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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순환보직이 원전 안전 증진? "원전 특성 무시한 관료주의 발상"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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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순환보직이 원전 안전 증진? "원전 특성 무시한 관료주의 발상" 반발

기피 1순위 한울원전 근무자 배정 순환마일리지 도입에 "원전 불안 더 위협"
업계 "기술직 많은 한수원에는 맞지 않아...한빛1호기 사태도 미숙대처 탓"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사진=뉴시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최근 순환보직 인사기준 도입 취지로 원자력발전의 안전 증진을 제시하자 한수원 내부와 외부 전문가들이 '원전 특성을 무시한 관료주의 발상'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한수원은 지난 5월 인사이동제도를 개편하면서 '순환 마일리지' 인사기준을 새로 도입했다.
4일 자유한국당 김규환 의원실(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과 한수원 노조, 원자력정책연대 등에 따르면, 한수원이 새로 도입한 '순환마일리지' 기준은 직원들의 사업소 선호도에 따라 점수를 차등 적용하는 인사이동 기준이다. 직원들이 가기를 기피하는 한울원자력본부로 전입할 대상자를 특정하기 위해 마련한 나름의 고육책이다.

경북 울진에 위치한 한울원자력본부는 학교, 병원 등 주변 생활 인프라가 부족해 한수원 직원들이 인사배정 기피 1순위 근무지로 꼽힌다.

한수원은 순환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한 목적이 인력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한 것이라며, 새 기준을 통해 특정사업소의 인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원전의 안전운전을 증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인사이동은 회사의 정상적인 경영행위이며,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94조에도 위반되지 않는다고 적극 해명하고 있다.

순환 마일리지 도입으로 한울원자력본부 근무직원에게는 승진 가점, 근무환경급 추가지급, 생활안정자금 한도 향상 등 우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원자력 전문가들은 한수원의 순환 마일리지는 원전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무시한 극히 '관료주의 발상'이라는 입장이라며 우려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순환근무의 주된 목적은 지역 토착세력과 유착 비리를 막기 위한 것으로 주로 관리직에 적용되는 인사제도라는 설명이다.

정작 한수원은 원전 운영에서 고도의 숙련과 전문성이 요구되기에 각 원전에는 관리직보다 기술직 인력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올해 6월 기준 한울원자력본부에 근무하는 4직급 이상 정규직 직원은 사무직 91명, 기술직 1727명 등 총 1818명으로, 기술직 비중이 전체 9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전국 5개 원자력본부의 각 원전들은 원천기술을 도입한 곳이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CE(컨버스천 엔지니어링)로 서로 다르다. 기본이론은 동일하지만, 용어·알고리즘 등 실무적인 운영방식은 모두 다르다고 주장한다.

원자력기술사인 강창호 원자력정책연대 법리분과위원장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원자력발전소로 근무지를 이동하면 실무적으로 운영방식이 워낙 달라 기술사도 기능사 수준으로 업무능력이 저하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업무를 숙지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며, 그만큼 안전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국낸 원전 사상 가장 큰 사고라는 한빛1호기 수동정지 사고도 '미숙련' 직원의 '미숙한' 대처로 발생한 인재(人災)였다는 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수원의 순환 마일리지 제도가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수원의 지역 원자력본부별로 나눠져 있는 지역노조 중 일부 노조는 지난달 성명서를 발표해 "(순환 마일리지에 따른) 강제 인사이동은 원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며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에 따라 근로자와 합의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원전비리 방지를 위한 원자력발전사업자등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원전감독법)' 제7조(조직·인사 관리) 제1항에는 '원전의 안전한 건설·운영에 필요한 업무' 내용을, 제2항은 '순환보직' 등 인사관리를 각각 규정하고 있다.

안전 규정이 1항에 먼저 나온 것에서 보듯 원전의 최우선 가치는 '안전'이기에 순환보직 같은 효율성이나 성과를 위한 인사제도가 안전을 저해한다면 법의 취지에 저촉된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지난 4월 새로 출범한 한수원 중앙노조는 '순환마일리지' 제도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원전 기술자는 평생 한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환기시키며 "최근 원전 안전에 불안감이 높은데 안전을 도외시한 인사제도(순환 마일리지)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