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교사들은 학생 스스로의 가치 인정해주고 공감해야
적성과 천부의 자질 끌어내주며 "잘한다"하면 저절로 '신명'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국사람들은 문화적?관습적으로 가장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 때, ‘신명난다’, 혹은 ‘신바람난다’는 말을 쓴다. 신명(혹은 신바람)이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경험 및 그 정서를 의미한다. 신명난다, 신바람난다는 말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더 바랄나위 없이 기쁘고 충족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억눌린 감정의 배출 통로
신명을 경험한다고 해서 현실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명을 통해 한국인들은 현실을 살아갈 새로운 힘을 얻었으며, 신명은 때로 부정적 현실을 타개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즉, 신명은 한(恨)으로 대변되는 부정적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한국인들의 삶의 전략이었다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신명 경험은 다음과 같은 상태적인 특징을 갖는다. 첫째, 신명은 강렬한 정서적 경험이다. 둘째, 그러한 정서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이된다. 셋째, 신명상황에서는 일종의 약속된 무질서 상태가 나타나는데, 이러한 무질서, 혼돈 상태는 평소 억눌린 감정 등이 배출되는 통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의 교육현실이 여러 가지 부정적 요소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 교육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한이라는 부정적인 현실을 이겨내고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것이 신명이라면, 현재의 ‘한스러운’ 교육현실에서 교육의 역할과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해답 역시 신명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식 갖게
그렇다면 한스러운 교육 현실에서 신명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로 한의 원인을 해소함으로써 신명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입시위주, 학업능력의 서열화 등 부정적인 교육 현실의 원인이 되는 이유들을 찾아 그것을 완전히 개혁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개혁은 예전부터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제안되어 왔고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개혁의 경우는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 어려울뿐더러, 획기적인 교육 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새 제도가 정착하기까지의 혼란은 불가피하며, 새 제도로 인한 상대적인 불평등감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는 보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한국 문화의 특징인 ‘우리의식의 확인’에 의해 가능하다. 우리의식의 확인에 의한 신명이란 전통적으로 명절이나 마을잔치 등에서 볼 수 있는 신명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라는 공동체가 자신들의 정체감을 확인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공감대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누적된 부정적인 정서 등을 배출하는 과정에서 한의 정서가 간접적으로 해소된다.
우선, 학생들끼리의 우리의식은 축제나 수학여행,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 축제나 수학여행 등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학생들은 서로 같은 감정과 목적을 지닌 ‘우리’라는 감정과 의식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하나다’라는 강한 유대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성적과 경쟁으로 서로 분리된 채로 외롭게 지내온 경험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학습 과정에서도 학생들의 우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쉽지 않다. 한국의 입시제도 및 교육 현실이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우리의식을 고취하여 학업에서의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서의 우리의식에 기인하는 신명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축제나 수학여행, 동아리활동 등 학업 외적인 측면에서, 입시와 경쟁으로 누적된 평소의 부정적 정서를 배출하는 통로로 이용될 수는 있으나 학업장면에서의 신명으로 연결짓는 것은 어렵다.
한편, 학생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우리의식이 교육 외적인 부분에서 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이라면, 교육 장면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과의 공감이 될 것이다. 우선적으로 학부모와 교사들은 학생 스스로의 가치에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더구나 아직 성인이 아닌 학생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부모나 교사로부터의 인정을 받는 상황에서 신명이 난다. 그렇게 되면 자신과 부모 그리고 교사가 모두 ‘우리’라는 의식으로 묶인 공동체라는 의식이 생기고 자신이 잘 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헌신과 사랑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둘째, 자기가치의 표현에 의해 신명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가진다. 특히 한국 사람들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자신의 영향력에 민감한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한 행동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타인들 앞에서 표현하는 행위에서도 신명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를 ‘적성(適性)’이라고 불러도 좋고 또는 ‘천부(天賦)적 재능’이라고 불러도 좋다. 교육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education’이다. 이 말의 원래 뜻은 ’bring out‘, 즉 ‘속에 있는 것을 꺼낸다’라는 뜻이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부모나 교사가 정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보다는 학생의 내면에 있는, 아직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적성을 끄집어내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나 교사로부터 ‘잘 한다’는 인정을 받으면 당연히 신명이 나고, 칭찬을 더 받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신명, 즉 학생의 개인적 신명을 교육현실에서 일으킬 수 있으려면, 학생들이 표출할 수 있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학부모와 교사들이 학생들의 학업에 깊숙이 개입하여 학습계획뿐만 아니라 인생계획까지 그들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케 하는 것이며 학업과 삶에서 신명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학생들의 사고력과 판단력이 성인들의 기준에서 볼 때 미흡한 것은 사실이나 학부모와 교사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한정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이 선택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거기에 공감해 준다면 학생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서 충분히 신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신명은 그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