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둥지' 상실감·결혼 불만족에 이혼 신청자의 90%가 여성
'한몸만 되려 하지 말고 한마음이 되는' 대화의 기술법 익혀야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중년은 평가의 시기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현재 살고 있는 삶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을 입체적으로 평가하여 선택을 하는 시기다. 청년은 시간 조망이 미래에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더라도 ‘미래의 꿈’을 먹으며 이겨나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더 이상 미래가 현재를 위한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중년에는 ‘현재’가 중요하고, 이 생활을 계속 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엄중한 선택을 해야 된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의 말년에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프로이트는 의외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사랑하고 일하라(Lieben und arbeiten).” 그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본질이 ‘사랑’과 ‘일’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중년에 삶을 평가할 때 어느 것을 평가할까? 그것은 당연히 사랑과 일에 대한 것이다.
중년에는 ‘미래’가 더 이상 위안이 되지 못한다. 위안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더 이상의 미래 자체가 없다. 중년기 다음에 오는 시기는 노년기이고, 노년기는 더 이상 현실적인 ‘꿈’이 없는 시기다. 따라서 중년의 결혼생활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객관적일 뿐만 아니라 절심함이 배어있다.
“현재의 결혼생활이 과연 내가 꿈꾸던 것인가? 앞으로 더 이상 좋아질 가능성이 없는 이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해야할 것인가? 왜 계속 해야만 하는가? 만약 다른 선택을 한다면 더 이상 늦기 전에 해야 하지 않을까?” 중년은 이와 같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질문에 정직한 대답을 해야만 하는 시기다.
여성의 경우는 더 심각하게 선택의 필요를 느낀다.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경우 자녀양육이 생활의 제일의 관심사가 된다. 자녀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고, 자녀양육을 통해 즐거움과 삶의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자녀가 점점 커감에 따라 어머니를 덜 필요로 하고 자신만의 생활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오히려 어머니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하고 친구들에게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때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소위 ‘텅 빈 둥지(empty nest)’를 느끼기 시작하고 자신의 삶이 헛되고 보람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남편은 한참 사회생활로 바빠서 자신에게 관심이 별로 없고, 자녀는 컸다고 어머니를 부담스러워하는 시기가 되면 “난 과연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이혼”이라는 해답을 내리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2010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경기도민 중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10년 사이에 2배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거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은 지난 2000년에는 비율(12.9%)이 분류대상에서 가장 낮았지만, 작년에는 전체 분류대상에서 동거기간 0~4년 부부의 이혼(26.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이혼율을 기록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록 경기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40,50대 남녀 이혼자 수는 전체 이혼자의 70%를 이미 넘어섰고, 40,50대 남녀 17명 가운데 1명은 이혼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행복가정재단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성인 남성의 18%, 여성의 24%가 부부생활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법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남남처럼 지내는 부부가 10쌍 중 3쌍이나 된다는 조사결과는 중년의 이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특히 중년 이혼의 신청자 중 여성이 90%가 넘는다는 것은 결혼생활에 대한 중년의 평가가 여성에게 더욱 심각하고 절실한 과제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의 외도나 어떤 어려움도 인내하고 헌신하는 여성을 이상화(理想化)했던 전통적인 가족문화는 더 이상 불만스러운 여성들을 가정에 묶어두는 기능을 할 수 없다.
전에는 많은 어머니들이 비록 남편과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가정을 지켜왔다. 하지만 가족간의 심리적 유대, 특히 어머니와 자녀간의 심리적 유대가 예전과 같이 절대적으로 큰 힘을 가지는 시대는 이미 변화하고 있다. 자녀들 스스로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어머니에게 ‘우리들 걱정하지 마시고 어머니가 행복하게 사시는 길을 택하세요’라고 오히려 이혼을 부추기는 정도까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전통(傳統)’이라든지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는 말로 이런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 또 되돌려서도 안 된다. 바람직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서 더 이상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희생과 인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혼이 중년의 선택에 최상의 해답일까? 이혼은 가족의 근본이 해체되는 것이다. 가족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함께 살면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혼은 어떤 연유에서 일어나든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에 관계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미치고 큰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당사자가 다시 재혼을 하든 혼자 살든 간에, 이혼까지 이르게 된 가정생활에서의 상처는 항상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새로운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어느 자녀도 부모의 이혼에서부터 심리적으로 자유스러울 수 없다. 이는 부모의 이혼 때문에 심한 상처를 입은 자녀들의 상담을 통해 너무 자주 확인되는 사실이다.
이혼을 무조건 죄악시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중년에 빈번히 일어나는 이혼의 심리적 원인을 이해하고 예방적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문제점을 찾으려한다. 예를 들면, 이혼하는 이유는 부부간에 성적(性的)인 불만족이 높다거나,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거나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가 나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이 겉으로 드러난 원인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것이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눈에 안 보이는 원인, 즉 심리적 이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한다. 부부가 정말로 ‘한마음’이 되면 ‘한몸’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성적 불만족도 결국 한마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결과일 뿐이다. 서로간 마음의 벽을 헐고 자신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면, 한몸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남녀의 이치다. 한마음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몸만 되려고 하니 상대방을 거부하게 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관계이든 그 관계가 건강한지 혹은 병들어 가는지를 제일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대화가 계속 되는지 아니면 끊겼는지를 보는 것이다. 부부간에 대화가 계속 된다면,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결국 대부분의 경우 이혼이라는 어려운 결정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혼을 막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중년을 맞아 느끼는 심리적 갈등과 좌절을 서로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위로받고 서로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 마음의 벽을 헐고 한마음이 되는 지름길이다. 이혼은 결코 최상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하기 전에, 상대방과 한마음이 되는 ‘대화’의 방법부터 배우도록 하자. 그리고 사회는 이혼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방법을 널리 알리도록 하자.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