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영혼이 일궈내는 전통춤, 그 내재된 해학을 보다
전통춤 변주하지 않고 고증‧연구 통한 재안무에 초점
춤의 핵심적 기법 재해석 통해 다양한 레퍼토리 연구
[춤밭을 일군 사람들(17)]이혜경(이혜경&이즈음무용단 대표)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이혜경(李惠京·Lee Hea Kyung)의 진정한 소통은 겸손에서 이루어진다. 그녀의 유전자는 선화예중·고, 성균관대 무용학과와 교육대학원, 세종대학교 무용학과 박사를 딸 때까지 이어진다. 황금싸리의 전설을 간직하고 무리지어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그녀는 대학졸업 후 첫 출연작으로 양성옥 안무의 오페라 ‘황진이’에서 황진이 역할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듬 해 6월 21일 국립극장 달오름. 이혜경&이즈음 무용단은 『이매망량』을 공연하고, 그녀는 안무 및 출연으로 안무자에 등재한다. 이 무용단은 ‘정체성을 갖춘 현대 춤 창조’에 집중한다. 5년 뒤, 한국예술평론가 협의회의 심사위원 선정 특별예술가상을 수상한다. 많은 매체들이 그녀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그녀의 창의력을 집중 분석하는 계기가 된다.
춤의 상부구조에 대한 탐구심과 해학성에 대한 관심에 기인, 2005년 9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국제무용협회 주최 제8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한국 젊은 무용가의 밤’에서 『입묵』을 안무·출연하였고 11월에는 독일 브레멘 예술대학 초청으로 『원』을 안무, 출연하게 된다. 춤의 심연으로 그녀는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2006년 한국 창작춤 메소드 공연 『꽃살문』을 안무·출연(포스트극장), 우즈베키스탄 타쉬겐트 필하모니 극장 초청 『천지의 소리』안무, 국립무용단 주최 바리바리촘촘디딤새 『진흙얼굴』 안무·출연(국립극장 별오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국립오페라 발레극장 초청 『이매망량Ⅱ』안무, KBS 국악 한마당 『소고춤』출연 등 자신의 역량을 쌓아 나갔다.
이 무용단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대상 단체로 선정돼 활발한 창작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7년 국립무용단 안무가 페스티벌 떠오르는 안무가전에서 『동동』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지원 선정작으로 이혜경의 춤 『토막말 vol.2』 안무·출연(아르코 대극장), 국립무용단 ‘안무가 페스티벌 2007’ 『구토』안무(국립극장 달오름), 제14회 창무국제예술제 한국춤의 미래 『토막말』안무·출연(포스트 극장), 대학로 춤살판 개관기념 공연 『꽃살문-두 번째 이야기』안무, 헝가리 C. I. O. F. F Ⅵ. Nyirseg Internal Festival 초청-이매망량Ⅱ』안무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2008년 이혜경은 댄스포럼 주최 평론가가 뽑은 제11회 젊은 무용가 초청 공연 ‘우수 안무자’상 수상작 공연 「다·툼」안무 및 출연(한전아트센터 대극장), 금호 아시아나 문화재단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후원 최명훈 작곡 발표회 ‘공간, 소리 그리고 움직임’ 안무(금호 아트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지원 선정 이혜경의 춤 제3회 발표회 「춤... 토별가」 안무·출연(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용 전문지 <춤>에 ‘춤의 얼굴’선정, 제1회 대한민국 무용대상 갈라 공연(아르코 대극장)을 하게 된다.
2009년에는 제2회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 문화제에 『진혼무』, 『장생보연지무』 안무·출연, MODAFE 국내 초청작 『꼭두질』(아르코 소극장),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 전통예술부문 지원 이혜경&이즈음의 『치장(治粧)』(국립국악원 우면당),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작 초청 공연 『다·툼』(아르코 대극장)을 안무하게 된다.
2010년, 한국무용협회 주최 제31회 서울무용제 자유참가부분 『꼭두질』(아르코 대극장)을 안무하여 이혜경은 최우수 단체상을 수상한다. 서울문화재단 공연예술창작활성화 지원 선정작 『박』안무(아르코 대극장), 국립국악원 시대공감 열린무대-꿈꾸는 예인 선정 『치장(治粧)』안무(국립국악원 우면당), KBS국악한마당 『도담고놀이』(KBS홀), 한국현대무용협회 주최 MODA-EX 『다·툼』(아르코 대극장)으로 그녀는 도약한다.
2011년 그녀의 진가가 알려져 한국무용협회 주최 제32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부문 『여우못』이 안무가 대상을 수상했다(아르코 대극장). 한국공연예술센터 걸작공연시리즈 선정작 『박』(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심사위원선정 특별예술가상’ 수상작, 아르코 대극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기금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춤의 심오함을 추구하는 안무자 이혜경은 내년 독일 다름슈타트 시립무용단 지도를 맡아 진행할 예정이며, 그 외 많은 국제 교류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춤밭을 일구는 사명을 맡은 그녀의 안무 연보에 끼는 많은 작품들 중에 그녀의 대표작은 『꼭두질』,『박』,『여우못』,『치장, 治粧』,『이매망량』을 꼽을 수 있다.
『꼭두질』은 판소리 ‘심청전’ 중 뺑덕어멈 재산탕진 대목으로 작품을 전개하며 주인공은 꼭두다. 꼭두는 머리의 정수리를 뜻한다. 심청전에 등장하는 심봉사와 뺑덕의 머리 정수리에 앉아 그들을 조정하는 다른 존재를 꼭두라 가정하고 그들의 반복적 행위가 꼭두질이다. ‘꼭두질’은 인간을 지배하는 또 다른 존재다. 이 작품은 천사와 악마의 이야기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점점 더 무의미해지고 있는 현대사회, 우리를 지배하는 꼭두의 존재를 가정하여 풍자한 현실 고발적 작품이다.
『박』은 판소리 중 하나인 ‘흥부가’를 소재로 흥부가 박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단편적 회상과 상상을 ‘박바라기-춤대목’이라고 지칭하고 이를 춤언어로 쓴 작품이다. ‘흥부가’는 선한 흥부가 결국 복을 받는 권선징악 사상을 그리고 있다. 안무가의 『박』의 총체적 스토리라인은 원본 흥부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흥부가 소박한 상상을 하고도 이를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자신을 책망하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흥부가 더욱 측은해짐과 동시에 그 결말이 권선징악임을 순간 인지하게 되며, 이를 확장시켜 핵심 메시지인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여우못』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여우령’이라는 존재의 입장에서 춤으로 창작해낸 작품이다. 여우령들은 짓궂기는 해도 악의는 없는 영들로서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전형적 인물들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원래의 동화 또한 친숙하지만 동시에 낯선 새로운 이야기로 변모하게 된다.
금강산 어느 기슭, 여우의 혼백들인 여우령들이 여우못이라 하는 호수에 모여 살았다. 여우령들은 장난기가 많은 영물이어서 자기들의 영역인 ‘여우못’에 다가오는 것이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리지 않고 골탕 먹이는 취미가 있다. 하루는 이곳에 하늘 선녀들이 멱을 감으러 온다. 지체 높은 처녀들이라 여우령들은 애써 자제해 보지만, 결국 본성을 거스르긴 힘들어 장난을 치기 시작하고, 마침내 근처에 사는 나무꾼 하나를 꾀어온다. 어디 무슨 일이 벌어지나 실컷 구경도 하고 가끔 끼어들어 은근히 조종도 해 보자는 계산에서다.
『치장, 治粧』은 잘 매만져 곱게 꾸밈을 뜻하는 말로, 우리 전통 움직임이 현대인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들의 감성과 시각에 맞추어 현대적으로 안무한 작품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우리 춤의 핵심적인 기법들을 재해석하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구해 우리춤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전통춤을 변주하지 않고, 고증과 연구를 통한 재안무에 초점을 두고 있다. 대중화에 역점을 두면서도 전통춤의 계층별 분류(권번계, 무속계, 민속계, 재인청계 등)를 고려, 그 특성을 살리고 있다. 춤꾼에게 있어서 진정한 치장은 거친 호흡을 뱉어내는 작업의 끊임없는 반복임을 밝히고 있다.
『이매망량』에서 ‘이매망량’은 도깨비의 웅얼거림 또는 산과 물, 나무와 돌 따위에 깃든 정령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이들의 속삭임을 경청한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행했던 것들에 대해 이제 재고할 때가 아닌가, 하는 작의에서 출발한다. 억울하고 하염없이 토로하고픈 것이 인간의 혼백(魂魄)만은 아니다. 이혜경은 세상의 모든 숨 쉬는 것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낮게 웅크린 채 귀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녀의 귀는 낮은 소리들이 들리는 것에 대해 그 소리가 낯설지 않고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다.
이혜경, 금년에도 그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문화예술교류지원 무용부문 선정작 『박』으로 Polish Dance Theatre 초청으로 DANCING POZNAN에 참가했다. 12월 21일과 22일에는 포이동 M극장에서 양일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부문 선정작 『짧은 수다』의 안무로 분주하다. 안무가 이혜경은 묵묵히 부지런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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