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으로 보는 미술사(9)-르느와르
前期에는 미시적 표현의 극한적 완결로서 화병
後期에는 거시적 시각에서 날아갈 듯한 터치로 인물화
관절염 앓은 후 롤모델 삼은 드가 뛰어넘어
▲ 르느와르의 '선상의 점심'[글로벌이코노믹=한오 서양화가] 이 글을 쓰기 전에 밝혀둘 것이 있다. 「음양으로 보는 미술사」는 화가 한오의 개인적인 감상문이다. 미술사에 따르는 연대기적 기술이나 객관적 사실의 나열도 아니다. 더욱이 작가 개개인의 작품을 평(評)하기 위해서 깊이 있게 연구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입담있는 선비의 경험적 세계관에서 나오는 일종의 지혜다.
만주벌판을 차로 달리다 보면 먼 곳에서도 누가 사는지 알 수 있는 마을이 있는데, 모든 집들이 남쪽으로 창을 내고 지붕은 기와나 초가, 혹은 다른 재료를 얹었다 하여도 벽만큼은 모든 집이 회를 칠한 흰색이다. 더 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면 아궁이가 놓인 자리가 비슷하고 모든 방에 황토로 바닥을 깔거나 콩물을 먹인 노란 종이를 발라놓았다. 조선족들이 사는 마을이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 서구적으로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옛 전통의 모습을 집단적으로 유지한 마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통이 보존된 만주 조선족 마을의 가옥은 음양과 오행으로 지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의 삶의 기본적 패턴도 음양오행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혼례나 제사, 장 담그는 방법마저 모든 것이 음양오행의 범주 안에서 운용된다.
예를 들면 지붕의 처마를 들 수 있는데 서양가옥은 추운 날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치는 것으로 해결하지만 동아시아 삼국은 지붕의 처마선을 조절하여 추위를 조절한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처마는 음양사상이 살아있는 가장 좋은 예다. 중국의 처마가 용마루를 하늘로 뽑아올려 마음껏 뽐내는 것이라면, 일본 가옥은 눈이 쌓이는 것을 우려하여 심하게 경사지게 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가옥은 동지와 하지의 해의 높이와 그 햇살을 이용하는 지혜가 담긴 높이와 길이다. 하지의 높고 뜨거운 햇살은 처마 끝에 걸리게 하여 툇마루에 조금 들게 하지만 결코 집안으로 볕이 들어오게 하지 않는다. 반대로 추운 겨울에는 가장 추운 날인 동지를 기준으로 하여 따스한 햇살이 집안구석까지 들게 하는 것이다.
▲ 르느와르의 '목욕하는 여인'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미학의 기준도, 그들의 삶과 대화내용도, 처마의 용도와 그에 기준할지 모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필자의 글은 이제껏 배우고 사용하던 서구적 언어의 친숙함을 버리고 다소 낯설지만 진리와 지혜가 살아 있는 우리의 시각을 사용하여 쓰려고 한다. 미술 전문가가 아니라 진솔한 삶을 살다간 선비들의 세계관을 차용해 일반인으로서 삶속에서 누구나 보았고 느꼈을 법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작품을 더 본다거나 자료를 찾는 일 조차 삼가면서 그냥 살아오면서 보고 느낀 작품들에 내 삶의 고명들을 더해 본다. 낯설지만 우리 전통과 조상의 무엇이 느껴지기를 바라면서.
르느와르의 그림은 어느 시기 부터인가 붓자국이 조금 가벼워지고 사물의 윤곽선이 흐려지며 여인들의 살결이 더욱 풍만하게 보이는 것으로 변한다. 르느와르의 그림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도 금방 눈치를 챌 수 있을 정도다.
대학시절 르느와르의 작품 중 화병의 꽃을 모사해본 필자는 작가의 경이로운 붓터치와 절묘한 표현력에 감탄했었다. 그러나 후기 인물화에 와서는 좀 더 따라그리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화병의 꽃이 미시적 표현의 극한적 완결로서 작고 집요한 것들의 완벽한 하모니라면 후기에 나타나는 여인들의 모습들은 거시적 시각에서 그린 인물화다. 이 인물화는 부분적으로 보면 견고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볍게 날아다닐 것 같은 가벼운 색면들이 전체로 볼 때는 완벽한 살덩이와 피부가 되는 것이 정말 경이롭다.
▲ 르느와르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르느와르는 드가를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드가 그림의 완벽한 형태와 아름다움이 부분적 묘사의 완벽이 아닌 것을 르느와르가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으나 아름다움으로의 승화는 드가보다 더욱 성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르느와르의 그림이 부분적 완성의 결집체가 아닌 전체의 완성으로 변화를 이루고, 부분에 대하여 좀더 너그러워 짐으로써 전체가 조금 더 견고하게 되는 원인은 그가 신체적으로 질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작가는 어느 시기부터 심한관절염을 앓아 손등에 붓을 묶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질병으로 인한 불편함 때문에 부분적 묘사의 기술은 잃었을지 모르나 그가 따르고자 했던 드가를 넘어설 수 있었다고 본다.
그가 걸린 관절염이라는 병을 중심으로 그를 이해하여 본다면 그의 성격은 결코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다. 그에 대해 역사가 어떻게 기록했던 필자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마음에 일어난 화를 밖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그 뜨거움이 염증으로 변하며, 그것이 관절에 쌓이면 관절염이 된다. 척추동물 중 맹수에 속하는 종들이 신체적으로 기능이 떨어진 이후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얻는 병이 관절염이다. 필자도 작업을 끝낸 후 찬물에 손을 담그는 지혜를 선배에게 배우지 않았다면 손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함으로써 손에 관절염이 걸렸을 것이다. 르느와르는 미술사속에서 어떻게 기술되었던 치열하게 인생을 살다간 양기가 많은 남자다.
▲ 르느와르의 '정물화'양기가 많은 남자들의 주된 관심은 여자다. 르느와르 회화의 주제는 대부분이 여자다. 풍만하고 살결이 아름다운 청회색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보색인 분홍살색들로 완성을 한 그의 그림속의 여인이 소녀이든, 성숙한 여인이든 모두 같다. 르느와르의 여인에 대한 취향은 오직 그림 속에서만 구현되는 것 같다. 여인에게서 풍만함이란 의학적으로는 불행한 것이기 때문이며, 의학적으로 불행한 풍만함이 결코 건강하지는 않은 것이기에 시각적 아름다움 외에 실제적 접촉과 경험으로 여인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모든 풍만한 여인이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아름다움이 여성의 성정체성을 규정해주는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풍만한 여인은 성호르몬의 양이 가장 적고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호르몬은 여자의 건강한 난소에서 나온다고 한다. 가임기의 건강한 여인의 왕성한 난소에서 나오는 것이 여성호르몬이며 그 시기의 여성의 몸이 생리학적으로 가장 아름답다.
난소에서 나오는 여성호르몬이 부족하면 부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대체된다. 흔히 흥분하는 물질이라 말하는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곳이 부신이다. 부신은 등 뒤의 신장 위에 있다. 그런데 우울하거나 하면 부신의 활동성이 약해진다. 따라서 부신이 약해지면 우울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난소의 활동과 부신의 활동 또는 기능이 약해지면 그 다음 단계에 여성호르몬이 나오는 곳이 지방이다. 여성의 체지방이 난소와 부신을 대신하여 여성호르몬을 만들어낸다.
그즈음의 여성이라면 그 여성이 진정 아름다움을 지녔을까,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의학적으로 뚱뚱한 여인은 임신이 어렵다고 본다. 이런 연유일 것이다.
르느와르 회화속의 여인들은 여인의 여러 가지 아름다운 향기 속에서 찾아낸 작가의 시각적 즐거움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즐거워하는, 경험이 많지 않은 순진한 수컷들의 이상향이다. 거기에는 성기 뒤 홍문을 별표로 그린 피카소의 관찰력도 없고 소녀의 관절 하나하나를 해부해본 연후에 그린 듯한 드가의 번뜩임도, 관찰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르느와르의 여인들은 풍성한 살집 속에서 어머니의 젖냄새까지 느껴지는 남성을 위한 에스트로겐이다.
/글 한오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