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신의의 '백색 발레' 지향하는 신예안무가
英유학시절, 세계 정상급 무용수와 당당히 경쟁
순수발레서 영상까지 다양한 학문 섭렵한 '재원'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고현정(高玹精·Goh Hyeon Jeong)은 1977년 2월 27일 광주에서 출생했다. 동아여고에서 이화여대, 국립발레단에 이르는 고된 발레리나로서의 수업시대를 경험한 그녀는 정상의 국립발레단에서의 안주를 접고 새로운 발레의 광휘를 찾아 모색과 탐험, 신비의 고된 여정을 개척할 야심찬 ‘고현정 발레 프로젝트’ 계획을 세운다.
그녀의 보랏빛 꿈,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다니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험한 유럽 유학이 구체화된다. 대학원 졸업 후 그녀는 이듬 해 영국 브루넬 대학교로 유학, 세계 정상급 스타들과 경쟁하면서 당당한 코리언 발레리나로 인정받는다. 그녀는 순수 발레에서 영상에 걸친 다양한 학문 영역을 개척한다.
영국 브루넬대에서의 처음 1년은 댄스 테크놀로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다가 춤 영화를 접하고 박사과정 중 춤 영화 『용들과의 춤(Dance with Dragons)』, 『물의 거울, 한적한 하늘(Mirror of Water, Still Sky)』를 감독해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 특히 2005년 안무 및 출연한 댄스필름 『물의 거울, 한적한 하늘』은 2006년 1월 런던 컨템포러리 댄스스쿨 도서관에 보존하고 같은 해 3월 파리 필름 도서관 영구 보존의 영광을 얻는다.
그녀의 작품은 일본(Japan Korea Art Meeting Fair 2008), 프랑스(Video Formes 2006), 영국(Dance Film day 2005), 캐나다 (Moving Pictures Festival of Dance on Film and Video in Toronto 2005), 아르헨티나(Festival International de Video Danza de Buenos Aires 2005), 그리스(Video Dance 2005 Thessaloniki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Athens 2005), 우루과이(FIVU 04,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Montevideo 2004) 등에 초청, 상연되었다.
그녀는 무용수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 몸 움직임으로 이루어진 무용을 사회적·객관적으로 약속되어진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여 연구하는데 한계를 느끼면서 무용의 연구방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발레와 춤 연구를 병행하면서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라는 방법론에 집중, 영어권 무용수로서는 최초로 무용수가 자신을 연구하는 방법, 무용이 아닌 학문이 광범위하게 보급 되어있는 ‘자문화기술지’를 사용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현정의 2011년 박사학위 논문은 ‘춤의 초월성 상태: 자문화기술적 분석(A State of Transcendence in Dance: An Autoethnographic Analysis)’이다. 문화인류학에서 인정하는 다양성과 상관관계가 있는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런 학문은 인기가 있는 연구방법이다. 춤과 영상의 조화와 상생은 그녀를 일약 주목받는 작가로 부각시켰다.
그녀는 영국 Theatre Technis 극장에서 GroundWork1 프로젝트에 참여, 『물의 거울, 한적한 하늘(Mirror of Water, Still Sky) Ⅱ』를 안무·출연 (2006) 하였고 같은 해 London Boiler House에서도 안무·출연을 하는 등 안무와 무용수의 길을 꾸준히 닦았다. 귀국하여 2012년 포스트 시즌 M극장 기획공연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서서히 안무를 하면서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철학적 담론이 소지된 발레를 통해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1999년~2002년 발레블랑 단원, 2000년 8월 나고야 국제경연대회에서 실비아 상 수상, 2001년 7월~ 2002년 11월 국립발레단 정단원, 2007년~2009년 영국 Ballet Black Company 연수(Royal Opera House in London)의 무용경력과 2010년부터 지금까지 경성대, 상명대, 중앙대, 동국대, 이화여대, 한성대, 한예종, 한양대 등에서 교육경력을 쌓고 있다.
그녀의 안무 및 출연작은 1999년 11월발레블랑 기획공연 『청띠제비나비』 안무 및 출연(문예회관 소극장), 2004년 1월 『Resolution, Half Shadow』 The Place in London(영국) 출연, 2004년 3월무용 필름 『Dancing with Dragons』 안무 및 출연, 2004년 9월 Brunel University(영국) 상영 및 세미나, 2004년 10월 FIVU(04,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Montevideo)(우루과이) 출품 상영, 2004년 10월 인천 국제대학교 디자인 전시회 초청 전시, 2005년 5월무용 필름 『물의 거울, 한적한 하늘(Mirror of Water, Still Sky)』 안무 및 출연, 2005년 10월 Video Dance 2005 Thessaloniki International Film Festival in Athens(그리스) 출품 상영, 2005년 11월 Festival International de Video Danza de Buenos Aires(아르헨티나) 출품 상영, 2005년 11월 Moving Pictures Festival of Dance on Film and Video in Toronto(캐나다) 출품 상영, 2005년 12월 Dance Film Day (영국) 신인 안무가 부문 초청 상영, 2006년 3월 VideoFormes2006(프랑스) 출품 상영, 2006년 9월 GroundWork 1, Mirror of Water, Still SkyⅡ 안무 및 출연, Theatre Technis in London (영국), 2006년 9월 London Boiler House 안무 및 출연 (영국), 2008년 8월 Japan ‘Korea Art Meeting Fair 2008’ (동경) 출품, 2012년 11월 2012 Post Season M극장 기획공연 시리즈 춤과 의식전 『Rosa Sempervirens(에버그린 로즈)』안무 및 출연, 2013 춤과의식전 『HEART(박동)』에 걸쳐있다.
그녀의 최신작 두 편을 살펴본다.
『에버그린 로즈(Rosa sempervirens)』는 조 샵코트(Jo Shapcott)의 시 ‘에버그린 로즈’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다. 인간이 삶을 그려나가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에게 어떠한 새로운 일은 그 삶 안에서 하나의 침입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침입들을 겪지만 이를 헤쳐 나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사랑과 용기 그리고 굳건한 의지다.
‘하늘에 떠돌며, 애정을 발산할 시간이 별로 없네요. 내 마음을 활짝 열 그런 시간이 별로 없어 아쉬워요. 당신을 흠뻑 빠지게 할 이 향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잊으신다면, 저는 사라지겠지만 기적을 만들러 다시 돌아와야겠죠’. 이 시에서 느껴진 정서를 인생과 비유하여 이를 토대로 ‘현재의 나’를 이루는 것은 이런 수많은 침입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고 이를 아름답게 자기 자신으로 만들어 가려는 본인의 의지와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현정 안무의 창작발레『HEART(박동)』은 겸손의 퇴적층에서 건져 올린 열정발레의 서막으로 2013년 6월1일과 2일(토, 일) M극장에서 고현정 안무, 출연의 창작발레 『HEART(박동)』의 총 2회 공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예상과 달리 탄탄한 구성으로 주제에 집중한 이 작품은 발레를 통한 사유, 생각하는 발레의 바람직한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발레의 정중앙을 관통한 그녀는 ‘낮은 곳’으로 임한 ‘춤 철학자’였다.
그녀가 추구해온 내면의 순수는 뭉게구름 이는 자연에 대한 동경이 깔려있다. 춤의 대안으로 또는 협업으로 영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작업인 여러 영상물에 주인공, 연출, 안무가가 되어있다. 그녀의 작업은 초월 상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녀의 평화스러운 발레에 ‘깨달음’이라는 화두가 걸린다.
성실과 마음의 평화를 우선으로 삼고 정진한 고현정은 심장을 상징적 코드로 삼은 ‘뛴다’, ‘쉰다’, ‘사라진다’로 구성된 삼부작 『HEART』를 통해 인간의 성숙과정과 타인과의 공생(共生)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털어 놓으며 사회 안에서의 삶의 일면과 인간의 감정을 순수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녀는 늘 대지(黑)를 기반으로 한 성장(綠)과 희망(靑)을 꿈꾼다.
‘박동에 관한 짧은 이야기’는 심장의 두근거림의 원천을 찾아간다. 지금까지 나를 들뜨게 했던 설레임에 관한 에세이는 생동하는 존재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HEART』는 1) 인고의 수업시대, 서울에서 런던까지 날 수 있는 ‘황제나비’ 2) 녹색, 가족, 일상의 소중함을 부각시키는 가필드(Garfield)식 휴식 3)욕(慾)의 소멸, ‘비움의 미학’을 생각게 하는 발레 구성이 타 창작 발레와 차별화된다.
연작의 1부, 『뛴다』는 그녀의 안무 데뷔작 『청띠제비나비』(99년, 발레블랑)를 개작한 것이다. 청띠제비나비와 이종(異種)의 나비를 대비하기 위해 발레와 현대무용의 이질적 특성을 보여준다. 이 나비를 상징하는 발레리나는 사선의 조명 안에서만 춤을 추고 이탈한 나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고현정은 외래문물의 무분별한 수용보다 문화원형 보존 의식을 가져야 함을 점잖게 충고한다.
연작의 2부, 『쉰다』는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의 음악을 차고 슈퍼리얼리즘, 무위자연을 꿈꾸는 ‘쉼’을 표현한다. 고난도 테크닉을 우회한 자연과 인간의 혼연일체, 바람에 맡겨지는 내 몸, 큰 방석은 이 세상의 모든 짐과 업보, 가져갈 수 없는 무게감,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인생의 모든 과정을 상징한다. 번뇌를 껴안은 ‘삶’ 위에 누워 ‘She’를 들으며 쉰다는 것은 나를 만드는 해탈 방식의 일부분이다. 사랑하라는 메시를 보여준다.
연작의 3부,『사라진다』는 희생과 겸양, 지혜로움으로 인간의 욕망과 욕심이 사라짐을 표현한다. 욕(慾)의 소멸로 인간은 성숙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욕(慾)을 상징하는 도구로 구두, 머리장식, 의상이 쓰인다. 표준시간대를 넘어서는 엄격한 도덕률의 준수, 그것은 부적응과 불편함을 강요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나에 의해 벗겨지는 구두는 내가 어떠한 상황에 의해 포기해야만 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머리 장식은 타인에 의해 나도 모르게 혹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벗김을 당하는 희생을 나타낸다. 3부, 빠른 비트의 음 속에서의 움직임은 구두와 머리장식이 없어진 상태에서 내면의 싸움을 보여준다. 스킨색 의상과 함께 진정한 내가 된다.
한국 모던 발레 안무가로서 새로운 도전자로서 고현정의 춤 안무의 심도는 이전의 기억의 일부로 탐색하기에는 수련의 정도나 선택한 주제가 심오하고 바른 것이어서 빙산의 일부라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순수로 표징되는 춤 철학자의 대범한 데뷔를 환영한다. 순수로 생긴 오해의 고랑이 있다 해도 극복해야할 과정 중의 하나이다.
고현정은 『HEART』 3부작을 통해 인간의 심장의 두근거리는 감정들을 보여주며, 그녀가 살아있고, 그녀의 심장이 뛰며, 그녀가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였다. 그녀는 종달새처럼 가볍게 발레를 전개시키면서 가볍게 수면으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연상시키다. 보리밭에 이는 바람에 기대어 지그시 감은 눈으로 스치는 녹색 리본을 느낄 것 같다. 과감한 생략, 다양한 색감 살리기, 헤어스타일의 변화와 같은 수사학 구사와 변주, 변형은 유혹의 핑크시대를 지난 녹색 자정기의 절정을 맞고 있다.
고현정, 잔잔한 물 밑에 대하를 품은 야심찬 발레리나다. 그녀는 춤 테크닉에 있어서의 탁월함, 발레적 감성과 신체조건, 발레예술에 대한 열정과 학구적 탐구심으로 한국 발레계에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녀가 일구어낼 발레계의 거대한 ‘바람불어 좋은 날’을 기다려 본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 고현정 약력
이화여자 대학교 무용과 졸업 (무용학사)
이화여자 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전공 졸업 (교육학석사)
영국 브루넬대학교 예술대학 공연예술학과(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