내에서 크리스와 유사한 상황으로 노숙자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에게 닥친 불의의 병이나 직계 가족의 사망, 간호의 필요성, 이혼, 해고 등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거지와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심지어 가족과 헤어질 수도 있다. 특히 가정을 잃었을 경우 인생 자체가 붕괴해 버리는 참담한 현실을 맞을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영국 내에서는 누구나 순식간에 노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어느 나라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인구 20% 이상 빈곤…아동 빈곤 심각


1990년대 초 메이저 정권 이후 '빈곤 문제의 해결'은 영국 정치권의 큰 과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당초 영국 정부는 한 해 평균 가구 소득의 60% 미만의 수입을 얻는 가정을 '상대적 빈곤'으로, 이어 2년 연속 평균 가계 소득의 60% 미만의 소득을 버는 가정을 '절대적 빈곤'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세심하게 '임대료를 지불하기 전'과 '임대료를 지불한 후'를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빈곤 퇴치를 위한 자선 단체 '조셉 라운트리 재단(Joseph Rowntree Foundation,JRF)'의 조사에 따르면, 2016∼2017년 시점에서 영국 내에 '상대적 빈곤(임대료를 지불 후 이하 동일)'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약 1430만명(영국 인구는 약 60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2%에 해당한다.

또 약 1430만명의 상대적 빈곤층 중에는, 820만명이 노동 연령에 있는 성인이며, 410만명이 어린이, 그리고 190만명이 연금 생활을 하는 고령 인구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어린이로, 아동 빈곤층은 지난 5년 동안 50만명이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국 내 어린이 전체 인구 증가는 3%였지만, 빈곤 아동은 15%나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12월 이미 발표된 보고서에서도, 영국의 어린이 5명 중 1명은 식량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연말 영국 국가교육위원회는 전국 교사 10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 50% 이상이 3년 전에 비해 학생들의 빈곤율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심지어 3분의 2에 달하는 교사들은 의류를 갖추기 힘든 학생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많은 학생들이 구멍난 옷과 테이프로 붙인 신발을 신고 등교하고 있으며, 학교 차원에서 겨울 의류를 지급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교사도 있었다.

■ 노숙 퇴출 2년간 1491조 원 출연 예정


영국 정부는 거리 노숙을 없애기 위해 향후 2년간 1억 파운드(약 1491조 원)를 출연할 예정이다. 이 중 3000만 파운드는 노숙자의 정신 건강 지원이나 약물 남용 등의 치료에 사용되며, 런던 교외에 마련되는 최소한의 주거 확보에 5000만 파운드가 투입된다.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노숙자에 대해 공적인 주거가 영구적으로 제공되는 경우, 최소한 간이 숙박소 또는 기타 임시 주거에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다. 이러한 규정 때문에 길거리에 있던 노숙자들에게 직접 주거를 제공하는 방법은 아예 없었다.

최근 핀란드 헬싱키에서 바로 이러한 규정을 제거한 새로운 주거 제도를 실행한 결과 큰 성과를 올린 사례가 알려졌다. 이에 영국 정부도 2800만 파운드를 들여 '하우징 퍼스트'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며, 이에 따라 1000채의 주택이 우선 마련된다고 한다.

노숙자 관련 자선단체인 '크라이시스(Crisis)'의 존 스팍스 대표는 영국 정부에 대해 조치 3가지를 들고 있다. 첫 번째는, 곧장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복지 수당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현재 상태에서도 지방 자치 단체로부터 저소득층에 대한 임대료 지원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실제 임대료를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는, 낮은 임대료의 '소셜 주택'을 더 많이 건설하는 것이다. 현재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잉글랜드에서만 연간 9만3000채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스팍스 대표는 지적했다. 이어 세 번째는, 노상 생활자나 노숙자 생활을 개선할 수 있었던 사례를 모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른 노숙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을 창출해 노동 인구를 늘려 스스로 자활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려는 영국 정부의 의지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영국 정치계에서는 빈곤층 확대와 기아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 신설의 움직임도 일었으나, 특이하게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영국 정부는 긴축을 이유로 관련된 기금마저 삭감한 상태다. 게다가 최근 일부 정치가들은 "식량 위기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이유로 메이 정권을 비난하고, 기아를 담당하는 부서와 장관의 임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EU 이탈과 관련한 정치권의 다툼과 권력 투쟁 속에 구제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김길수 기자 g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