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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1974 vs 2019 ‘반일 감정’

[G 칼럼] 1974 vs 2019 ‘반일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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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국민은 연초부터 충격에 빠져야 했다. ‘유신정권’이 새해벽두인 1월 8일 '긴급조치 1, 2호'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자 등은 영장 없이 체포하고 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살벌한 조치였다. 4월 3일에는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긴급조치 4호’가 선포되었다.

국민은 숨마저 제대로 내쉴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드러내고 비판하지 못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문세광’이었다.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

전국에서 반일(反日)열풍이 불었다. 일본대사관의 간판을 떼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보도다.

“반일 데모가 사흘째 계속, 23일 오전 일본을 규탄하는 궐기대회가 열리고 반일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이 비가 내리는 거리를 누볐으며 22일 밤에는 일본대사관저 앞에서 데모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부인회 등 60여 여성단체 회원 1500여 명은 23일 오전 10시 반 서울 서대문구 정동 이화여고 강당 유관순 기념관에 모여 대한민국 범여성 궐기대회를 가졌다.”

시위에 참가하는 국민이 늘어났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참가 규모도 수십만으로 확대되었다.

“전국의 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김일성 규탄 및 일본 각성 촉구 국민궐기대회’가 27일 오전 10시 서울운동장에서 15만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28일 오전 전국 곳곳에서 김일성 타도 및 일본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인천 30만, 부산 20만, 광주 20만 명 등 대구, 마산, 춘천, 청주, 충주, 전주, 목포, 제주 등 곳곳에서 많은 주민과 학생이 궐기대회에 참가했다.”

반‘유신’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일로 돌아서고 있었다. 반일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정부는 또다시 긴급조치를 내렸다. 이번에는 ‘긴급조치를 해제하는 긴급조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23일 오전 10시를 기해 지난 1월8일 선포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개헌언동금지)와 4월3일 선포한 제4호(민청학련관련활동금지)를 해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청와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와 동 제 4호의 해제에 관한 긴급조치를 상정, 의결한 다음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긴급조치 1, 4호 해제에 즈음한 특별담화를 발표, 지난 1월8일 선포한 긴급조치 1호와 4월3일 선포한 긴급조치 4호를 해제할 시기라고 판단해서 이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국회도 박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3일 뒤인 26일 대일 강경 자세를 견지하도록 정부에 촉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8일에는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를 규탄하면서 ‘단교(斷交) 등 강경 조치’를 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국민이 나서고, 정부와 국회도 나섰던 것이다. 한일 관계는 싸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또 한일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있다. 어쩌면 1974년 이후 가장 불편한 관계가 되고 있다.

먼저 양보할 마음들은 ‘별로’다. 양국 국민의 감정도 많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여론조사가 그렇고, 일본의 여론조사도 그랬다. 장기화되면 골탕을 더 먹는 건 우리라고 했는데.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