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마린스키극장 공연 7차례 커튼콜 '신화'
21세 젊은 나이로 발레단 창단한 '월드 스타'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새 발레 인재 발굴
심청의 효성을 떠올리는 춤사랑 비장한 헌신
숱한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 된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부름의 대상이었다. 차가운 워싱턴의 하늘 아래, 오로지 한국 발레의 국격을 드높일 사명을 부여받고 있었던 것이다. 엄격한 내재율 속에서 자유 영혼의 구가는 처절한 희생과 자기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수많은 계절을 잊고, 숙성의 그날을 위해 잔가지들의 떨림을 뿌리쳐야 했다.
유월의 햇살아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한 그녀는 훈풍을 불러온다. 논리의 늪에 갇힌 흑백의 시대에 오렌지 빛 발레 열정은 세상의 아침을 평화롭게 만든다. 감히 근접할 수 없는 테두리를 만든 주변의 아둔함을 다독거리며, 푸른 발레의 아침을 연다. 시기의 사슬을 끊고, 화평의 문을 만들어 가는 그녀의 모습은 늘 연구, 조사, 탐구의 오브제가 된다.
절정의 감각으로 발레의 세밀한 디테일과 감정을 소화해내며 국내외를 아우르는 월드 발레리나 문훈숙은 30세 초반인 1996년 한해 동안 MBC 문화방송이 선정한 ‘이달의 예술가상’, 문화체육부가 추진한 ‘문학의 해’ 기념 ‘가장 문학적인 발레리나상’, 한국발레협회 ‘프리마 발레리나상’ 등 3관왕의 영예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문훈숙은 다수의 불후의 명작에서 상상할 수 없는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발레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며 춤 작가로서의 자질을 입증 받았다. 그녀가 작품에서 연기해낸 섬세하고 과감한, 다정다감한 감정들은 발레 연기의 기본 텍스트로 자리 잡게 되었고, 기존의 국내 발레도 국제적 감각과 공익적 안목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 발레계가 감각적 균형감을 갖게 해준 1988년 올림픽, 부단한 노력으로 우리 발레 발전에 노력한 15년 만인 1999년, 문훈숙은 문화관광부로 부터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유니버설발레단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민간예술단체 최초로 수상함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와 예술단체로 자리매김한다.
문훈숙. 30세 후반에 이미 월드 스타와 지도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국내외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녀의 봄날은 성숙에 접어들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사계(四季)는 물리적 계산에 불과했다. 그녀에겐 늘 봄만이 존재한다. 상상의 숲에서 그녀가 만나는 프로코피에프와 차이코프스키, 뉴욕과 모나코, 클래식과 모던 스타일은 늘 녹색 희망으로 만나고 성장한다.
그녀는 2000년에 콜 전 독일총리,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벨기에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로 모스크바 민족회의 명예 친선대사로 임명된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 콩쿠르, 마야 플리세츠카야 콩쿠르, 핀란드 헬싱키 국제발레 콩쿠르, 로마국제발레콩쿠르, 미국 잭슨 국제 발레 콩쿠르 심사위원에 위촉되어 세계 발레 인재 발굴에 크게 기여했다.
문훈숙은 1995년부터 수석무용수와 단장을 겸하다가 2002년부터 단장직 만으로 예술 CEO로서 변신한다. 발레단 수장으로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한국에서 ‘발레 대중화’가 얼마나 절실한지 실감한다. 그녀는 발레단 레퍼토리의 ‘예술성’ 격상과 ‘친절한 발레단’을 기치로 하여 일반 관객들에게 발레를 친근하게 알리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2008년부터 유니버설발레단이 한국 발레 최초로 실시한 ‘공연 전 발레 감상법 해설’, ‘공연 중 실시간 자막 제공’은 지금도 관객들에게 큰 환영을 받고 있다. ‘I am because We are’를 모토 삼아 사회공헌 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불우한 청소년 중 한 명을 선정, 18세까지 무상으로 발레 교육을 지원하는 ‘발레 엘 시스테마’도 운영한다.
한국 발레 발전을 위해 애써 온 그 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에는 ‘한국발레협회 대상’, 2010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하는 ‘화관문화훈장’, 2011년에는 경암문화재단이 수여하는 ‘경암학술상’, 2012년에는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공연예술협회(ISPA)로부터 ‘ISPA AWARD, 최고 경영자상’, 한국발레협회 ‘발레CEO상’ 을 수상했다.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유니버설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유니버설발레단뿐만 아니라 유니버설아트센터, 유니버설발레단 부설 아카데미, 워싱턴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를 총괄하고 있다. 발레 예찬으로 메시지를 대신하는 그녀에겐 강요란 없다. 차별화된 그녀의 세계에는 우주적 질서가 엄숙히 자리 잡고 있으며, 정상의 교만함이 없다.
그녀의 대표 출연작은 1990년 <지젤> 의 ‘지젤’, 2001년 <심청> 의 ‘심청’, 1999~2000년 <라 바야데르>의 ‘니키아’, 1992년 <백조의 호수> 의 1인2역 ‘오데트’와 ‘오딜’이다. 일상에서 얻는 마음의 평화, 전통의 소중함이 주는 고마움, 좌절에서 극기하고자 하는 열림 마음, 경계가 없는 춤 여행자로서의 경외적 삶에 존중을 표한다.
그녀는 ‘세상에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정직, 우애, 우정, 진실, 사랑, 힘, 충실이라는 단어들이 그녀의 노력에 대한 대가와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묘약으로 믿고 있다. 그녀의 가장 큰 힘은 견진(堅眞)의 순수한 믿음에서 나온다. 믿음이 내리는 지시는 늘 화평의 춤, 역경 속에서도 능히 해낼 수 있는 불굴(invictus)의 힘을 준다.
나라가 해내지 못하는 일에 국내 첫 민간 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무용수로서의 당당히 세계와 겨루는 일에 주저함이 없이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소리와 분노’를 교훈하고, 부동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고 의지, 감성, 이성을 드높이는 모습은 숭고하기조차 하다. 앞으로 그녀의 발레 연행(演行)이 더 많은 창작과 인재들의 경합을 보여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