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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무의 태두…그녀의 춤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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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무의 태두…그녀의 춤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춤밭을 일군 사람들(37)―김매자(창무예술원 이사장)]

매실당의 전설을 써내려간 한국 창작춤 조련사


원시적 사랑과 슬픔의 극기…'밝음'을 화두로


창무예술원 중심으로 한국무용계 중추적 제자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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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간다/사진=김중만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김매자(金梅子·Kim Mae Ja)는 1943년 4월 8일 강원도 고성에서 출생했다. 상동 구래 초등학교, 부산 남성 중학교, 부산여고, 이화여대 무용과, 경희대 한국무용과 석사, 뉴욕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가 되었다. 광복, 6․25전쟁, 근대화, 현대화를 거치면서 그녀가 해온 춤 작업은 고스란히 우리 춤의 소중한 역사가 되었다.

그녀의 춤들은 견사(絹紗)의 부드러움과 뜨거운 열정을 담은 농밀함으로 모두에게 행복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슬픔의 누적층을 탐사하게 만드는 깊이와 기교를 보여준다. 김매자, 그녀의 춤 원형질은 원시적 사랑과 슬픔의 극기다. 이 위에서 그녀는 자신의 ‘울림의 공간’인 춤본을 만들고 기억을 더듬어 가슴으로 읽는 작품들을 직조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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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光),2011년
그녀는 유년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춤 재능을 보였고, 열두 살에 추강(秋剛) 김동민 선생의 ‘민속무용연구소’(부산 최초의 국악교육장)에 들어가 춤, 연기, 소리를 배웠다. 당시 한국전통무에 매진, 인간문화재들로부터 궁중 무용, 승무, 살풀이 등을 사사받았다. 그녀의 ‘춤 피’는 멀지 않은 마을 홍천 출신의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를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무용가 김매자, 그녀의 열정은 적색, 살색, 백색의 연대기를 거쳐 왔다.

견고한 캔버스, 투박한 화판위에 한국적 음감을 실어 써온 그녀의 무시(舞詩)는 동경해왔던 춤으로의 개안을 이끈 신천지(신무용)의 이면이다. 그녀는 피난시절 부모들이 가족들을 보해해왔던 절박감으로 무가(舞家)의 묵시적 계율을 만들고 이원(梨園)에서 ‘지성의 외로움’, ‘근원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피난처와 든든한 다리가 되기로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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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光),2011년
김매자는 1976년 한국 창작무용을 염두에 둔 창무회를 설립한 것 외에도, 지금까지 1000회가 넘는 해외 초청공연, 무수한 한국창작무용의 지도 및 안무, 타 장르와의 크로스 오버, 창무 국제무용제, 제자 양성과 춤 기틀잡기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녀의 그러한 노력은 작년 한국춤비평가협회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무용 전공자 중 창무회를 거치지 않은 재능있는 이화여대 출신은 없다. 이곳 포스트 극장은 춤의 테마를 결정하고, 철저한 분석을 통한 각자의 구성으로 무대에 자신의 리포트(공연)를 콜로퀴움하는 곳이다. 그 공간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무투본색(舞鬪本色)을 드러내어야 한다. 매실정사(梅實精舍)의 결실은 제자들의 면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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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2011년
그녀의 수행, 1968년부터 한양대, 상명여대, 이화여대, 서울교대 강사를 거친다. 그녀는 71년 이화여대 무용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91년 그 직을 떠날 때 까지 한국 춤의 예술적 가치를 고양시켰고, 전 세계에 알리는 파수꾼이 되었다. 그녀는 정갈한 배꽃을 영원히 사랑하도록 만드는 금강석의 여인이다. 포스트극장은 그녀가 93년 문을 연 첫 무용전용 소극장이다.

같은 길, 다른 꿈으로 창극에서 현대 창작무에 이르기까지 진주의 탄생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한 그녀가 분주한 일상을 소화해내며 자신을 건재 시키는 비법은 춤으로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작은 오솔길의 구성과 한옥의 처마선을 사랑하면서도, 대로의 필요성과 현대 건축물의 다용도를 생각해내는 그녀는 분명 우리 춤 발전소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살풀이,2011년이미지 확대보기
▲살풀이,2011년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1986년 11월 9일자 줄리아 팩스의 “김매자는 한국의 전통무용을 서양 현대무용의 핵심에 아주 성공적으로 용해시켰으며…. 그는 단지 무용공연에 초청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무용과 그녀의 창작물에 있어서 불교세계의 불법적 진리에 우리를 초청한 것 같다.”라는 글이 그녀의 작품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녀의 춤의 화두는 ‘밝음’이다. 슬픔을 묶어두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조의(弔儀)적 춤 수사에도 밝음을 견지한다. 유년에 가족 상실을 목격한 그녀는 기도와 희망으로 그 상처를 치유해왔다. 후학들에게 일정한 틀에서 자유를 향유하도록 밀교(密敎)를 내렸는지, 그녀의 제자들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세상을 대하는 분위기가 차별화되는 것 같다.

▲춤신명,1982년이미지 확대보기
▲춤신명,1982년
박애, 겸손, 청초로 제자들의 꿈을 이루어 주는 미양선무(美羊禪舞)의 그녀도 춤 인생 육십이라는 고개를 넘었다. 춤에 대한 호기심, 정진, 열정과 교육, 우리 춤의 원형과 창작춤 연구, 국제교류로 이어지는 그녀의 삶은 현실 직시, 조화를 이루는 감각이 뛰어나 호감을 산다. 그녀의 훈련은 쓰고 매우나 무독하고, 과정이 지나면 달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매자의 봄과 여름, 전투와 전장에서 물러나, 그녀는 92년부터 그녀는 창무예술원 원장, 포스트극장 대표, 창무예술원 이사장으로서 국내외의 다양한 공연과 춤본 창안을 통해 한국 창작춤의 발전과 국제교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녀의 춤 메쏘드에 대한 오마주는 일본 야마모도 야쓰에상 수상(2000)과 일본 일한문화교류기금상 수상(2000)이 이를 뒷받침한다.

▲춤본3,1986년이미지 확대보기
▲춤본3,1986년
제24회 서울올림픽 폐막식 『떠나가는 배』의 총괄안무, 그녀의 안무는 ‘감미로우면서도 장중하다’, ‘한국 춤의 번영은 김매자가 기울인 심혈과 절대 갈라놓을 수 없다’ ‘한국인의 정서를 세계인과 공감하는 품격 높은 예술로 승화시킨 장본인’이라는 등의 평을 받고 있으며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중의 선두주자다.

그녀의 춤연기자 데뷔는 중3 때 창극 해롯 ‘왕자’ 역이었다. 1959년 봄, 고1때 매료된 신무용은 그녀를 한국을 대표하는 안무가로 만들었다. 뉴욕타임스는 ‘무대 위에서의 섬세함과 지적인 그녀의 모습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극찬했다. 그녀의 대표작은 춤본Ⅰ(1986), 춤본Ⅱ(1989), 하늘의 눈(1999), 심청(2001), 얼음강(2002), 느린 달(2006), 봄날은 간다(2012) 등이 있다.

▲봄날은간다/사진=김중만이미지 확대보기
▲봄날은간다/사진=김중만
<춤본 Ⅰ>은 그녀의 춤의 기본 틀이다. 춤의 시원, 춤의 근저(根底), 생김새를 찾아 묻고 궁리하고 배우고 익히며 갈고 닦는 학습과 수련의 한 모형을 제시, 춤 철학자로서 평생을 두고 수행해야 할 춤의 법도를 정리한 연습무로서의 한 본보기라고 그녀는 겸허하게 말한다. 춤의 동인(動因), 에너지원(原), 몸과 움직임의 중심체, 소우주로서 몸을 성찰하는 춤이다.

<춤본 Ⅱ(내용 : 우리춤의 내적인 틀)>는 1989년 초연 된 김매자의 대표작이자 창무회 춤의 바탕인 춤본 시리즈로 <춤본Ⅰ>의 외적인 틀에 민속춤의 자유로움, 무속춤의 주술성, 불교의식의 제의성을 바탕으로 한국춤 속에 내재된 내적 충동 즉 신명을 형상화한 작업이다. 우리 춤 순례 과정, 삶과 우주운행의 길이 하나임을 짚어 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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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간다/사진=김중만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표현한 『하늘의 눈』과 심청에 관한 또 다른 해석으로 심도 깊은 인간사를 탐구한 『심청』은 『숨』의 자줏빛 응어리나 『삼』(삶)의 춤 속에서 삶이 치른 대가에 대한 찰나(刹那)의 돌봄을 내포하고 있다. 1985년에 발표한 ‘꽃신’과 견주어지는 『느린 달』은 형이상학의 상부를 차지하는 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인생, 사회, 인간에 대한 이치와 겸허함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얼음강』은 6·25 전쟁을 겪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만들어진 자전적 이야기다. 여덟 살 때, 가족과 함께 탈북을 시도하며 건넜던 얼음 강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돌 깨는 소리’의 여운이 ‘한’과 연결된다. 전통악기로 편성된 이 작품은 슬픔을 더욱 침하시키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본 사람의 공적 기억, 김동환의 ‘국경’의 분위기가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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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간다/사진=김중만
2011년 겨울, 일본 교토조형예술대 무대예술센터는 ‘월경-경계를 넘어’란 주제로한국 무용가 김매자를 집중 연구하는 공연 및 심포지엄을 가진 바 있다. 그녀의 안무작 ‘살풀이춤’ ‘춤본2-군무모형’ ‘춤, 그 신명’과 ‘광(光)’ 이 공연되었다. ‘광’은 612년 일본 나라(奈良)에 가면무용극과 기악을 전달한 백제인 미마지(味摩之)를 무용화한 작품이다.

2012년 그녀의 춤 환갑을 기념하는 ‘봄날은 간다’는 지난 봄날에 대한 회환과 관목으로 커온 7인의 무사(舞師)로 성장한 제자들과의 뜨거운 조우, 군무와 그녀의 독무는 지난날의 화려함이 눈물겹고, 후학들의 밝은 빛, 희망이 더욱 돋보이는 무대였다. 여름, 울진문화예술공회관에서 공연된 ‘놀자’ 공연은 즉흥으로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며, 프롤로그의 잡담과 네 명의 무용수가 사랑의 색향미(色香美)를 현대식으로 표현했다.

▲춤본2,1986년이미지 확대보기
▲춤본2,1986년
한국의 최초 한국 창작춤 동인단체 ‘창무회’는 파격적 실험과 도전정신으로 우리 춤의 외연과 영역을 확장시켜왔다. 1993년 첫 회 창무국제무용제에 이어 지금까지 테마를 정하고, 포스트 극장, 의정부, 고양 등 지역을 이동하며 열고 있다. 또한 전통 무용의 심도 깊은 이해를 통해 ‘창무’ 춤 언어를 만들어 내는 ‘창무회’의 작업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김매자. 그녀에게 붙여지는 다양한 호칭과 찬사들을 송구해하면서 달이 지거나, 꽃이 떨어져도 다시 떠오르고, 핀다는 이치를 아는 분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견주어지는 그녀의 넉넉한 마음에 붙이고 싶은 헌사는 ‘건강하셔야 됩니다’이다. 움직이는 박물관, 그녀의 존재가 날이 갈수록 부각되는 것은 우리 춤판이 좀 더 숙성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 약력


창무예술원 이사장/ 월간 ‘몸’ 발행인/ 창무국제예술제 예술감독/ 북경 무용대학 명예교수/ 전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전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 한국무용연구회 초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