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향기] 석류꽃 그늘에서

기사입력 : 2019-06-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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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숲해설가가 되기 위한 마지막 테스트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한순간 붉은빛이 눈에 어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그 붉은빛에 이끌려 나무 곁으로 다가섰더니 붉은빛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석류꽃이었다. 마치 붉은 주머니를 끈으로 동여맨 듯한 꽃자루 끝에 리본을 풀어 놓은 듯 펼쳐진 꽃잎과 소담스러운 노란색의 꽃술하며 중세 유럽의 왕관을 닮은 꽃받침까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석류꽃이 피면 바야흐로 본격적인 여름이다. 하루가 다르게 태양은 뜨거워지고 강렬히 내리쬐는 햇빛을 받은 녹음은 더욱더 짙어져 여름의 중심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는 중이다. 이른 봄에 숲해설가 공부를 시작했으니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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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꽃

석류꽃을 보면 중국 송나라의 시인 왕안석의 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가 석류꽃을 보고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 동인춘색불수다(動人春色不須多)”(온통 푸른 잎사귀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 사람 마음 들뜨게 하는 봄빛은 굳이 많을 필요가 없네)라고 노래한 데서 ‘홍일점’(紅一點)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도 “은행각함단벽옥(銀杏殼含團碧玉), 석류피과파홍주(石榴皮裏碎紅珠)”(은행은 그 속에 푸른 구슬을 품고 있고 석류껍질은 부서진 붉은 구슬을 안고 있네)라고 석류를 노래했다.

요즘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중부지방에서도 석류나무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중부 이남의 정원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나무 중 하나였다. 지중해 연안과 서아시아, 인도가 원산지인 석류나무는 석류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작은 키나무로 고려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정집 정원에서 보는 석류나무는 거의가 2m 안팎으로 키가 작은 편이지만 최고 7m까지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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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꽃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피는 석류꽃은 붉은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외에도 주황색, 백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의 꽃을 피운다. 석류는 다소곳하고 경건하게 피어는 꽃이라서 깨끗함과 인자함의 상징으로 통하고, 빽빽하게 들어찬 열매는 다산과 풍요로움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석류꽃의 꽃말은 ‘원숙한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석류 열매를 보면 껍질을 깨고 나온 알갱이들이 마치 이를 드러내놓고 히죽거리는 바보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바보’와 ‘어리숙함’이라는 꽃말도 지니고 있다. 같은 나무라도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상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석류나무가 명징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팜므파탈의 대명사 중국의 양귀비와 이집의 클레오파트라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위해 석류를 챙겨 먹었을 만큼 여성을 위한 과일로 꼽힌다. 그 이유는 석류에 함유된 에스트로겐에 기인한 것이지만 석류는 고대 페르시아에선 생명의 과일로 불렸을 만큼 전신에 걸친 폭 넓은 건강효과로 누구에게나 활력을 주는 과일이다. 석류는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차로 끓여 먹거나 즙을 내어 마신다. 석류에는 비타민이 다양하게 함유되어 있어 감기예방에 효과가 있고 천연 에스트로겐 호르몬 성분이 들어 있어 여성의 갱년기 장애 예방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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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꽃

유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붉은 꽃을 피우며 초록 융단에 홍일점을 찍은 석류나무에 보석처럼 알알이 들어찬 석류가 빨갛게 익어갈 때쯤이면 또 다른 계절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숲해설가 공부를 마치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꽃구경이나 실컷 해보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마치고 보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바라보는 일이 예사롭지 않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꽃만 보았는데 이제는 꽃만이 아니라 잎도, 줄기도 함께 보게 되고 보이지 않는 뿌리까지 생각하게 되니 숲 공부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란 생각마저 든다. 역시 자연은 위대한 도서관인 게 틀림없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백승훈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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