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화산폭발 징후, 하늘에서 천둥 소리, 북한 김정은 정권 위협 …946년 발해 역사의 교훈

기사입력 : 2019-04-16 07:57 (최종수정 2019-04-1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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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46년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발해국이 멸망했다. 화산 전문가는 백두산의 가장 큰 화산폭발을 946년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백두산 화산폭발은 2000년 동안 지구 상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 중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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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폭발로 '해동성국' 발해가 멸망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들어 백두산 천지를 중심으로 화산분화 징후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1000여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서기 946년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발해국이 멸망했다.

화산 전문가는 백두산의 가장 큰 화산 폭발을 946년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백두산 화산 폭발은 2000년 동안 지구 상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 중 가장 컸다.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일본에서도 발견될 정도다.

고려사를 보면 946년에 개성 하늘에서 큰 천둥 소리가 들렸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나라현에 있는 고후쿠지 사찰에서도 946년 11월에 하늘에서 하얀재가 내렸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이 지난 뒤인 698년에 건국되었다. 건국의 기폭제가 된 것은 696년에 요서(遼東) 지방의 영주(營州·지금의 요령성 朝陽)에서 일어난 거란족의 반란이다. 영주는 당나라가 동북쪽 이민족을 통제하던 거점도시로, 주변 지역에서 귀순해오거나 강제로 끌려온 이민족들이 다수 거주했다. 그러한 이민족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해 거란족, 해족(奚族), 말갈족 등이 있었다.

696년 5월에 거란족 수장인 이진충(李盡忠)과 손만영(孫萬榮)이 영주 도독의 가혹한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었고, 이들은 유주(幽州· 지금의 베이징)까지 공격해 당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이듬해에 겨우 평정되었다. 영주에 함께 거주하던 대조영 집단도 이들에 동조했고, 이 거사가 실패로 돌아갈 무렵에 무리를 이끌고 영주를 탈출했다. 이 때 말갈 추장인 걸사비우(乞四比羽) 집단도 동참했다.

두 집단은 요수(遼水)를 건너 요동(遼東)으로 건너왔으니, 이들이 영주에서 말갈족의 거주지인 북방으로 손쉽게 탈출하지 않고 아직 당나라 세력이 남아 있는 동쪽의 고구려 옛 땅으로 돌아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고구려 유민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실을 암시하고, 발해 건국이 결국은 고구려의 부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나라에서는 처음에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乞乞仲象)에게는 진국공(震國公),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을 봉하여 이들을 무마하려 했다.

대조영은 무리를 수습하여 영주로부터 2000리나 떨어진 동모산(東牟山)에 나라를 세웠다. 발해가 건국된 해는 일본측 기록인 '루이쥬코쿠시(類聚國史)'에 전해진다. 건국지는 지린성 돈화(敦化)에 있는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으로 여겨진다. 이곳은 말갈족의 터전이기에 기록에는 ‘읍루의 옛 땅’에 도읍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조영이 처음부터 건국지로 지목한 것이 아니라, 당나라 추격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었다. 산 위에 성을 쌓아 건국한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당나라 군대의 공격에 맞서기 위한 것으로 건국 당시 방어에 급급했던 절박한 사정을 추측할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

김대호 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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