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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 일군 사람(13]독도를 춤으로 만든 백현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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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 일군 사람(13]독도를 춤으로 만든 백현순 교수

[춤밭을 일군 사람들(13)]―백현순 한국체육대학교 생활무용학과 교수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千告獨島指汗' 선봬



전통과 창작 아우르는 한국 춤계의 큰 기둥

대구무용단·창원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영남 춤 일궈


서정적 판타지로 춤의 상상력 극대화 시킨 창작춤 직조


다양한 아시아 국가와 유럽에서 초청 공연



▲ 천추여죄균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평론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2007)을 수상한 백현순(白鉉順

·Baek Hyun Soon·한체대 생활무용학과 교수)은 1958년 9월 21일(음력) 대구 출생이다. 그을린 황옥에 열을 가하면 금광석이 되듯, 그녀가 열정을 품으면 세상은 분홍색으로 변하고 만다. 다른 사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녀는 늘 행복의 공유를 추구한다.

백현순은 서식지와 계절의 변화, 생성과 소멸을 통해 그 변화의 의미들을 찾아내고자 늘 노력한다. 장사익과 스트라빈스키의 차이 속에서 느끼는 부처 같은 그런 창작을 꿈꾼다. 백현순의 춤 속에는 가을을 남기고 떠난 이들의 아픔을 느끼기도 하고 잔가지에 내리는 실루엣에서 사색의 터를 잡기도 한다. 차가운 공기를 통해 햇살을 받은 새로운 아침의 의미를 터득한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와 경기대를 거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장에서 학교에 이르는 여정까지 특히 수하의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온 그녀는 수녀들처럼 편애 없이 누구에게나 부드럽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성애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 그녀는 무용수들의 애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안무가이자 교육자다.

▲ 백현순 한국체대 생활무용학과 교수
탄생의 의미와 우주의 오묘한 섭리를 깨우치며, 성장의 통증과 결실과 축제의 의식들을 떠올린다. 느림의 미학을 통해 슬로시티를 찾아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다. 늘 그녀의 창작노트에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토해내는 상상들이 착상으로 침전되고 꿈틀되는 무선(舞線)들이 밤의 신(神) 뮤우즈와의 밤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로서 그녀는 한국 전통무용을 전공했지만 꾸준히 창작 무용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1994년 대구무용제 안무상과 금복문화상, 1995년 전국무용제 우수상, 2001년 경남무용제 최우수상·안무상을 수상하는 등 대구·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서울로 활동무대를 바꾸었다.

지금까지 촛불처럼 그녀를 태운 밤은 열병의 춤이 되고 사랑이 되었다. 창작을 위한 상상의 욕심들이 타올라 타 장르와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퍼포먼스와 퓨전 댄스를 창출해 내었다. 그녀의 작업은 분주한 일상 속에서 유리알 유희의 경쾌함과 알을 깨고 나오는 여린 새끼 새들처럼 진통이 따랐다. 의리가 중시되는 춤판에도 그녀는 늘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영혼을 보다’, ‘영혼에 답합니다, ‘2002 이매지네이션’, ‘均/균’과 같은 영상작업에 참여, 춤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 구지가
백현순의 대표 안무작들인 『회룡포 연가』(2004), 『천고독도지한』(2005), 『솔거』(2006), 『태양새, 고원을 다시날다』(2007), 『유림』(2010), 『유림(儒林)-천추여죄균』(2012) 등은 선비정신, 민족애, 조국애에 관한 것들이다. 그녀는 남편 육정학(영남외대 교수)과 ‘장승’

그녀의 시심과 동심으로 꿈꿔온 나날들이 본격 서정과 정신으로 바뀐 것은 『회룡포 연가』에서 시작된다. 완당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의 열린 영역에서 상상해낼 수 있는 신비의 섬 회룡포에서 마음 수양한 평범한 사람들이 이 땅에 살아남은 까닭을 다룬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초월한 그런 평상심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도덕경의 삶이 투영되는 이 작품에서 선남선녀의 사랑은 인생을 살찌우는 원동력이며, 이별 또한 성숙을 위한 시작이고 통과의례임을 보여주는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일상어법 속의 비유나 상징 혹은 과감한 생략 등은 리듬적 긴장감과 풍부한 상상력의 공간을 확보한다. 시·서·화(詩書畵) 및 문학·역사·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천고독도지한』은 ‘찬란한 아침 해가 타오르는 독도/ 아침 노래와 한판 멋진 춤을/ 시와 동심으로 쏘아 올릴 영롱한 색동/ 그대가 부르면/ 그대가 부르면…’이란 그녀의 상상에서 출발한다. 8·15독도 이벤트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1. 광복의 빛깔(기쁨) 2. 독도 지신을 위로(외로움/기원) 3. 독도를 다시 찾은 사람들(안타까운 환희) 4. 독도를 사랑한 사람들(끝없는 사랑) 5. 천고독도지한(千告獨島脂汗) 등 5장으로 구성되었으며 해외 공연도 이루어졌다.

춤꾼들. 엄숙함과 기쁨과 안타까움과 모든 감정으로 독도를 위한 춤을 춘다. 주변 관광객도 같이 춤을 춘다. 독도를 테마로 만든 지도위에 제단이 차려지고 독도의 안녕을 기원한다. 백현순은 누구도 해내지 못한 독도 기원무를 춘 것이다.

▲ 솔거극기의 춤으로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공식 춤이 추어진 것이다. 그 중심에 서있는

『솔거』(원제: 솔거의 화첩-선선선/禪·善·線의 길)는 “21세기의 화가들, 춤꾼들, 예술가들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화두를 던진다. 창작 춤의 현대성을 추구하며 『솔거』는 신라 진흥왕 때 황룡사의 ‘노송도’를 그린 신라인 솔거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솔거의 희로애락, 방황과 좌절을 디테일하게 재현하며 천년을 넘어 온 그림과 춤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단군에게서 신필(神筆)을 받은 솔거의 구도에 이르는 길은 더 외롭고 처절하게 묘사된다. 전통음악을 근저에 깔고 현대음악에 까지 강렬함을 덧입힌다. 『솔거』는 파멸의 극적 구성을 피하면서 선(禪) 무용은 색과 선에 관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주제로 한다. 한국의 색채미학과 동양적 선(禪) 사상, 순박한 화가의 이미지가 갈라진 마음을 치유하는 합일로 간다.

대지에 천기가 뻗히고 세상은 그 빛으로 평화를 담아온다. 새로운 희망을 얘기한다. 때론 여인이, 때론 자연이, 때론 무리들이 방해꾼으로 등장한다. 새떼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가운데, 정염에 불탔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노송도’를 그리는 솔거, 모든 유혹을 신앙으로 극복한 결과다. 작은 부처로 다시 태어난 솔거. 그는 나라와 번영을 비는 그림을 완성하고 자신의 완성과 깨달음을 배운 진정한 예술가로 태어난다.


▲ 유림백현순의 창작 춤 프리즘 이십오 년에 걸린 『태양새 고원을 다시 날다』는 1부를 『천계』, 2부를 그 제목으로 삼은 작품이다. 한반도의 화기를 다스리고 무궁발전을 축원하는 제(祭) 형식을 띄고 있다. 민족의 자존과 자긍심을 드높인 이 작품은 ‘삶, 그 이상의 고도’에서 느끼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과, 태양새가 부활하여 둥지로 찾는 과정을 흥미롭게 전개시킨다.

『천계』는 춤의 시원을 찾아가는 의식의 흐름을 그리고 있다. 다소 철학적인 명제를 우리 삶에 밀착시키면서 춤이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춤의 속살을 느끼며, 의식의 이미지화를 시도하며 우리와 소통을 시도하는 작업은 교훈적이다.

상고사에서 출발한 『태양새 고원을 다시 날다』는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서정적 낭만을 동시에 담고 있다. 분지가 고원이 되고, 고원은 유토피아가 된다. 도입부의 ‘하늘민족’은 환상적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민족 형성 과정은 느린 서정으로 몰입을 유도한다.

한국인의 우주관과 생명관을 반영하는 ‘태양새’의 비상과 아픔, 태양 속에 살고 있으니 검게 보일 수도 있고 엄청난 위력과 카리스마의 상징이었던 이 새의 존재를 무지 속에 방기한 것은 조상에 대한 무례다. 불과 분란을 다스리는 태양새는 화기를 잠재우고 평화를 가져온다. 작은 태양새들의 축복을 받은 대지에는 평화가 깃들고 우리민족은 화합을 약속한다. 어둠을 걷히고 온 누리에는 영광의 빛이 비친다. 세사(細沙·미세모래)가 비처럼 내리는 가운데 시민들이 평화를 환호하면서 암전되면 이 낭만적 서사는 끝이 난다.


▲ 태양새 고원을 날다『유림』은 선비와 사당패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며, 2012년 버전 『유림(儒林)-천추여죄균』은 유림을 모티브로 한 우리 춤의 창작 한 마당으로 11월4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유학정신을 나름대로 해석한 학자들의 삶을 이어갈 『유림』시리즈는 유학자의 삶과 그 사상을 조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부 『실크로드를 찾아서』는 『그들은 그렇게 불렀다, 꼬레』의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실크로드에 관한 유쾌한 상상이다. 2부 『유림(儒林)―천추여죄균』의 부제 ‘천추여죄균’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네가 지은 죄는 없어지지 않는다’란 뜻이다. 송시열은 반대파에 의해 역모 가담 누명을 쓰고 죽으면서 이 말을 남긴다.

백현순의 『실크로드를 찾아서』는 마음으로 읽는 춤의 소리로 사람들을 소통시키는 미구(美具)로 사용된다.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의 도래, 그 이면의 남사당패들이 개척한 실크로드는 군무의 화려한 비주얼과 스펙터클한 조형으로 전위적 감성을 유발한다. 낭만적 춤 서사, 다양한 음악, 이국적 동작, 상상력을 극대화한 스토리텔링으로 유혹의 일면을 보인다.

기존의 형식을 타파하고, 남과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춤작가(Dance Essayist) 백현순은 카타르시스와 환호로 『실크로드를 찾아서』는 소통의 실크로드를 완성한다. 카오스 같은 혼돈의 미로를 넘어 순수와 통섭의 진리를 남긴다. 남사당패식 경쾌함과 대리희생자의 눈물이 번진다. 그녀의 상상에 걸쳐있는 깨달음, 해학, 초월은 논리적 이지력을 뒷받침한다.

『유림(儒林)―천추여죄균』은 우암 송시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노론 대표였던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삼천 번 이상 언급될 정도로 논쟁의 중심에 섰던 문제적 인간이다. 그의 궤변이나 언행은 늘 양날을 지니고 있었다. 선비 정신을 앞세운 이 작품은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으로 북벌을 추진했던 조선후기 효종 때 송시열의 이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현실 같은 상상력으로 송시열과 유림들의 과거와 현실과의 대비를 통해 이미지 구조를 정적인 패턴으로 엮고 있다. 송시열에 대한 숭상의 예(禮)는 결국 작인(作因)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문제적 선비의 흐름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음을 상기시키고, 그 삶을 조망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백현순은 영혼의 울림과 영원의 메시지를 늘 고려한다. 그녀는 쌍 무지개 뜨는 낭만을 즐기며, 진홍의 화첩을 펼치기도 하지만, 거친 이야기를 소화해내며 우리 역사와 인물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의 꿈속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 모든 순간순간들을 춤으로 연결시키며 한여름 나동(裸童)들로 순수했던 그녀도 세월을 감지하고 있다.


/장석용 댄스칼럼니스트(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