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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이번 홍콩시위는 ‘최후의 전쟁’…2014년 ‘우산혁명’과의 차이점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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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이번 홍콩시위는 ‘최후의 전쟁’…2014년 ‘우산혁명’과의 차이점은 무엇?

사진은 새로운 것을 꿈꾸다 배신당한 2014년 우산혁명' 때의 시위모습.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은 새로운 것을 꿈꾸다 배신당한 2014년 우산혁명' 때의 시위모습.
사진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번 홍콩의 시위.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번 홍콩의 시위.


홍콩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1997년 반환 이후 홍콩에서는 몇 번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바 있다. 특히 기억에 새로운 것은 2014년에 일어난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학생들의 봉기다. 이번 시위를 두고 ‘또 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성격은 ‘우산혁명’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산혁명’ 때는 수수방관했지만 이번 시위에 참가한 홍콩인 한 남성은 “처음으로 정치시위에 참여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새로운 꿈을 꾸다가 배신당한 ‘우산혁명’

당시 우산혁명 시위대가 요구한 것은 보통선거 실시였다. 반환 후 홍콩정부의 실질적 통치자인 홍콩 행정장관은 1,200명의 선거위원만이 투표권을 가진 선거에서 선정되는 구조를 취했다. 이른바 ‘간접선거’로 선거위원의 선정은 자의적이었으며 이른바 친(親)중파가 80% 이상을 차지했다. 민의가 반영되는 선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홍콩의 헌법에 해당하는 홍콩기본법은 이 제도에 대해 “필요하다면 2007년 이후에 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행정장관의 임기가 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두 차례 선거방식을 다시 바꿀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2007년으로 당시 행정장관(둥젠화)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민주 파는 보통선거의 실시를 요구했지만 중국당국은 전인대에서 “2007년 이후에 바꾼다는 것은 2007에 바꾼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기본법을 해석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두 번째가 2014년으로 이른 바 ‘우산혁명’의 해다. ‘이번이야 말로’라고 기대가 높아진 가운데 8월에 중국정부는 새로운 선거제도를 발표했다. 1인 1표의 투표권을 시민에게 준다. 다만 정부가 인정한 지명위원의 과반수지지를 받은 자만이 후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사실상 중국정부 뜻에 따른 후보자 외에는 설 자리가 없어 유권자에게는 거의 선택권이 없었다. 요컨대 ‘무늬만 보통선거’였던 것이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일어나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하지만 초반의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시위는 서서히 힘을 잃으면서 실패로 끝났다. ‘무늬만 보통선거’도 철회되었으며 1,200명의 위원에 의한 간접선거가 계속됐다. 결국 지금의 행정장관인 캐리 람(林鄭月娥) 역시 1,200명으로부터 선택됐다.
홍콩은 반환시의 규정에 의해서 ‘고도의 자치’가 인정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대표가 민의에 의해서 선출된 것은 영국 통치시절을 포함 단 한 번도 없다. 법치주의나 자본주의는 있어도 민주주의는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개혁파(톈안먼 사태에 항의하고 기본법 완성 전에 사퇴했다)가 그 기초에 참가하면서 기본법에 적힌 문구대로 “2007년 이후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희망이 생겼지만 결국 배신당하고 말았다. 이것이 안타깝게 끝난 ‘우산혁명’의 실상이다.

■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번 시위

다시 말하면 ‘말하지 않는 것’을 요구했던 것이 ‘우산혁명’이었다면 이에 대해 이번 시위는 지금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투쟁이다. 보도대로 이번 시위대의 요구는 범죄용의자의 신병을 중국 본토 등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 조례개정을 막는 데 있다.

홍콩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은 2015년에 발생한 서점직원 실종사건이다.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서적을 많이 갖춘 홍콩 서점관계자들이 돌연 실종됐다는 사건이다. 실종자들은 결국 돌아왔지만 그 중 한명이 중국당국에 구속되어 수사 받았음을 고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언론의 자유’가 지켜지고 있는 홍콩이라면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일국양제’의 벽을 넘어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국당국의 힘이 미치면서 충격을 받은 홍콩인들이 많았다.

이번 ‘범죄인 인도’ 조례개정안은 정치범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홍콩정부는 말한다. 하지만 시위에 참가한 한 남성은 “비록 무죄라도 다른 건으로 체포돼 조사를 위해 이송되는 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는다. 홍콩이 두려워 말문이 막히면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은 분명히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3년에도 홍콩은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홍콩기본법 23조에는 “홍콩 특별 행정구는 국가분열과 반역, 국가기밀을 훔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 조문에 근거한 조례를 홍콩정부는 2003년에 통과시키려 한 것이다. 결국 실패했지만 만약 성립이 됐다면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이 법적으로 금지되는 사태가 맞을 수 있었다.

이번 ‘범죄인 인도’ 조례개정안은 앞선 2003년 조례에 가까운 효과를 홍콩사회에 실질적으로 미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조례는 홍콩시민의 거센 반발 때문에 철회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3년 당시와 지금은 중국정부의 힘, 홍콩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달라졌다. 중국정부와 뜻을 함께한 홍콩정부가 이번에는 강행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없는 것’에 손을 뻗으려고 한 우산혁명과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이번 시위. 후자는 이겨도 새로 얻을 것이 없고, 지면 되돌릴 수 없는 일선을 넘는다. 전자에 비해 많은 세대와 기업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 홍콩사회의 필사적인 움직임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