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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이해당사자 한수원, 정부정책 따르기에 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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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이해당사자 한수원, 정부정책 따르기에 급급"

탈원전 비판 외부보고서에 "감수 잘못" 연구원 전원징계 움직임 논란
전기요금 50% 상승 분석에 '수치 오류' 반박...내부단속용 조치 해석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의 신고리 1, 2호기 외부 모습. 사진=한국수력원자력이미지 확대보기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의 신고리 1, 2호기 외부 모습. 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산하 중앙연구원 소속 연구원 5명에 징계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업계와 학계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반발하면서 연구활동의 위축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했다.

8일 업계와 학계에 따르면, 한수원 감사실은 지난해 11월 문제가 된 보고서의 작성자와 검토자로 등재된 중앙연구원의 연구원 5명에 감사를 벌여 올해 2월 5명 전원을 감봉·견책 하는 징계를 본사에 요청했다.
현재 한수원은 당사자 소명을 포함한 징계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직 최종 징계수위는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와 징계를 유발한 문제의 보고서는 지난해 4월 한수원 중앙연구원이 발간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발전단가 분석:8차 전력수급계획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기술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고리1호기 해체 방사선 특성평가 지침 작성 및 최종해체계획시 입력자료 생산'이라는 긴 제목이 붙은 연구과제의 성과물로 외부교수에 의뢰해 작성됐다.

주 내용은 정부의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로 발전단가가 크게 올라 오는 2030년이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전력판매단가가 현재 산업용 105.2원/킬로와트시(kWh), 가정용 106원/kWh에서 나란히 57.41원/Kwh씩 올라 전기요금이 50% 이상씩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분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석 내용은 탈원전을 추진해도 전기요금이 10.9% 인상에 그칠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동시에 탈원전이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 정부의 설명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지난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규환 의원은 중앙연구원 보고서가 한수원 명의로 나온 만큼 연구보고서 결과를 수용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의 공격에 당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한수원 차원의 공식 연구결과물이 아닌 연구자 개인의견을 담은 자문보고서일뿐"이라며 한수원 공식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특히 정 사장은 보고서에 인용된 비용산출과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외부교수가 신재생발전설비를 위한 투자비용을 계산할 때 이중으로 계산된 부분이 있었고, 해당 교수도 이를 시인했다"면서 "오류로 인해 가치가 없는 보고서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보고서는 현재 행정안전부 정보공개포털에 '보고서 오류에 따른 활용·배포 금지'로 분류돼 있다.

한수원은 이같은 오류로 발전단가를 높게 산정했음에도 연구원들이 제대로 검수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징계 절차를 밟게 됐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한수원의 징계가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내부 목소리를 단속하려는 '본보기식 징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말 중앙연구원 이승철 원장이 정기인사 때 한빛원자력본부 2발전소장으로 발령난 것도 보고서 논란에 따른 이른바 '좌천성 인사'라고 시각이 제기된 바 있었다.

학계에서도 한수원의 징계 행보가 자칫 학계의 연구활동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의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경제학과)는 "탈원전으로 발전단가가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연구자의 연구설계에 따라 발전단가 상승 폭은 각기 다르게 산출될 수 있다. 연구 결과를 좌우할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거나 고의로 오류를 범한 경우가 아니라면 추후 수정하거나 발간을 연기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한수원의 내부 조치에 언급할 바는 아니다"면서도 "자칫 학계의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대학의 교수는 "보고서를 작성한 해당교수가 오류를 시인했다고 하지만 원자력발전 관련 연구용역 발주를 좌우하고 있는 한수원에 밉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당교수가 한수원의 강압으로 오류를 시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심스레 소견을 밝혔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최연혜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한수원에 관련자료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며 "자료를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외부 전문가에게 연구를 의뢰해 놓고 그 보고서 검수를 잘못했다고 내부직원을 징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수원의 태도를 비판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수원은 우리나라 원자력 건설과 운영을 담당하는 공기업으로 탈원전 정책의 피해 직격탄을 맞는 당사자인데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따르기에 급급한 태도는 자기부정"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