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설화 등 문학성에 기반한 안무작 호평
디지털 들판서 아날로그 찬미 ‘舞禮의 춤꾼’
정은혜는 예(藝)를 대하는 예(禮)의 수범 지역에서의 춤에 대한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박힌 듯하다. 그녀는 교육자인 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전주, 부안의 너른 들과 트인 산의 시적 형상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상상을 극대화시킨 연꽃서정, 전나무 행렬, 등나무 풍경은 그녀를 몸으로 쓰는 시인이 되게 하였고, 오랜 흑백 사진 속의 아련한 그리움, 몸의 울림, ‘리듬을 타는 소녀’의 주인공이 되게 만들면서 경희대 무용과에 포획된다.
그녀는 1980년 『기다림』으로 데뷔하여 『우리가 있는 곳에』(83),『삶』(84), 『초극의 행로』(86), 『물의 꿈』(91), 『들풀』(96),『하늘소리 땅 짓』(97),『달꿈』(98),『춘앵전-그 역사적 풍경으로 바라보기』(99),『바람 속 내일』(99), 『조각구름』(00), 『유성의 혼불』(01), 『미얄 삼천리』(01), 『서동의 사랑법』(04),『미얄…』(05),『서동의 사랑법Ⅱ』(05),『언제나…, 그리고, 그러나』(05),『별주부전』(05), 『수궁전』(05), 『봄의 단상』(06), 『정은혜의 미얄』(07),『서울 굿, 점지』(08), 『진혼』(09), 『처용』(00),『다섯 그리고 하나1』(11),『한울각시』(12),『다섯 그리고 하나2』(13) 등의 대표안무작을 등재한다.
그녀의 초기작 『초극의 행로』에 대한 동아일보의 무용평론가 김경옥(1986.6.2)의 정은혜 1회 개인발표회 평에서 ‘고운 춤사위. 돋보인 신예(新銳)’이라는 제하에서 ‘춤매가 고운데다가 기교가 뛰어났으며 『초극의 행로』에선 우리 전통 춤사위가 다양하게 동원되어 아름답게 녹아들었다. 또한 신무용의 특징적 의상인 번쩍번쩍 빛나는 다른 공연 때의 모습과는 달리 의상의 색조감과 무대미술이 품격이 있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녀의 안무작은 대부분 신화, 설화, 문학성에 기반한 서정적 작품들이다. 대표 안무작 『미얄…』은 국립무용단에서 객원안무로 초청작이었고, 『처용』은 2011년 한해 동안 무용계 전체에서 뽑는 대한민국무용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녀의 춤은 ‘흥과 맵시가 뛰어나며 타고난 재질이 정갈하고 엄격하면서도 호방한 춤태를 지니면서, 끈끈한 내적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근사한 무형(舞形)과 구도는 명쾌하면서도 정갈하고, 또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때론 역동적이라는 점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그리고 춤의 전개가 매우 논리적이어서 설득력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중평이다.
86년 창단된 그녀의 무용단은 뜨거운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이론과 실제의 조화를 추구하며 지금까지 수작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올림픽지도강사, 88예술단(현 서울예술단) 지도위원을 거치는 수행을 마쳤다. 그녀에게서 희망과 순결의 무체색(舞體色)의 춤을 읽을 수 있다. 슬픔과 괴로움의 굴레를 우회하여, 부지런한 계절을 일군 그녀는 오로지 정진과 분발의 춤을 엮어가면서 지금의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왔다.
음악사용에 있어 그녀는 타악 보다는 감성과 영감을 살리는 ‘현의 노래’, 선율이 있는 음악을 좋아한다. 춤과의 완전한 호흡을 위해 무대 장치, 조명, 의상 등을 마지막까지 신경을 쓰는 편이다. 전통에서 찾은 그녀의 상상력은 민중의 문화였던 탈춤속의 기구한 운명의 삶, 미얄의 결코 감미롭지 않은 삶의 모습을 독특하고 생동감 있는 ‘춤사위로 극복’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희비극적 요소를 소지하고 있는 연희, 희망을 갈구하는 탈 매무새, 탈의 상징 속에 숨겨진 진실을 형상화하고 통합과 소통을 시도한다.
1995년부터 충남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과 현장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려왔다. 설화로부터 채집해낸 동양적 가치관을 순수와 파격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그녀는 96년 이후 ‘목련회’를 통해 지역 춤 활동을 가시화하였다. 2011년부터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 대전을 소재로 한 춤 10개를 완성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으로 채워나가는 안무일지는 언제나 진홍(眞紅)이다.
2001년 정은혜 안무로 초연된 『미얄삼천리』에서 시원(始原)한 『미얄…』은 2005년 국립무용단 초청안무를 거쳐 2010년에는 추상적 이미지를 첨가, 형상화한 몸짓언어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대표작 『미얄…』은 황해도 봉산에서 전래된 가면극 봉산탈춤 제1과장 사상좌 춤, 제2과장 팔목중춤, 제3과장 과장 사당춤, 제4과장 노장춤, 제5과장 사자춤, 제6과장 양반춤에 이은 제7과장 미얄할미영감춤에 나오는 미얄할멈의 이야기다.
2005년, 14장으로 구성된 『미얄…』에서 미얄의 숙명적인 삶(곰보딱지 얼굴, 아들의 죽음, 바람둥이영감)을 통해 모순되고 부조화된 삶이 극명하게 투영되었다. 미얄의 고단한 삶은 고립과 상실, 절망적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삶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며 나약한 현대인들에게 미얄의 삶을 통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역설한다. 과장, 역설, 유머, 해학, 비릿한 한국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적나라하게 들어나는 이 작품은 분명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효심을 바탕으로 한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물의 꿈』을 통해 생명수로서의 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민초들의 삶을 다룬 『들풀』,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하늘소리 땅 짓』, 처용설화 핏빛 서정 판타지 『달꿈』(98), 고전에 대한 사색인 『춘앵전-그 역사적 풍경으로 바라보기』, 현실과 미래에 대한 미학적 고찰의 『바람 속 내일』과 『조각구름』, 유성온천 설화를 그린 『유성의 혼불』,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이르는 『언제나…그리고 그러나』에 이르는 춤의 궤적은 ‘올곧은 심성으로, 진솔하게 쌓아올린 춤교육자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또 다른 대표작 『처용』은 신라 향가 ‘처용가’의 양주동 해석편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정은혜의 『처용』은 첫째, 한국 춤의 정체성을 찾는 창작, 2010년 11월 14일(일)(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둘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기념, 2011년 3월 16일(수)~17(목)(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 셋째, 대한민국무용대상(대통령상)수상기념, 세계국립극장페스티발 초청작, 2012년 10월 6일(국립극장 해오름) 으로 공식 공연되었다. 그녀는 21세기 초반에 7세기의 화두를 재해석 해내며 개인의 견해를 명제로 띄운다. 탐심, 관용, 용서, 덕목에 걸쳐있는 ‘언락’, ‘수제천’, ‘천부경’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초월적 처용을 처연히 그린다.
다른 몇 작품들을 살펴보자. 『언제나…그리고, 그러나』는 바람 타는 나뭇가지나 물결 타는 자갈과 같은 춤꾼의 삶을 그린다. 2013년 대전시립무용단 신년맞이 명무초청 ‘전통춤의 향연’에서의 30년 만에 완성된 『새가락별무』로 그 예술성과 뿌리부터 남다르게 용해되어 과거(산조춤, 바라춤, 장고춤, 화관무)를 회상한다. 『서울 굿, 점지』는 미열할미의 이본(異本)이다. 대전시립무용단 정기공연으로 대전을 소재로 한 『다섯 그리고 하나 1』 ‘본향’, ‘바라춤’, ‘유성학춤’, ‘취금헌무’, ‘동춘당의 봄’과 『다섯 그리고 하나 2』 ‘한밭북춤’, ‘갑천, 그리움’, ‘계족산 판타지’, ‘한밭규수춤’, ‘대전양반춤’은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었지만 세계 속의 우리 춤을 각인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정은혜, 디지털 들판에서 아날로그를 찬(讚)하는 무례(舞禮)를 행하는 춤꾼이자 안무가다. 어쩔 수 없이 휩쓸리게 되어있는 현대의 파고(波高)를 내다보고 작품화하였으며, 전통의 소중함을 생명처럼 알고 있다. 한 밭의 유연함으로 흔들리는 그녀에게서 믿음의 빛줄기를 보게 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는 그녀의 상상이 하늘바다를 나는 물고기가 되어 늘 유영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