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 줄 열쇠
입신양명의 유교 전통과 ‘恨풀이’로서의 교육은 한국적 특수성
인적자원 밖에 없는 우리에겐 질높은 인재양성은 국가적 과제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지난 반세기 동안의 한국 교육의 성취는 눈부신 바가 있다. 세계 1, 2위권의 높은 IQ를 바탕으로 한국 학생들은 각종 학업능력 평가에서 세계 수위권을 석권하고 있으며, 미국, 유럽 등지의 유학생 수 역시도 다른 여러 나라들을 능가한다. 1950년대의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6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이루어 낸 데에는 한국의 교육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한국 교육의 외형적 성과의 한편에는 그 부작용들이 만만치 않다. 우선은 과열양상의 교육열에서 비롯된 경제적인 문제를 들 수 있다. 2001년 사교육 시장 규모는 10조원 정도였으나 금년에 발표한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총 사교육비가 19조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해외연수나 유학 등으로 인한 지출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 현실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정된 지위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사회적 기회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교육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신분상승에 있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충족할 수 있는 분야에만 인재와 돈이 몰리게 되고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학문들, 특히 기초학문들은 질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악영향이다. 자녀의 자발적 동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부모의 뜻에 의해 실시되는 교육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박탈하며, 줄 세우기 식의 교육과 입시제도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가중한다. 이러한 교육의 피해자는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자녀의 교육에 모든 것을 던지는 부모의 삶이 행복할 리 없다. 늘어나는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하거나 부업을 갖는 일은 예삿일이 되었고 부모가 채워주지 못하는 자녀들의 심리적 공황 상태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한국 교육현실의 특수성
각계에서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정책의 변화나 입시제도의 개선 등과 같은 방법으로는 현재 한국의 교육현실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난 과거의 예에서 드러났다. 현재의 교육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열 그 자체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닌 보편적 현상이다. 교육은 많은 나라에서 뒷세대에게 보다 나은 사회적 조건을 제공해 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입신양명이라는 유교적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한?중?일의 동아시아 3국은 물론, 인도, 말레이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들과 미국, 호주 등 구미 선진국들에서도 자녀교육의 열기는 뜨겁다.
그러나 문화적 맥락에서 살펴본 교육열 현상은 나라마다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도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살아 있으며, 특히 가족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父子)을 중심축으로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자중심축의 문화는 조상-부모-자녀로 이어지는 영속적인 관계로 이어지는데, 이는 교육의 문제가 어느 한 세대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선대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목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선대에서 고관을 배출하지 못했다면 후대의 자손들은 선대에 이루지 못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무감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서 입신양명케 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부모의 의무가 되며 과거의 가족적 전통이 많이 해체된 지금도 이러한 의식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가정들이 종종 발견된다.
恨풀이로서의 교육
교육열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원인은 부당감과 차별감(억울함)을 쉽게 경험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높은 수준의 평등을 원하는 한국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사람들의 평등주의는 ‘자식교육 잘 시켜 신분상승을 꾀해보자는 식’의 개인적 평등주의임을 강조한다. 즉, 남과 차별되기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의 심리는 결국 자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려는 왜곡된 교육열로 나타나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람들의 이러한 심리적 특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한국 사람들이 ‘한(恨)’을 잘 경험한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이 우리의 고유한 민족적 정서이면서 한국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어왔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교육현실은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에게 한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현재의 부정적 교육현실을 ‘한’으로 볼 수 있는 이유들을 꼽아보자면 우선 학생들의 입장에서 입시 및 성과위주의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제한한다. 또한 학생들은 부모와 교사의 요구에 의한 외재적 동기에 의해 학습하며 학습에 대한 자기통제, 자율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학업능력의 서열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역시 한으로 경험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다.
이러한 교육현실은 학부모에게 있어서도 한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학부모 역시, 한국의 교육 현실과 문화적으로 주어지는 부모로서의 의무감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의 부재를 경험하며, 다른 부모들이나 다른 가정의 교육 여건 혹은 다른 이들의 자녀의 성취와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또한 한국의 현실에서 부모인 자신이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는 인식은 어린 나이의 자녀들을 국외로 내보내는 원인이 되고, 이로 인한 가족의 붕괴 및 해체로 인해 다시 한을 경험하는 한의 악순환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들이 존재한다고 하여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교육은 개인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교육은 개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작은 국토와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세계에 우뚝 선 나라들은 훌륭한 인적 자원을 잘 길러내고 활용해 온 나라들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교육을 통한 질 높은 인적 자원의 확보는 한국의 국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한국 교육의 현실은 몇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하루 아침에 완전히 타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현실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의 교육열은 그러한 점에서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으며, 한국이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교육은 유일한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