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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의원, 파란만장한 ‘20년 정치인생’ 자살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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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의원, 파란만장한 ‘20년 정치인생’ 자살로 마감

가수·음식점 사장·방송인 등 왕성한 활동…우울증으로 약 복용

정치인에서 음식점 사장, 가수, 방송인, 시사평론가까지 다양한 삶을 살았던 정두언 새누리당 전 의원이 자살로 62세의 생을 마감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정치인에서 음식점 사장, 가수, 방송인, 시사평론가까지 다양한 삶을 살았던 정두언 새누리당 전 의원이 자살로 62세의 생을 마감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인에서 음식점 사장, 가수, 방송인, 시사평론가까지 다양한 삶을 살았던 정두언 새누리당 전 의원이 자살로 62세의 생을 16일 마감했다.

정치인에서 방송인, 음식점 사장으로 인생 2막을 설계하던 고(故) 정 전 의원은 이날 오후 유서를 남긴 채 북한산 자락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현재 경찰은 고 정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정학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

고 정 전 의원의 정치적인 삶은 파란만장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고인은 정 전 의원은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을 끝으로 정치권으로 방향을 돌렸다.

2000년 한나라당 대변인에 이어 2002∼2003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고 정 전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부터 19대 총선까지 서울 서대문을에서 당선됐다.

초선의 고 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당에 아무런 뿌리가 없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결국 2007년 말 정권 교체에 성공한 고 정 전 의원은 개국 공신으로 ‘왕의 남자’로 통했다.
고인은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과 조각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하며 국정을 쥐락펴락했지만, 권력의 암투가 고인의 발목을 잡았다.

인수위에서 밀린 고 정 전 의원은 2008년 6월 만사형통(모든 것은 형으로 통한다)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막강하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겨냥해 ‘권력의 사유화’ 발언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고인은 같은 해 4월 제 18대 총선에서 이 전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의 선봉에 서면서 여권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었다.

고 정 전 의원이 최근까지 이 전 대통령을 ‘저격’하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도 이때부터 비롯됐다.

고 정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다스 수사가 이뤄지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내가 다스를 만들었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며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고 정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개국 공신이었지만 정권 말기인 2012년에는 ‘저축은행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돼 이듬해 3선 의원 신분으로 법정 구속까지 당했으며,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구치소에서 10개월을 살았다.

그는 이어 부활하고, 국회의 꽃으로 불리는 상임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다만, 2016년 제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대문을에 재출마했지만 4선 달성에 실패했다.

고 정 전 의원은 낙선 이후 종편 채널의 시사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로, 때로는 패널로서 종횡무진하면서 정치인이 아닌 방송인으로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고 정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에는 4집 앨범까지 낸 가수 의원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드라마 음악에도 도전하는 등 왕성한 예능 활동했다.

정치권 한 인사는 “고 정 전 의원이 오래 전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최근까지도 약을 먹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수남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ere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