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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하게 나던 진주 만들어 내는 굴 때문에 붙은 이름 진주만?...태평양 보초 역할 하는 곳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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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하게 나던 진주 만들어 내는 굴 때문에 붙은 이름 진주만?...태평양 보초 역할 하는 곳으로 남아

광복절인 15일 진주만이 누리꾼들로 부터 주목을 끌고 있다.

목가적인 풍경의 오아후 섬은 제임스 쿡 선장이 1778년 세 번째로 태평양 탐험을 떠났을 때 그의 선원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곳이다.
이 섬은 아름답고 풍부한 문화와 전설이 깃든 곳이지만, 이곳이 그토록 중요한 장소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주요한 미 해군 기지와 조선소가 있는 진주만이 바로 오아후 섬에 있으며,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일본군은 진주만에 대규모 공격을 가했다.

진주만은 19세기 이전까지 풍부하게 나던 진주를 만들어 내는 굴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이곳은 물이 얕기 때문에 원래는 항구로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군의 방어 기지를 건설하기에 위치가 완벽했고, 1887년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한 독점 권한을 획득했다. 준설 작업이 시작되었고 1908년에는 미 해군 기지와 조선소가 건설되었다.

이 조선소는 현재 이러한 해군 시설로써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이전에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던 진주만이 세계 역사 속에서 유명해진 것은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불시의' 공습을 가하여 USS 애리조나를 격파하고, 21개 함대의 미군 전함과 188대의 비행기를 파괴하거나 손상을 입히면서였다.

이 공습으로 미군 측의 사망자는 2,403명에 이르렀으며, 미국은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사망자 중 거의 절반은 USS 애리조나의 승무원이었다. 철갑 폭탄에 맞은 탄약고가 폭발했던 것이다. 이 거대한 전함의 잔해는 오늘날에도 진주만의 투명한 녹색 물 밑으로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1941년 12월 이른 아침에 벌어진 대학살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유령 같은 모습이다.

진주만은 여전히 해군 기지와 조선소가 분주하게 활동하며 태평양의 보초 역할을 하는 곳으로 남아 있다. 이곳은 또한 미군을 세계대전에 밀어 넣은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생명을 잃은 군인들의 무덤이자 추모소이기도 하다.
진주만은 영화로도 제작 되었다.


온기동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1699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