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무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우리 춤 원형 찾기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김은이(金垠利·Kim Eun Ee)는 계사년 1953년 대전에서 출생했다. 대전여고, 이화여대 무용과와 동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연극을 연구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이미라로부터 무용을 학습했다. 고3때는 유학자로부터 신무용을 배웠다. 대학 졸업반이 되어 김매자로부터 한국무용과 육완순에게서 현대무용을 사사받았다.
대학졸업 후 1975년부터 국립국악원 연주원 단원으로 4년간 봉직하면서 김천흥으로부터 궁중무용, 승무, 살풀이, 탈춤을, 이매방으로 부터 승무, 살풀이를, 고 김숙자로부터 도살풀이, 경기무속춤을, 고 송 암으로부터 불교의식무용을, 고 한영숙으로 부터 승무, 살풀이, 태평무를, 강선영으로부터 태평무를 사사하는 등 우리 춤의 원형 찾기에 매진하는 대장정을 거친다.
수레국화의 위엄으로 행복감을 잉태해온 그녀도 자연령 회갑의 고지를 넘었다. 그녀는 그동안 너무 난해한 논리를 임무처럼 입어왔다. 바다로 간 여인은 다시 바다에서 온 여인으로 방향을 선회하기가 힘들 것이다. 바닷바람에 속살을 드러낸 여인은 소금기 베인 춤사위의 감격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절집의 풍광과 예배당의 낭만을 둘 다 사랑하는 이치와 같다.
춤사위와 조화를 이루는 조선궁중정재복식과 의물, 여령정재 복식 등에 관심이 많던 만 스물일곱, 그녀는 부산으로의 항해를 결정한다. 부산여전 전임강사 2년, 1981년 동아대 체육과 전임강사 2년을 거쳐, 1983년부터 지금까지 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무용학과 교수로 부산 춤과 공연예술계의 거대한 연결고리이자 중추적 핵심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김은이, 고답적 모임에서 나비로 환태한 그녀의 춤 에세이는 진실의 ‘채’로 아무리 걸러도 종려나무의 낭만으로만 남는다. 너른 들의 넉넉함에 풍겨 나오는 여유, 바다의 광시곡(狂詩曲)의 격정, 전통의 엄숙한 전범(典範)을 소화해내며 ‘짓’의 실재를 입증해보이며 숭고함으로 살아온 그녀는 늦여름, 저녁 무렵 서정과 가을 신비의 미적(美的) 거리를 산책하고 있다. 부산에 입성하기 전, 김은이는 일본 NHK 초청 아시아 예능제 참가(1975), 홍콩·대만 아시아 예술제 참가(1976), 홍콩 아시아 예술제 참가(1977) 등으로 가볍게 해외에서 자신을 알렸다. 본격적 부산물은 미국 랜신 커뮤니티 칼리지 초청 전통무용공연(1981)이다. 부산에서의 그녀의 작업 중 두드러진 것은 1987년 창간한 1~4호(1991년)에 이르는 「짓」연구지 발간일 것이다.
1980년대, 김은이는 김은이 춤판 〈무산향외 5작품〉(1982), 제38회 무형문화재 정기공연(1983), 김은이의 춤 〈삼마제외 3작품>(1985·1986)을 공연하다가, 1986년 9월5일 한국 춤모임 「짓」을 창단하고 창단공연으로 <얼굴벗기>(1987)를 부산시민회관 대강당에서 발표하였다. 이후 부산무대예술제 무용시극 <달동별곡>(1987), 제1회 지역간연합무용제전 <景, 어떠하니잇고?> <왜?> <풀잎영정>(1987), ‘짓’ 춤판 <김은이 춤판>(1988), ‘짓’ 창작춤판 〈자유〉<땅뺏기>(1988), ‘짓’ 창작춤판(1989), ’89부산여름무용축제 <왜?>(1989), 공간무용의 밤 <짓, 짓, 짓!>(1989)을 국립극장 소극장과 대극장, 부산시민회관 소강당과 대강당,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 가마골 소극장, 공간사랑 등에서 공연하였다.
1980년대 그녀의 창작무는 춤의 사회성, 현재성을 견지, 이윤택의 표현대로 ‘역동적 삶의 솟구침이란 춤 미학을 확보’, ‘당시의 ‘짓’ 춤은 연속되는 속도감과 에너지의 분출, 그리고 삶의 해방감을 향해 질주하는 상승에의 의지로 표현’될 수 있다. 창단 공연작 <얼굴벗기>는 피나바우쉬적 탄쯔테아터 양식을 차용, 전통과 현대성의 ‘비빔’을 조율했다. 완월동 사창가이야기를 담은 <달동별곡>(1987)은 전통무용의 극성에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90년대, 그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버클리 대학 초청 전통무용공연(1994)에 참가하였고, ’90 창작춤판 <일회용 시대> <짓, 짓, 짓>(1990), 안무와 즉흥시리즈 90 <유다의 선택> (1990), 제12회 서울무용제 <랑겔한스섬-가문날의 꿈>(1990), 전통춤 5인전 〈태평무〉(1991) ’91 창작춤판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유다의 선택>(1991), 「짓」5주년 창작춤 <빛의 나이테> <껍질 속의 껍질> <생의 전주곡>(1991), 제4회 지역 간 연합 무용제전 <가을흔적>(1991), 젊은 춤꾼 9인전 <흑 더하기 백>(1991), 제2회 전통춤 5인전 〈도살풀이춤〉(1992), 제5회 지역 간 연합무용제전 주최 및 참가 <신화시대>(1992), 제1회 전국무용제 <바람의 넋> 우수상·연기상·미술상 수상(1992), 제1회 부산해변무용제 <진주검무> (1992), 제1회 부산무용제 <바람의 넋> 대상수상(1992), 전통춤 5인전 〈태평무〉(1992), 한국춤 페스티발 <바람의 넋>(1992), 제8회 한국무용제전 <바람의 넋>(1992), 눌원무용페스티발 <사람과 사람>(1992), 젊은 춤꾼들의 창작전 <승화되기까지는>(1992), ’93공연예술창작활성화 지원공연 <신무녀도>(1993) ’93창작춤판 <달을 먹은 눈> <꿈에 젖은 거리>(1993), 제3회 대구무용제 <독백>(1993), 「짓」7주년 창작춤 <서로감추기> <욕욕욕> <독백>(1993)등으로 전반기를 마무리 하였다.
90년대 하반기 그녀는 김은이 제자 전통춤 발표회 (1995), 김은이 「짓」무용단 지역순회공연(1995), 서울국제무용제 <일식>(1996), 부산 국제해변무용제 〈두개의 회오리바람과 길〉(1996), ’96부산여름무용축제〈두개의 회오리바람과 길>(1996), 제2회 동아시안게임 개회식 식전행사 <열리는 부산>(1997), 제3회 부산바다축제 <태평무>(1998), ’98 세계무용축제 전통춤 6인전 〈태평무〉(1998), 국제아트페스티발 <태평무>(1998), ’98창작춤판 <시간의 미완> <1998 아버지의 낡은 외투> <소리? 소리! 소리……>(1998), 제7회 부산무용제 <유빙>(1998), ’98「짓」창작춤 <네가없는 빈자리> <신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98), ’98 김은이 창작춤판과 제20회 서울국제무용제 <일식, 지금은 부재중>(1998), 제8회 부산무용제 <분절>(1999), ’99「짓」창작춤판 <파장> <회생> <잃어버린 공간>(1999), 99 내일을 여는 춤 <태평무변주>(1999)를 기 언급된 극장 말고도 포스트극장, 문예회관 대극장,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호암아트홀도레미문화센터, 내장산야외무대, 눌원소극장, 대구문화예술회관, 에저또 소극장 등에서 공연하였다.
1992년 그녀는 신동아(통권 393호) 선정 ‘2000년대로 달리는 한국무용계 7인’이 되었고, 제1회 부산무용제 대상 수상(1992), 제1회 전국무용제 우수상 (내무부장관상), 연기상, 미술상(1992)을 수상하는 광영을 누렸다. 김은이는 이어 1994년 10월 9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에 선정되었고, 제2회 동아시안게임 개회식 안무를 맡게 되었다.
1990년대의 이 집단은 세기말 상황에 대한 탐구심으로 ‘사람의 아들’과 같은 종교적 구원의 의미를 찾게 되고 제의무(祭儀舞)가 등장한다. <랑겔한스 섬 가문날의 꿈>, <일식> 등은 전통춤 구성의 규범에 비교적 순응해 있고, 춤의 제의성, 사회성, 상징성, 극무용 구성의 다양성, 미장센 형성의 규모와 과감한 모험으로 새로운 춤 경지를 개척한 작품들이다. <지금 부재중>(1998)은 김은이의 당대의 고통과 극기를 보여준 작품이다. 시대를 대처하는 그녀의 방식은 전통과 변주사이의 시메트리감을 현대적 몸짓과 도회적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 그녀의 안무·출연·예술감독 작품들은 집중화되고, ‘짓’의 활동은 더욱 왕성해 졌으며, 그녀의 춤에 대한 초청이 더욱 많아졌으며, 작품의 심도는 깊어졌다. 2002년 제14회 부산아시아드경기대회 개회식 안무, 제13회 부산무용제 대상 수상, <벼랑 끝에서>(2004), 제13회 전국무용제 대상, <벼랑 끝에서> (대통령상), 안무상(2004), 무대기술상 수상, APEC 정상회의 특별기획공연작 선정(2005)으로 그녀에 대한 진가는 입증되었다.
떠오르는 춤 안무가전 <회생>(2000)으로 새즈믄을 맞은 그녀는 「짓」 창작춤 <짧은 이야기-버려진이들> <울지않는닭>(2000), 스페인세계민속무용축제(2000)참가, 김은이 창작춤판 <이반의 시대> <태평무 변주>(2000), 2001「짓」창작춤판 <밑 빠진 독> <마술>, 「짓」무용단 15주년 기념 창작춤판 <광대> <꿈꾸는 인형> <물푸레나무>(2001), 2001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태평무변주>(2001), 제15회 청소년무용제 〈태평무〉(2001), 2001 부산 여름무용축제 <태평무변주>(2001), 2002년 통일예술한마당 <태평무>,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개회식 <아름다운만남>(2002), 2003 「짓」창작춤판 <숨비소리> <독백> <꽃, 강에지다>, 2004 「짓」창작춤 <잃어버린 구유>(2003), 중국 천진대학 초청 전통무용 공연 (2003),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초청 미국, 멕시코 순회공연(2003), 김은이무용단 미국, 멕시코 순회공연(2003), 제18회 한국무용제전 <벼랑 끝에서>(2003), 중국천진대학 전통무용공연(2003), 해맞이 부산축제 <일출>(2003), 2004 부산조각프로젝트 개막공연(2004), 동아인의 밤 전통무용공연(2004) 등으로 성공적인 상반기 성과를 거두었다.
2000년대 하반기 그녀의 작업은 찾아가는 문화예술활동 「봄날, 전통춤의 향기속으로」(2005)에서 시작된다. 전국무용제 수상작 지역순회공연 <바람의 넋> < 벼랑끝에서...>(2005), 아리랑축제 쓰시마 공연(2005), APEC 특별기획공연 〈부산아리랑〉(2005), 동아대학교 체육대학 발전기금공연(2005), 「짓」창작춤판 <외딴방> <껍데기는 가라> <햄릿>(2006), 수험생을 위한 전통춤 들여다보기 〈북과 어울림 외 6작품〉(2006), 부산시립미술관-토요라이브공연(2007), 우리가락 우리 마당 야외 공연Ⅰ(2007), 가을을 여는 예술한마당(2007), 우리가락 우리 마당 야외 공연 Ⅱ(2007), 제25회 부산무용콩쿠르 축하공연 <북과 어울림>(2007), 우리가락 우리 마당 야외 공연Ⅲ(2007), 김은이 도담한 전통춤판 (2007), 「짓」창작춤판 <비 맞은 마음의 꾸물거림> <검은 입...다시 하얀 입> <얼어붙어 분열하는 덩어리>(2007), 「짓」창작춤 <6月의 Requiem> <밥보> <독>(2008), 새물결 동인 춤 모음전 <밥보>(2008), 재일본 민단 초청공연(2008), 우리가락 우리마당 야외공연Ⅰ(2008), 부산여름무용축제 국제무용인의 밤 <태평무>(2008), 우리가락 우리마당 야외공연Ⅱ(2008), 을숙도문화회관개관 6주년 기념 초청공연(2008), 「짓」창작춤 <여섯째날> <땅을 깨운다>(2009), 국립부산국악원 제4회 화요공감무대 ‘부산춤지키미 짓무용단’(2009) 공연, 부산영어방송 개국 기념공연(2009), 토요상설 전통민속놀이마당(2009), 토요상설 전통민속놀이마당(2009), 부산문화재단 찾아가는 문화활동지원사업 <추억의 현장, 우리춤으로 부활하다>(2009),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폐막공연 <태평무변주>(2009), 국제민속제전(이태리, 마그리겐또)(2009), 제20회 대학무용제 <그루터기로부터>(2009), 국립국악원 화요상설공연 <김은이의 춤의 본향으로>(2009), 도담한 김은이 전통춤(2009)으로 마무리 된다.
새 세기를 맞아 김은이는 화두, 전통무 특히 ‘태평무’를 두고 해체와 재구성의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아빠는 출장중’과 맥을 같이하는 <지금 부재중>, 동성애 문제를 다룬 <이반의 시대>, <태평무 변주>는 이를 대변하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은 전통무를 전공한 춤꾼들의 보편적 고민이 되었고, 이제는 원형고수와 변주의 묘미를 서로 즐기고 있다.
2010년대, 그녀는 <여.려.려>(與.麗.旅) 안무, 장단 곶 디딤 마루 ‘배꽃춤판’-첫 번째 이야기(2010), 두 번째 이야기(2011), 세 번째 이야기(2012)에 출연했고, 네 번째 이야기(2013)와 「짓」창작춤 <페르소나(마음의가면)> <이팝나무> <뉴런 바이올린>(2011), 부산예술회관 개관기념 2011 송년특별공연「짓」무용단 전통춤 <화전태>(花前態)(2011)에서는 예술감독을 맡았다.
한국 창작무용 집단 「짓」이 창단된 지 27년이 된다. <얼굴벗기>(1987)에서 시작되어 <화전태>(2011)에 이르는 작품들은 수행의 탄생작들이다. 김은이 춤에 대한 애정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평론가 김태원, 채희완, 고 김영태를 비롯한 다수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30대 이전에 저항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50이 넘어도 혁명파이면 바보라는 말이 있다. 김은이, 그녀에게는 아직도 혁명의 피가 넘실되는 것 같다.
김태원의 표현대로 ‘김은이의 90년대 창작춤작업은 오늘의 창작춤 작업에서 많이 부족한 오늘의 삶에 대한 다방면의 지적(知的) 호기심과 함께 비판의식을 갖고서, 80년대를 지배하였던 제의적 춤형식의 굴레를 크게 벗어나, 여성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한국창작춤을 더 극적이고 일견 스펙터클하게, 또 선명한 모습으로 변형시켜간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녀의 대표하는 작품들은 김동리 원작의 <신무녀도>, <바람의 넋>, <일식>, <지금 부재중>, <이반의 시대> 등일 것이다.
김은이, 바람의 여인, 치열하게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시대의 아픔에 대해 울분을 춤으로 토로하고, 우주적 테마에 대해 민감하였다. 아직 그녀에게 혁명의 피가 수혈되는 중이다. 거친 춤판에서 호흡을 조율하며 ‘바람의 넋’을 기리고 있다. 바오밥 나무의 지혜, 무뎌진 독수리의 발톱의 재생에 대해 아는 여인이다. 시대의 획을 그은 그녀, 정묘하고 아름다운 다음 작품이 수사가(修辭家)들의 의미 형식과 미적 대상이 되길 기대한다.
■ 김은이 동아대 무용과 교수 약력
한국 춤모임 「짓」 예술감독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