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이희호 김홍일 연속 줄초상? 김대중 대통령 가족 무슨 일… 위중한 상태 세브란스 병원 입원

기사입력 : 2019-04-21 16:42 (최종수정 2019-04-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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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가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김대중대통령 가족에 김홍일 이희호 여사 줄초상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이희호 여사 위중한 상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줄초상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희호 여사 위중한 상태 설은 이희호 여사가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확산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 가족에 김홍일 이희호 여사의 잇단 줄초상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김홍일 의원의 어머니 이희호 여사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VIP 병동에 입원해 있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생으로 올해 97세다.

이희호여사는 1922년 9월 21일에 서울 수송정에서 아버지 이용기와 어머니 이순이의 딸로 태어났다.

이용기는 한국 의사 면허 4호 의사로 남원도립병원장, 포천도립병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순이는 한의사 집안의 딸이었다. 오빠 두 명과 남동생 네 명, 여동생 한 명을 두었다.

이희호는 이화고등여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때 교육학과로 전과하여 수학한 후 1950년 교육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해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피난살이의 와중에도 이태영, 김정례 등 1세대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1950년), 여성문제연구원(1952년) 등을 잇따라 창설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이희호여사는 미국 공군에 근무하던 감리교 크로 목사의 주선으로 195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희호는 대한여자청년단 간부 김정례를 통해 김대중을 처음 만났다.

김정례는 1·4 후퇴 때 서울의 피란민들을 배로 후송하려고 인천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피란민을 싣고 갈 배의 주인이 김대중이었다.

김정례는 김대중에게 피란민들을 부탁하고 부산에 오게 되면 한번 만나자고 했다.

뒤에 부산으로 사업 거점을 옮긴 김대중은 김정례를 찾았다.

김정례는 김대중과 만나는 자리에 대한여자청년단 간부들과 함께 나왔고 그 간부들 중에 이희호가 있었다.

서울의 대학생 모임이었던 '면학동지회'는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다시 모였는데 33명으로 시작한 면학동지회는 전쟁이 나는 바람에 후속 회원을 뽑지 못했고 대다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기 때문에 '면학동지회'는 이름을 '면우회'로 고치고 외부인도 받아들였다. 면우회는 한 달에 한번씩 모였고 김대중은 면우회가 외부인에게도 개방하면서 면우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번씩 열린 그 모임에서 이희호와 김대중은 시국, 인생 등에 대해 토론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미국 램버스 대학교(1954년 ~ 1956년)에서 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스카릿 대학교 대학원(1956년 ~ 1958년)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8년 미국에서 귀국 한 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사업학과 강사가 되었고 여성문제연구원 간사, 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 직 등을 역임하였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YWCA 총무로 일하며 여성계 지도자로 자리잡아가고 있던 시점인 1962년 5월 41세의 나이로 39세의 정치 낭인 김대중과 결혼하였고 다음 해인 1963년 11월에 아들 김홍걸을 낳았다. 이희호는 감리교인이었고 김대중은 천주교인이었지만 서로의 신앙을 존중하는 관계였다. 이희호는 김대중이 선거에서 여러 번 떨어지고 가산도 탕진한 인물이었지만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신념을 높이 평가하여 배우자로 선택하였다.

이후 김대중의 정치 활동을 돕는 한편 공덕귀, 이우정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80년 김대중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자 옥바라지를 하였고 그 때 주고받은 편지가 후에 책으로 출판되었다.

좋은 학벌과 왕성한 사회 활동을 통해 형성된 이희호의 재야·여성계·학계·기독교계 인맥은 고졸 출신 김대중의 정치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이희호는 유학 시절 쌓은 영어 실력과 영문 타자 솜씨, 서구식 매너 또한 정치 활동의 자산이었다. 이희호는 김대중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세계 각지의 유력인사들에게 유려하고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구명 운동을 펼쳤고 김대중의 미국 망명 생활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1997년 12월에 김대중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1998년 2월 25일부터 2003년 2월 24일까지 청와대에서 생활하였다.

2002년 5월 유엔 의장국 대한민국의 대표로서 유엔 총회에 참석하였는데, 김대중을 대신해 참석한 이 총회에서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2009년 11월에 자서전 《동행》을 발간하였다.


김재희 기자 tiger8280@g-enews.com 김재희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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