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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세계 최장시간 근로와 끈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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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세계 최장시간 근로와 끈기의 힘

납품되어 조립된 이후 알게 된 부품 불량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전무)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전무)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무총장(전무)


"퇴근 시간이 지난 시점에 직원들이 허겁지겁 나갔습니다. 이사님이 현지인 기능공 10여 명을 인솔해 나가기에 ‘같이 가면 안 됩니까?’라고 하니, 입사한 지 1주일밖에 안 된 사람이 뭘 알겠냐며 그냥 퇴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떼를 쓰다시피 해서 따라붙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로 닷새 정도를 쉴 틈 없이 일을 했습니다. 낮에는 회사로, 밤에는 납품한 부품에서 불량이 발견된 회사로 출근해 태국 현지 기능직들과 단순 분해·조립업무를 했어요"

지난해 태국에 취업해 있는 김재현(가명)에게서 들은 사건이다. 전화로는 그는 그때의 기억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했다. 글로벌 성장통(成長痛)을 털어놓은 김 씨는 태국의 방콕 현지에서 연수를 마치고 입사한 지 1주일 만에 있었던 일이라고 전했다. 그는 필자가 일하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Global YBM/GYBM)' 태국반 2기로 2017년 8월부터 1년간 연수를 받았다. 방콕 인근 탐마삿대학교에서 기숙사와 교육시스템을 이용해 비교적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남다른 각오로 전자·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한국 회사인 D사에 입사했다. 회사는 관광지로 유명한 파타야와 방콕의 중간 정도에 있으며 현지인 100명과 한국인 관리자 5명이 일하고 있다. 만든 부품은 전량 태국 현지의 한국·일본 전자제품 회사에 납품돼 조립된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사건은 일주일 전에 납품한 부품이 문제가 된 것이다. 완성품 제조회사인 K사의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이었다. 조립돼 포장단계로 들어가기 직전인 완성품 검수단계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미 조립된 부품의 상당 수에서 '녹(rust)'이 발견됐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현지 직원 10여명을 데리고 가기에 멋모르고 따라갔다가 이 낭패의 경우를 맞닥뜨린 것이다.

일부 제품은 괜찮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조립된 전 제품을 뜯어 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불량 가능성이 있는 부품이 조립된 제품 3000여 대를 모두 열어봐야 아는 것이다. 불량이 확인되면 해당 부품을 풀어서 교체까지 해야 했다. 주간에는 다른 제품이 조립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다행히도 라인을 비워주며 일을 하라고 했다. 단 다른 작업이 없는 야간시간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밤 8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로 주간 가동이 준비되면 비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매일 저녁 600대를 하더라도 닷새는 족히 걸리는 작업이었다.

첫날의 작업 진도는 최악이었다. 기능직원 8명이 8시간을 꼬박해도 지지부진했다. 처음보는 일이었지만 어렵지 않아 보여 김 씨도 작업에 참여했다. 현지인들에게만 맡겨 놓지 않고 팔을 거둬 붙이고 일하고 있으니 K사 한국인 관리자들이 눈여겨 보는 것 같았다. 측은했는지 다음 날부터는 그 회사 기능직원도 7명 정도 붙여줬다. 첫 날은 새벽 5시까지 꼬박해야 한 일이 다음 날부터는 새벽1시정도에는 끝났다.

덕분에 김씨는 매일 3~4시간 잠자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간에는 본인 회사로, 야간에는 불량품의 현장을 오가며 전자제품 단순해체, 조립 일을 밤낮으로 했다. 한밤중이 되면 '내 일도아닌 데'라는 생각으로 중간에 손놓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묘한 오기가 발동됐고 어느새 일은 끝났다.

다행인 것은 입사한 지 1주일밖에 안 됐지만 현지인 기능직원들과 친근해지는 성과가 생겼다. 100여 명의 직원들 사이에 좋은 평판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1년 동안 힘들게 배운 '현지어' 보다 '직접 뛰어든 것'이 힘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완성품 제조회사인 K사로부터도 호감을 받았다.업무나 납품으로 방문하면 남다르게 대해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회사는 이 일을 계기로 부품의 최초 표면처리나 코팅 단계에서 불량이 나오지 않도록 보완하고 출고전 품질검사도 강화했다.김씨는 지금은 품질관리팀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태국이란 곳에 취업차 간다고 했을 때 관광이나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종류의 전자제품이나 부품회사는 의외라고 생각을 하는 편이었다. 특히 태국은 일본 회사들이 주류를 이뤄 한국 기업의 활동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태국에 와서야 새롭게 안 사실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소감을 물었더니 몇 가지를 말했다. 연수기간 동안 내내 생소한 '끈기'라는 것을 배운 이유가 그제야 몸으로 느껴졌다는것이다.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현지인들은 물론이고 한국인 관리자들도 '요즘 청년답지 않은 모습'에 칭찬을 많이 하더라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지만 스스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같이 일하는 현지인들도 동고동락하며 앞장설 때 잘 따른다는 사실이 남다르게 와 닿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필자는 영화 '파운더(The Founder)'를 한 번 보라고 권했다. 1954년의 실화로 2016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미국 맥도널드사 창업스토리로 '맥과 딕형제'의 사업을 '글로벌프랜차이즈'로 성장시킨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인 레이크록(Ray Kroc)의 독백을 잘 들어보라고…

"어떻게 52살의 한물간 밀크쉐이크 기계 판매원이 1600개 매장을 두고 해마다 약 7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거대 외식기업을 세웠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끈기(Persistenc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