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들판'에서 온몸으로 부대끼며 한국춤 원형 찾기 노력
정숙함과 단아함으로 한국 창작무용의 독보적 위상 구축
우직과 영민 '양날의 칼'로 독자적 춤 목소리 내는 안무가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오율자(吳律子·Oh Yulja)는 한국전쟁 중이던 임진년, 신록이 넘실되는 봄날, 서울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춤은 늘 신비적 아름다움으로 겹벚꽃의 화려한 만개를 보는 듯하다. 그녀는 야생화처럼 온몸으로 부대끼며 한국춤의 원형찾기와 우리 춤의 미학적 성취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녀의 춤들은 꽉 들어찬 밤톨 같은 견고한 구성과 매혹의 연기력을 선보여 왔다.
그녀는 50·60년대 무용가로서 국립무용단 남성 주역무용수로 활약한 은방초(미국 시카고 거주), 김옥진(전 한양대학교 무용과 교수), 한영숙(무용가·인간문화재 승무 살풀이), 이매방(무용가·인간문화재 승무27호, 살풀이 97호), 김병섭(설장고의 명인·인간문화재) 등에게서 한국 무용의 진수를 전수받았다.
한양대 무용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USC 대학원 석사학위 취득,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최승희 춤 등을 재현함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 강남 댄스페스티벌에서의 백남무용단의 활약, 다양한 무용제에서의 심사, 역동적이고 화려한 춤 수사력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왔다. 카리스마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에메랄드의 속성을 띄고 있다.
그녀의 춤은 늘 오월의 혁명과 녹색 서정의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한없이 부드럽다가 질풍노도의 힘으로 추진해내는 그녀의 작업들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압제와 압박에는 강한 저항으로 자신의 소신을 지켜내었고, 예술작품의 상품화와 고급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디지털 시대에도 그리운 향수로 자리 잡는다.
초지일관, 직선으로 일관해온 그녀의 안무작은 제자들로부터 부드러움과 여유가 돋보이는 춤으로 변태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도록 정성과 노력을 다한 결과, 감동과 품격의 예술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해볼 만한 일에 매진하는 그녀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저돌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연연하지 않는 그녀, 대한민국무용제 음악상(1990,『갑자년 별곡』), 제2회 서울국제무용제 연기상(1999,『바람의 강』)에서 보듯 시상에도 초연하다.
오율자는 『북소리 Ⅱ』(1994, 이매방 안무) 외 외울 수 없을 만큼 많은 춤에 출연했고, 『하나가 소리가 되어』(1985), 『갑자년별곡』(1990), 『밤의 환시』(1987),『시계 0, 그러나 맑음』(1989),『내 영혼을 쏟아』(1989),『색깔 맞추기』『갑자년 별곡』(1990),『숲 속의 꿈』(1992),『수채화,』『저 사람들』(1995), 『바람의 강』(1998),『수선화』(1998),『청산-그 시적 영혼』(1999), 『수평선』(2001) 같은 작품을 안무하였다.
그녀의 의미 있는 주요작품 몇 편을 살펴본다.
『세모시 옥색치마』(1996,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여성은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갈등하고 성숙한다. 동시에 아름답고 신선한 존재로서의 향기를 발산하는 힘을 얻는다. 전통춤사위를 바탕으로 여자의 통과 의례적 일생을 압축시켜 신화 잉태적 영성의 영원한 숙명과 심성을 세모시 옥색치마가 상징하는 덕목과 의미를 춤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바람의 강』(1998, 문예회관 대극장): 인간은 자연과 평화 속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다. 그들은 사상과 권력 추구를 인간애 이상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이념 때문에 고향을 버렸고, 인간애를 잃었고, 세월을 잃었다. 그것 이상을 찾으려는 것이 작품 의도다.
『청산, 그 시적영혼』(1999, 문예회관 대극장)은 사람들은 도심을 떠나 먼 곳으로 가려한다. ‘그들은 왜 숲으로 갔는가?’를 화두에 두고 문명을 비판한 작품이다. 『바람소리에 가슴속 꽃은 꺾이고』(1999, 포스트극장)는 여자 사형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형제도를 고찰한다.
『용담에 이는 바람』(2005, 문예회관 대극장)은 동양 철학사상을 표현한 작품, 현대인들에게 조화, 균등, 화해의 삶을 제시함으로써 혼돈에서 질서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자 하는 인류의 꿈을 동학사상을 통해 만든 작품이며, 『숨은별은 더 눈부시다』(2012, 아르코대극장)는 한국의 문화유산, 제주도의 용암동굴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모티브로 설정한 작품이다. 동굴 안에 비쳐진 그림자는 감각의 환영(Illusion)이며 꿈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 그림자는 그들 존재의 전부이며 그림자를 넘어 실재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동굴 안쪽 벽에 비쳐진 그림자를 실재의 존재자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지금까지 믿었던 진리들이 무너지는 순간 한곳만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그릇된 생각이며 진리를 바라볼 수 없게 하는 편견을 의미한다.
오율자 춤의 음악의 주안점은 퓨전음악보다는 정통 음악을 사용하는 편이며 기계음은 지양한다. 창작무용에는 한국적 음색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작품이 요구하는 또는 작품에서 표현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 소리 나는 모든 소리를 사용한다. 물론 음색의 조화를 간과하지 않는 범위는 필수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그녀가 직접 애플에서 편집한다. 자신의 상상에 일치시키기 위해 부분 작곡을 의뢰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편이다. 음악 애호가 오율자. 그녀는 수시로 좋은 음악 그립을 모아둔다.
안무가로서 오율자가 주안점을 두는 점은 안무를 쉽게 풀 수 있는 탄탄한 대본과 구성이 우선이다. 무용수들의 ‘동작기술은 기본이다’를 전제로 하고 동작기술만을 보여주는 식은 지양하고, 작품이 스토리 라인 꾸미기에 충실한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처음부터 연기자와 제작진들이 모두가 모든 과정을 공유하여 아이디어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경청하며, 단호하고 신중하게 의사 결정을 한다.
무대세트는 세련된 감각으로 추상적이며 미니멀한 것을 선호하는 그녀는 작품에 사용할 음악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아침과 저녁은 클래식 음악, 밤에는 재즈음악을 즐겨 듣는 그녀는 판소리도 즐겨듣는다. 차기 공연작부터 오율자는 대중음악을 사용하며 관객들의 춤에 대한 쉬운 접근을 유도하고, 어려운 순수예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 대중음악의 적절한 이용도 고려한다.
오율자의 백남무용단은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박사의 호를 사용하여 붙여졌다. 20여명의 단원들은 매년 전반기 전통무용 레퍼토리 공연으로 한국춤의 모든 레퍼토리를 연구·연마한다. 후반기에는 현재 활동 중인 졸업생의 창작품을 안무하도록 하여 단원들의 작품제작 경험과 안무능력을 발휘하게끔 한다. 매년 유네스코 주최의 유럽과 남미, 아시아 지역의 국제무용제에 참여, 우리 춤을 세계로 알리는데 문화 외교사절로서 역할과 공헌을 하고 있다.
그녀의 업적 중 하나는 각고의 노력으로 천재무용가 최승희의 춤을 복원한 점이다. 최승희 관련 신문기사 등 소수 기록을 참고로 시대적 상황과 춤의 역사를 유추해 재현하므로 오늘날 창작춤의 뿌리와 역사적 의미를 찾아 최승희 춤을 복원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최승희의 춤을 관람한 적이 없는 오율자는 일본 현대무용가인 이시이 바꾸의 춤 동작 몇 개를 토대로 안무한 작품은 경탄을 자아낼 만큼 섬뜩한 예술적 충격을 준다.
『빛을 구하는 사람』(2007)은 작품의 표현기법이나 구성에 대해 알 수 없으나 이시이 바꾸의 영상 한 컷을 참고로 표현하였으며, 『백조의 여신』은 최승희 춤 사진을 이미지화하여 그리스 여신을 주제로 하여 창작춤으로 표현하였다.
또 『애수 의 여인』은 당시의 엘리트 문화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한 카페를 주제로 표현하였으며, 『보살 춤』은 책에 흔히 나와 있는 사진을 토대로 의상을 재현하였다. 그녀의 최승희 춤 복원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오율자의 우리춤 레퍼토리 공연은 ‘춤, 영혼의 카타르시스’, ‘춤, 정신적 자유’, ‘춤, 영원한 존재’, ‘춤, 마음의 치유’, ‘춤, 감성을 나누는 하루’에 걸쳐 있다. 캘리포니아 얼바인대학에서 품고 있었던 우리 춤의 국제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23일부터 24일까지 아르코 대극장에서 『아씨』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작품은 한 여자의 이야기,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한국적 정서를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표현하여 순정한 삶의 절대 높이와 현실 사이의 번민과 갈등을 다루는 자기탐색 춤으로서 아름다운 한국 춤의 서정적 몸짓으로 표현해 낼것이다.
오율자. 그녀에게서 청보리 밭의 서정이거나 밤나무 밭의 밀담이 벌어질 것 같다. 커다란 바다는 그녀를 쓸어가 버릴 것 같아도, 그녀는 꿋꿋하게 잠보장경의 ‘지혜로운 이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아직도 소녀기가 소금처럼 배어있는 그녀, 빛이 있을 지어다. 그 빛은 후학들을 통해 더욱 빛날 것이다. 봄이 올 때마다 그녀의 작품들은 더욱 그리운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장석용(문화비평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 회장)
■ 오율자 한양대 생활무용예술학과 교수 약력
♣한국체육철학회(스포츠, 무용 철학회) 회장
♣국제 청소년 영화제 조직위원
♣백남무용단 대표, 예술감독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이수자
♣인체미학회 부회장
♣한국 무용연구회 상임이사
♣부산 국제무용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