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밭을 일구는 사람(9)]-김화례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세대와 계층 아우르는 한국발레 '흥행루트' 개척
한국발레의 교육적 정형을 만들어가는 안무가
토테미즘과 클래식 발레 감흥 조화롭게 연계시킨 『토템』이 대표작
의상의 상징성, 완벽한 구성, 총합적 연희성이 ‘발레의 봄’ 앞당겨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발레노바 예술총감독)는 목포의 바닷가와 시골 풍광을 마음속에 두고, 동화적 삶을 살아온 발레리나 출신 안무가로서 최근 그녀의 안무작 『강아지 똥』은 그녀의 정서를 대변하는 최신작이다. 그녀는 서울예고 수석 입학을 거쳐 이화여대 무용학과와 교육대학원을 거쳐 교수가 되었다.
▲ 피치카토 폴카[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평론가] 엄격한 내재율, 살가움으로 감지된 김화례(金花禮
▲ 분장실에서 분장하는 김화례 교수
1952년 6월 30일생인 그녀는 발레 상상력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해 왔다. 그녀는 전쟁의 상흔과 아픔을 겪고 진주가 되는 과정을 알고 성장해 왔다. 고집스럽게 추구해온 그녀의 발레 도덕률이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금은화를 닮아있는 그녀는 발레 발전에 관한 한 관대함과 헌신적인 사랑을 갖고 있다.
1969년 년호 예술상 수상(서울예고 수석졸업) 이후, 김화례는 1979년 이화여대, 경희대 무용학과에서 강사로 강의하며 1980년 ‘발레노바’를 창단하고 『목격자』(1980),『피치카토폴카』(1982),『한길』(1985),『봄의 소리』(1986),『사랑의 샘』(1987),『발레아다지오』(1987)와 같은 다양한 창작 발레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녀는 탐구형 안무가다.
▲ 목격자
유능 발레인으로서 약자와 작은 것,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가없는 애정은 김화례 발레의 출발점이 된다. 발레리나로서의 그녀는『지젤』(1991)과 『길 위에서』(1993)에 출연하였고, 1994년 제16회 서울무용제 참가하여 『토템』으로 한국무용협회로부터 대상, 연기상, 미술상 수상과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최우수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한국 토테미즘과 클래식 발레의 감흥을 조화롭게 연계시킨 안무작 『토템』은 전설을 바탕으로 한 현대인의 종교적 귀의를 다룬 작품이다. 작인(作因)이 표출된 이 작품은 지성인의 종교적 갈등 속에 사회적 갈등을 중첩시키는 효과를 창출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자유인의 고뇌를 다룬 이 작품은 역대 서울무용제 수상작 중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꼽혔다.
1998년 안무작 『우리들 시대의 노래』는 음악가 고(故) 안익태 선생의 ‘코리아 환타지’를 발레화한 작품이다. 한국적 이미지의 춤사위를 발레동작에 접목, 우리민족의 강인한 민족정신과 역사적 수난을 그린 장편 무용극이다. 마지막 애국가 부분은 관객 모두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김화례는 이 작품으로 창작발레의 역량을 다시 한 번 과시한다.
▲ 토 템
『우리들 시대의 노래』로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최우수예술인으로 다시 선정됨으로써 김화례는 동시대 최고의 발레 안무가로 인정받게 된다. 한국형 발레 정립을 위한 김화례의 격정적 안무작 『기억의 퍼레이드』(2002)는 춤의 연대기를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춤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사료적 공연을 남기게 되었다.
김화례는 국내 무용관객 특성과 니즈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통해 『넌센스』(2003·발레협회 ‘작품상’ 수상작)를 비롯해, 관객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레퍼토리 개발에 주력함으로써 발레 대중화에 앞장서왔다.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 시키면서 작품성을 드높이는 작업은 이데올로기적 이분법을 차단하는 그녀의 능력이다.
그녀는 한국발레협회로부터 공로상(2002), 작품상(2003), 무용가상(2006), 대상(2008)을 받아왔고, 한국발레연구학회로 부터 한국발레아카데미상(2003), 기독교 문화 ‘무용부문’ 대상(2004), 2011년, 2012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우수공연으로 선정된『강아지 똥』(2007년 초연이후 전국투어)에 이르기 까지 지속적으로 발레계에서 주목을 받아오고 있다.
▲ 한 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예술디자인대학 교환교수, 한국발레연구학회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발레분과 위원장을 맡았고, 무용포럼, 국제콩쿨, 한국발레연구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발레의 진정성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으며, 발레에 대한 선입관 타파와 발레인구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화례는 40여 년간 무용수, 안무가, 그리고 교육자로서 한국 창작발레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넌센스』(2003), 『구두』(2005), 『강아지똥』(2007)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발레예술의 대중화와 미학적 상승을 이끌어온 그녀는 『강아지똥』으로 결정적 전기를 맞고 있다. 어린이 관객 10만명을 팬으로 만드는 기록을 써내고 있다.
서양 고전발레에 한정된 국내 발레계의 레퍼토리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신선함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잠재 관객을 개발하는데 앞장서왔고, 그녀의 안무는 늘 관객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해온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가족극 형태의 작품 안무를 오랫동안 고심하면서 안무해낸 작품이 『강아지똥』이다.
▲ 지 젤
발레로 들려주는 동화, 가족발레 『강아지똥』은 고(故) 권정생의 원작동화 ‘강아지똥’을 텍스트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강아지똥 마저도 소중한 자산이다.’라는 생명사상을 보여준다. 어린 관객 모두를 쓸모 있는 존재로 부각시키며 ‘동화의 숲에서 만난 발레’는 ‘원 소스 멀티 유스’의 전범(典範)으로 기능한다.
세계 최초의 발레작품으로 만들어진 『강아지똥』은 격조의 발레와 비천의 상징과의 만남을 조화롭게 풀어 승화시키고 있다. 권정생과 김화례의 산책로에서 만난 ‘겸양의 미덕’과 자기숙성은 문인화로 읽혀지거나 오일 페인팅으로 독해되어도 지장이 없을 듯하다. 사랑을 키우는 발레인 이 작품은 계락적 이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폐해를 찬찬히 극복해내고 있다.
이탁오의 동심설(童心說)을 간파한 안무가 김화례, “동심이 가로막히면,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오지 않고….” 김화례의 발레 안무작은 소박하고 진지한 가운데 빛을 발하고 있다. 고결의 빛깔과 전설의 시대를 연 그녀가 찾아 나선 발레는 ‘학인(學人)의 등불찾기’와 같고, 고운 마음을 새겨 넣고 그림을 친 여름 부채와 같다.
▲ 강아지똥
김화례 발레의 저력은 교훈적 내용을 클래식하게 처리하면서 순수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동화보다 더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창출해내면서 발레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의상의 상징성, 완벽한 구성, 총합적 연희성은 발레의 봄(春望)을 기다릴 만하다. 최근 그녀의 창작발레는 특히 아이들에게 희생과 협동, 봉사와 배려를 가르쳐 주는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강아지똥』은 2007년 충무아트홀에서 초연된 후, 전국 주요 공연장에서 초청을 받아 70회가 넘는 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전 공연 전석매진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보인 이 작품은 민간발레단의 창작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문 성과다. 디지털 문화 환경 속 어린이들에게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따스함,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다.
김화례는 세대와 계층을 떠나 누구나 ‘즐기고 공감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왔으며, 발레를 통해 이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전국 공연장에서 초청받는 콘텐츠를 창작해낸 안무가의 능력과 교육자로서 전문인력 양성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김화례식 ‘한국발레 흥행루트’ 찾기는 성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