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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문신 이원진?... ‘탐라지’를 편수했으며 벼슬은 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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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문신 이원진?... ‘탐라지’를 편수했으며 벼슬은 관찰사

[글로벌이코노믹 온기동 기자]


조선중기의 문신 이원진이 27일 포털에서 관심이다.

본관 여주, 자 승경, 호 태호, 1615년(광해군 7)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이원익 등과 귀양갔다가 인조반정 후 풀려났다. 효종 때 제주 목사로 하멜 등 표착한 30여 명의 네덜란드인들을 서울로 압송했다. ‘탐라지’를 편수했으며 벼슬은 관찰사에 이르렀다.

1644년 교리로 있을 때 두만강의 국경을 넘어 경흥·경원·온성 등지에 침입하여 횡포를 자행하던 여진인에 대하여 조정의 명으로 그 선후책을 강구했다.
1648년에는 왕명으로 별시문과에서 초시를 파하려 하자, 그 부당성을 강력히 아뢰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온기동 기자 1699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