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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최고 멋은 '배려'…'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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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최고 멋은 '배려'…'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라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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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남'…내 자식과 다음 세대가 모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권위적 삶'을 살 것인가 vs '권위주의적 삶'을 살 것인가의 갈림길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중년기는 청년기와 노년기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시기다. 다시 말하면, 젊음과 늙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시기다. 이제 젊음을 마감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열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발달의 과정에서 두 시기가 겹치는 시기는 예외없이 심리적으로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불안정해진다.
중년기는 삶의 절정(絶頂)에 있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한계(限界)를 느끼는 시기다. 모든 일에 양면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삶의 절정에 있다는 것은 결국 앞으로는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정(否定)을 하기도 하고, 타협(妥協)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여러 복(福)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인복(人福)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가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사느냐의 여부는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달려있다는 뜻이리라. 제일 먼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와의 만남이다. 아동기에는 좋은 선생님과의 만남, 청소년기에는 좋은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청년기에는 좋은 배우자와의 만남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중년에는 누구와의 만남이 중요한가?
전생애에 걸친 성격 발달을 연구한 에릭슨(E. Erikson)은 중년을 잘 보내기 위해 생산성(generativity)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성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꿈과 젊음을 계속 연장시켜줄 수 있는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모인 찜질방에서 ‘자식이 공부 잘 하는’ 부인이 제일 목소리가 크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중요무형문화재제96호옹기장김일만씨가화로,질그릇등만들기를시연하고있다.전통공예장인은고향을떠났던자녀가집으로돌아와자신의대를이어줄때만족을느낀다고한다.이미지 확대보기
▲중요무형문화재제96호옹기장김일만씨가화로,질그릇등만들기를시연하고있다.전통공예장인은고향을떠났던자녀가집으로돌아와자신의대를이어줄때만족을느낀다고한다.
중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자녀가 중요하다. 물론 부모가 젊고 자녀가 어렸을 때도 자녀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 때의 자녀는 애정의 대상으로서 중요하다. 하지만 중년기의 자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즉, 나의 꿈과 열정을 계속 이어주고 실현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자녀가 부모의 꿈과 목표를 계속 이어준다면 비록 몸은 늙고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 꿈과 목표는 계속 살아있는 것이 된다. 생물학적으로도 자녀는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통해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 심리적으로도 동일한 방식으로 자녀를 통해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잘 되는 것이므로 중년기에는 자녀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제공하고 돌봐주게 된다. 따라서 중년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 만약 저에게 주실 복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것을 제 자녀에게 주십시오.” 이사를 하거나 직장을 선택할 경우, 젊었을 때는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제일 도움이 되는가?’의 관점에서 판단하지만, 중년에는 어떤 선택이 ‘자녀에게 제일 도움이 되는가?’의 관점에서 판단하게 된다. 즉, 중년기에는 ‘나’에서 ‘자녀’로 판단의 기준을 바꿈으로써 한계를 극복한다.

중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의 ‘일’을 계속 해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 이미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점점 적어지는 전통 공예의 장인은 취업을 위해 집을 떠났던 자녀가 돌아와 자신의 일을 물려받아 열심히 배우고 일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흐뭇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가능하면 모두 자녀에게 전수하려고 애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녀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려는 중년에게는 ‘배려(配慮)’라는 덕성이 발달한다. 단순히 자녀를 가졌다고 해서 한계를 극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녀를 보호하고 잘 성장해서 자신의 일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부모는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보다는 ‘남’을 더 우선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자녀에게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資源)을 자녀에게 기꺼이 주게 된다.

물론 생물학적인 자녀만이 이런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내 자식은 아니지만 다음 세대가 잘 되기 위해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비록 자신의 자녀는 없는 종교인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고, 배려의 덕성을 발휘할 수 있다. 20세기의 성녀(聖女)로 추앙받는 테레사(Mother Teresa)수녀는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임종자의 집’을, 그리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서는 ‘고아의 집’을 세워 돌보아주었다. 이 분이야말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생산성과 배려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중년은청년기와노년기를이어주는가교역할을한다.서울마포구상암동의한찜질방에서한중년가족이홀로사는어르신과즐거운시간을보내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중년은청년기와노년기를이어주는가교역할을한다.서울마포구상암동의한찜질방에서한중년가족이홀로사는어르신과즐거운시간을보내고있다.
또 다른 의미의 자녀들을 가질 수 있다. 교육자에게는 ‘제자’가 자녀일 수 있고, 직장 상사에게는 ‘부하 직원’이 자녀일 수 있다. 진정한 교육자는 제자가 잘 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배려를 할 것이고, 진정한 상사는 부하 직원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는 다음 세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모든 행위가 배려가 된다.

중년기에 생산성을 발달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직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한계를 직면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다음 세대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키워주어야 할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계속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한계를 더 극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멀리해야 할 해로운 존재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은 젊은 세대들을 배려하고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두려워한다.

중년에 젊은 세대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침체(自己沈滯)’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늙어가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우리 모두는 한계를 경험하게 되고 종국에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다음 세대를 통해 심리적으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다상대적으로 젊고 능력이 많은 다음 세대들이 자신의 현재 지위나 신분을 빼앗아가려는 것 같은 불안을 느끼게 되고, 자기 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自愧感)과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점점 약해져가는 자신의 성(城)에 칩거하게 된다.

▲작가강형구가극사실주의회화기법으로그린'테레사수녀'이미지 확대보기
▲작가강형구가극사실주의회화기법으로그린'테레사수녀'
중년의 아름다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데 있다. 삶의 절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자원을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 때 멋있는 중년을 보낼 수 있다. 흰머리가 약간 나기 시작한 중년이 젊은 세대들을 도와주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띠우는 것은 젊음이 갖지 못한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멋있는 중년은 ‘권위적인(authoritative)’ 삶을 살고, 침체에 빠진 중년은 ‘권위주의적(authoritarian)’인 삶을 산다.

테레사수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당신과 헤어질 때는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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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