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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과 '國泰民安' 염원하는 태평무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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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과 '國泰民安' 염원하는 태평무 계승

[춤밭을 일군사람들(41)]박재희 청주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교수

자연을 닮고 비워내는 춤철학으로 충북 춤 부흥

명인 한영숙류 ‘태평무’ 계승 위해 헌신하는 춤꾼
명무 ‘태평무’로 나라와 왕실의 기품과 존엄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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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무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박재희(朴再姬)는 1950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춘천에서 성장했다. 홍천 출신의 우리나라 최초의 춤 한류스타 최승희처럼 강원도의 순박함과 부지런한 천성은 그녀의 춤 자양분이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영상 속 춤 이미지, 운명처럼 불어 온 춤과의 연(緣)은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춤에 매료된 그녀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춤 구성을 즐겼던 그녀는 안무가 기질이 있었나보다.
서울로 유학을 온 그녀는 수도여고, 이화여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우리 무용계에서 ‘홀 춤’ 최초의 인간문화재인 고 한영숙 선생으로부터 73년에 태평무를 전수받았고, 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전수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승무·살풀이춤 등을 전수받았다. 그녀는 76년 전수발표회에서 문화재관리국장상을 수상했으며, 1980년 승무의 이수자가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정열과 열정으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삶의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믿음과 자유에 바탕한 그녀의 용기는 영생의 불사조를 떠올리게 한다. 춘천여중 시절, 혼자 무용연구소에 찾아가 춤을 배우게 되었고, 그 배운 춤은 춘천여중 무용반 동기들을 가르치는 도구가 되었다. 그녀의 이른 리더십은 그녀를 전교회장이 되게 만들었다. 당시 무용으로 평판이 있던 수도여고로 입학, 무용반 활동, 이화여대 무용과로의 진학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다. 한국무용 담당교수 유인희의 캐나다 이민, 그녀는 또 다시 홀로서기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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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바람의신화
담당교수의 부재 속에 졸업반인 71년 6월 이대 강사 한영숙과 강선영의 명동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의 한국적 춤사위와 독특한 장단으로 구성된 ‘태평무’ 공연은 그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마음속에 태양을 닮은 진적(眞赤)의 루비를 품고 한영숙의 춤을 배우겠다고 결심한다. 태평무는 생명의 영원성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춤이다. 그녀의 춤이 현란하게 빛나는 것은 바르고 곧은 심성에서 쏟아내는 빛 때문이다.

학을 닮은 여인 박재희는 ‘자연을 닮아가며 자기를 비우고 무아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을 춤 철학으로 삼는다. 내면으로 우러나오는 고고함과 우아함으로 춤을 추는 그녀가 존경하는 스승은 순백의 깨끗함과 ‘비움의 미학’의 상징 한영숙, 이화여대 재학 시 학과장과 학회장으로 만났던 육완순이다. 육완순은 창의성과 효율적 시간 관리를 박재희에게 습득하게 했다.

학생자격으로 금지되었던 외부활동, 출강강사로부터의 사사금지, 그녀는 졸업하던 1972년,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뮌헨 올림픽 파견 한국민속예술단’의 일원으로 선발되었고, 민속예술제 공연 등 4개월 동안 24개국 순회공연을 나섰다. 한영숙, 강선영, 송 범, 전 황 선생 등이 지도위원으로 동행했다. 많은 주변 무용수들이 승무에 관심을 두었을 때 그녀는 태평무에 애정을 갖고 있었고, 한영숙은 흔쾌히 전수기간 5년의 수련생, 두 명의 제자 중 하나로 그녀를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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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지무
스승 한영숙의 격려 하에 박재희는 태평무의 심오한 철학, 짙은 춤 향과 밝은 세상에 대한 기원과 백성들의 맑은 심성을 구현해내는 수련에 몰두할 수 있었다. 1975년 말, 한영숙은 박귀희, 김소희 등과 설립하고 재직했던 국악예교 교사로 박재희를 추천, 그녀는 교사가 되어 3년간 봉직한다. 이 당시 한영숙의 제1기 전수장학생 이애주, 정재만, 두 사람이 승무이수자가 되었다.

박재희는 제2기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되어 1975년부터 한영숙으로 부터 승무를 본격적으로 전수받으면서 태평무, 살풀이춤 등 한영숙류의 춤을 모두 배우게 되었다. 한국무용의 독특한 특성인 전통춤의 맛, 전통춤 호흡법, 단아하고 깨끗한 선, 여백을 느끼게 하는 절제미, 심오한 내면미를 표현하는 품격 있는 전통춤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터득한다.

제1회 박재희 무용발표회는 1981년, 이화여대 강사 신분으로 이화여대 4학년생 주축으로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지금은 M극장)에서였다. 이듬해인 82년 청주대 예술대학 무용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제2회 박재희 무용발표회는 충북문화예술회관에서 이루어진다. 무용기반이나 관람객 수준이 열악했던 환경을 딛고, 85년 박재희 새암무용단을 창단함으로써 청주 중심의 그녀의 안무작들은 비약적 발전을 시작했다. 주변의 권유로 유명무실한 무용협회를 재건하고 지역 무용협회장을 맡으면서 공연활성화와 충북지역 무용문화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녀가 무대에 설 때에는 언제나 한영숙류 춤 중심의 전통춤만을 추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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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그녀의 제안으로 청주시립무용단이 만들어졌고, 그녀는 안무자로 추대되었다. 이후 2001년도부터 2009년 초까지 활동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짐대마루』, 『춤, 직지』는 지역과 문화우월성을 나타내는 창작춤이었다. 『춤, 직지』는 문화관광부의 우수 레퍼토리로 선정되는 성과를 낳았다. 시민들을 위한 전통 춤 관람 기회도 늘여 나갔다. 전통춤 연행자를 중심으로 2000년에 벽파춤연구회를 창설하여 매년 공연하면서 전통춤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90년대 초부터 한영숙류 춤의 계승과 그 정신을 기리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밤에 불을 밝히는 초롱이 되기를 자처한 그녀가 “너무 서두르지 말라. 그러나 게으르지 않게, 누가 뭐라 해도 꿋꿋하게 자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라”며 격려한 청주 출신 제자들인 박재희 새암무용단의 박시종(전 청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청주대 겸임교수), 노현식(구미시립무용단 안무자, 목원대 교수), 김진미(중원춤아카데미 안무자), 전건호(전 청주시립무용단 수석), 벽파춤연구회의 홍지영(파정무용아카데미 원장), 손혜영(구미시립무용단 훈련장) 등은 한국 춤 발전을 위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충북 춤 발전을 위한 충북무용협회 회장, 충청지역 무용교수 연합회 회장, 청주시립무용단 안무자 등을 역임하면서 충북무용제, 충청무용제전, 전국대학무용경연대회 등을 개최, 중부권 무용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청주시민의 날 행사 추진위원회 위원, 청주시립 예술단체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충청북도 업무평가 위원회 위원, 청주시 문화정책분야 자문위원, 충북예술문화 정책연구원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제85회 전국체전 안무 총감독, 문화의 달 집행위원회 운영위원, 문화재청 규제심사위원회 위원, 2010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 등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왔다.

▲가인여옥이미지 확대보기
▲가인여옥
박재희의 대표 안무작은 『종이무덤』,『호선무』,『장터배기』,『황토누리』,『짐대마루』,『춤 직지』,『답지무』,『그 바람의 신화』,『화선무』,『가인여옥』을 들 수 있다.

『종이무덤』은 실향민 부모에게서 종이무덤을 받아든 딸의 시선을 통하여 절박한 실향민의 한과 애환을 그린 작품으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호선무』(1994)는 둥근 양탄자 위에서 바람같이 빠른 모습으로 선회하는 동작을 주로 하여 추는 춤으로 고구려 무예 호선무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다. 『장터배기』(1996)는 ‘각설이’를 모티브로, 우리 민족 고유의 심성을 향토색이 짙은 해학과 풍자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후 박재희 새암무용단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다.

▲태평무이미지 확대보기
▲태평무
『황토누리』는 허수아비의 눈을 통하여 오염되어 가고 있는 농촌과 환경을 고발한 작품이다. ‘땅’에 대한 사유적 고찰과 녹색환경 복원을 기원하는 서정적 역동성이 충만한 작품이다.

『짐대마루』(2002)는 청주 복대동의 옛 지명에서 온 설화를 작품제목으로 삼았다. 박재희가 청주시립안무자로 부임하여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춤 직지』(2003)는 문화관광부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의 세계화를 위해 제정한 ‘제1회 직지의 날’을 기념하여 안무한 작품이다.

『답지무』(2004)는 진수의 ‘삼국지’에 나오는 마한편(篇), 5월 하종과 10월 농사 종료 시, 신께 제사하는 의식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의식에 걸맞게 버라이어티한 구성과 춤이 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바람의 신화』(2006)는 바람벽 사람들 속에서 바람이 선택한 사내와 각시가 바람벽 너머에 펼쳐져 있는 이상향을 꿈꾸고, 마침내 꿈결같이 펼쳐진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펄 벅의 ‘대지’와 마가렛 미첼의 타라를 연상시키는 ‘땅’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서정성 깊은 토속적 작품이다.

▲장터배기이미지 확대보기
▲장터배기
『화선무』(2006)는 부채춤을 근간으로 하여 개량 가야금의 선율에 맞추어 한 마리의 나비와 만개한 꽃을 미학적으로 표현하여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청주시립무용단의 고정 레퍼토리가 된 작품이다. 벽파 입춤 『가인여옥』(2012)은 즉흥 춤사위였다가 점차 독자적인 양식과 장르를 갖추게 되었다. 가인여옥은 벽파 박재희에 의해 부채를 활용한 부채입춤 형식으로 구성되었으며, 단아하고 절제미가 돋보이면서도 흥과 멋을 자아내는 여인의 심성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박재희는 제1회 전국무용제 우수상(『종이무덤』), 제19회 서울무용제 우수상/안무상(『황토누리』), 제15회 전국무용제 대통령상(『그 바람의 신화』), 국민포장 서훈(1973), 무형문화재전수교육 평가회 문화재관리국장상(1976), 서울특별시 교육감상(1976), 충청북도 문화상(1995), 올해의 예술인[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미주지회](1995), ‘몸’지 선정 ’97무용예술상(1997), 올해의 이화인[이화여대총동문회](2002),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2002), 대한무용학회 학술상(2003), 충청 무용대상[충청지역무용교수연합회](2004), 충북 무용대상(예술상)[충북무용협회](2004),동양일보 선정 ‘2006 올해의 인물’(2006), 청주시립무용단 해외순회공연 한국예술단 선정[국제교류재단](2006), 현대 충북예술상(2008), 청석 학술상(2008)을 수상한 저력의 안무가이자 교육자다.

▲춤직지이미지 확대보기
▲춤직지
박재희는 다양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포착한 상흔과 갈등을 우리식으로 해석해내며, 작품 재공연을 통해 레퍼토리 정착화에 노력해왔다. 그녀는 ‘조선시대의 여악 고(女樂 考)’, ‘고구려시대 무용 고(考)’-호선무 중심, ‘백제시대의 무용 고(考)’-중국에서 연행된 백제악 중심, ‘미마지의 기악의 재조명’, ‘일본에 전래된 백제악무의 연구’ 등 무용사 연구에 관심이 많다. 또한 개인무용단으로 북미, 유럽, 아시아 공연을 통해 품격 있는 우리 춤을 해외에 선보여 왔다.

한영숙류 ‘태평무’ 최초 전수자, 박재희는 한국 전통무 중의 하나인 ‘태평무’의 문화적 원형을 견지하고 있으며, 다양하게 연기해낼 수 있는 독보적 존재다. 디테일한 손동작, 전통적이면서도 창의적 춤사위, 표정연기의 탁월함, 춤 특성을 간파한 호흡 조절, 장단의 리듬감을 탈 줄 아는 연희적 행위, 춤의 균제감을 통한 ‘태평무’의 미학적 담론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춤 작가다. 왕실의 기품과 존엄을 대변하는 그녀의 ‘태평무’는 명무가 된지 오래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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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누리
■ 박재희 청주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교수 약력



▲박재희교수이미지 확대보기
▲박재희교수
한영숙춤보존회 회장

(사)벽파춤연구회 이사장

박재희 새암무용단 대표

한영숙류 ‘승무’ 이수자

한영숙류 ‘태평무’ 최초 전수자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역임

충북 무용협회 회장 역임

충청지역 무용교수연합회 회장 역임

연변대학교 객좌교수 역임

청주시립무용단 안무자 역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