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춤사위에서 창작 무용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소고춤‧승무춤 변주 통한 달구벌 댄스 프로젝트
지역 순회하며 학생 지도에도 열정…춤색깔 넓혀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박진미(朴眞美‧Jin-mi Park)는 1975년 10월 5일 대구 출생이다. 그녀는 경북예고, 대구가톨릭대, 부산 경성대 교육대학원을 거치면서 늘 승리의 영감을 느끼게 하는 열정적 고단백 미세 춤을 춰오고 있다. 늘 진격태세로 대구, 창원 등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오고 있는 그녀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이 지역 젊은 춤꾼들의 지표인 분주한 일상과 구조적으로 안착할 수 없는 춤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읽게 해준다.
경주 서라벌 여중, 울산 효정여중, 성주 성주여중, 덕원중, 무산중 등의 예술강사로 방대한 지역을 순회하며 지도한 그녀의 춤 색깔은 넓어지고, 산점(散點)의 파장은 크다. 그녀는 흑단의 강건함과 금빛 변채(變彩)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두르고 있다. 박진미는 창원시립무용단 상임단원 역임, 아리 춤 아카데미 무용강사, 소망의 집(여성인력개발원 부설) 강사, 효성무용학원 강사를 거치는 수행의 과정을 묵묵히 견디어 왔다.
박진미는 제17회 대구무용제 연기상(2007), 전국차세대 안무가전 연기상(2008), 생활 한국춤 페스티발 최우수지도자상(2009, 생활 한국춤 연구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올해의 주목할 예술가상(2011)등을 받아왔다.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면서 그녀가 한 안무작들은 『함께하는 삶』, 『곰비임비』, 『타울사위』, 『타래』, 『흐르는 강물처럼』, 『춤꾼삼락』, 『아리랑 아라리요』, 『량Ⅰ』, 『량Ⅱ』외 다수가 있다.
그녀는 1998년 3월부터 2008년 5월 말까지 창원시립무용단 상임단원과 부수석 직책으로 단원 생활을 마감하고 대구무용단을 거쳐 독립안무가의 길을 걷는다. 미세한 균열이나 다른 내부적으로 균질하지 않은 부분을 따라 차가운 빛의 간섭은 박진미로 하여금 새로운 춤 길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이후, 그녀의 춤은 비닐하우스의 안주적 춤을 벗어나 야생의 춤 빛깔로 서민 속에 들어가 자신을 용해하는 춤으로 변모하게 된다.
박진미 안무의 『전통춤과 전통춤의 변주, 2008』에서 『타울 사위』는 지역 춤의 수준을 끌어올린 심도있는 역작으로 신명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역, 공간, 자본, 장비의 부족을 극복하고, 공연을 감행하는 결단은 혁명에 버금가는 모험이다. 상호부조가 된 춤에 주로 대구, 창원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영남 춤꾼들이 무대를 달구었다. 달구벌 댄스 프로젝트라는 변주작업은 소고춤의 변주와 승무의 변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동작의 응용과 변주가 주가 된 공연의 전자는 『곰비임비』, 후자는 『타울 사위』로 나뉜다. ‘곰비임비’는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겹치는 모양을 말하고, ‘타울 사위’는 뜻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위이다. 설상가상, 대기만성, 고진감래 등의 사자성어들이 박진미의 현실과 오버랩 된다. 『전통춤과 전통춤의 변주』의 구성은 ‘신명의 땅’(북과 장고의 합주), ‘바라춤’, ‘소고춤’,『곰비임비』,‘승무’와 『타울 사위』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과 창작의 접점에서 현대적 조화를 꾀하며 덧배기춤이 낳은 ‘곰비임비’, 소고춤이 낳은 『곰비임비』는 춤의 변형미를 맛보게끔 해준다. 모든 호흡을 컨트롤 해 내어야만 하는 동작들이 주류를 이룬다. 『타울 사위』는 승무의 동작이 일부 들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는 “삶은 풀고 맺음의 연속이다. 말은 의미망을 해체하고 춤사위는 세상의 씨줄과 날줄을 바로 잡는다. 나를 에워 싼 공간은 젖빛과 불꽃의 창백한 벽지이다.”라는 글이 그녀를 휘감는다. 그녀는 사랑이 필요하다.
『타울 사위』도 『곰비임비』처럼 실타래가 얽히고설키는 삶의 현상을 표현한다. 『곰비임비』가 삶의 희노애락의 일반을 묘사한 것이라면, 『타울 사위』는 도시라는 정글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안무가의 현재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선(死線)을 넘어 전투에 임한 박진미의 작품은 그녀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암갈색 우울이 안개처럼 끼고 오일 페인팅으로 덧칠한 어두움이 밀려온다. 그래서 그녀의 춤은 우울을 털어내는 춤이다.
춤은 백수광부의 처(妻)처럼 허탈한 웃음과 광기가 번뜩인다. 비범과 자괴감이 섞인 안무가가 마음의 방랑의 연대기를 쓴 것이다. 고백의 단상에 자신을 세우고 인생의 겨울에서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그런 춤이 만들어졌다. 어려움을 딛고 극기하는 모습들은 디테일로 깔며 『타울 사위』는 네 개의 작은 장을 만든다.
1장-허공을 맴돌며 자아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영혼이 있다. 등위에 탄 여자 무용수는 결국 주인공(박진미) 자신이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자전적으로 나타낸다. 자신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다가 결국 잠이 든다.
2장-듀엣 씬은 간구하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는 현실, 모든 세상이 자신을 기피하는 것 같은 현실과 주인공과의 투쟁, 밀고 당기는 싸움을 남녀의 듀엣으로 표현한다. 그리움과 외로움이 퇴적되지만 희망으로 일어선다.
3장-2장에서 이어진 현실, 주변의 아름다움,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군중의 고독을 느낀다. 듀엣 세 커플은 소시민의 여유로움을 추어 되고 그런 것을 느껴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외로움의 춤을 춘다.
4장-자신을 기피하는 듯한 현실에 몸을 던진다. 남들과 같이 살 수 없는 현실, 항상 어두움 속에 갇혀 춤 연기를 해내지만 일어서야 하고, 일어서야만 한다. 나의 존재는 내가 지킨다.
남녀 간의 뺏고 뺏기는 사랑 같은 느낌, 정글의 법칙, 모든 것이 대칭이 되어 그녀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확대해석을 차단하고 의연하게 일어서는 박진미의 『타울 사위』는 예인(藝人)이라면 거의 경험했을 법한 통과의례였다. 박진미는 연연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품성의 소유자다. 그런 그의 성격은 자신의 안무작에서 분신처럼 투사된다. 자신감을 갖고 조급해 하지 않고 즐기면서 그녀는 자신의 춤 다이어리를 써나간다.
박진미 안무의 『타래, 2009』는 얽히고설킨 세상을 보듬는 지혜를 보여준 작품이다. 춤꾼들은 많지만 춤 작업이 미진한 대구 지역에서 젊은 춤꾼들은 의기투합, 1991년 대구무용단을 창단하고 ‘춤으로 여는 세상’을 주창하며 해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이라는 물음을 전제로 다양한 춤들을 공연해 왔다. 그 중 박진미는 이 지역 기반의 춤판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오며 서로 간의 격려와 희생의 소중함을 역설해오고 있다.
『타래』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의 이기와 갈등, 이념과 체제부정, 혼돈과 원망으로 ‘뒤엉킨 삶의 매듭을 풀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 근본은 가족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족 중에서도 모성을 중심으로 한 ‘매듭풀기’가 가장 즉효성을 지닌다. 박진미는 가족에 대한 해답을 『곰비임미』와 『타울사위』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인연의 그늘을 ‘타래’로 삼고 춤은 진행된다.
이 작품은 1장 몽환, 2장 타래지기, 3장 오색울움, 4장 치유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지, 어머니의 가슴, 여인의 마음은 세상의 타래를 푸는 열쇠이다. 현실과 미래의 타래는 피안의 안식을 원하고 있다. 『타래』의 특징적 춤 형식은 현대창작무의 기본인 전통적 호흡에다 역동적 현대 춤사위를 구사하고 있다. 박진미는 가부장적 현실 속에서의 여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것에 기인한 여성성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순응자의 ‘타래’를 착안한다. 그러므로 파괴적 도피가 아닌 현실적 휴식과 낭만적 서사를 떠올리게 된다. 숨가쁘게 살아온 춤 인생의 경사로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은 일상의 판타지다. 그녀는 고전적 춤사위에서 창작 무용까지의 스펙트럼을 쉬임 없이 오가며 춤 철학에 접근하고 있다. 그녀의 춤은 기하학적 공간을 창조하고, 시간적 배경은 범위가 넓고, 공간적 배경 역시 상상의 무한대를 추구하고 있다.
영남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춤꾼 박진미는 지역적 특성과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을 춤으로 천착시키면서 여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녀의 현재적 삶은 춤을 통해 ‘타래’의 모습을 닮아 있음이 입증된다. 잿빛 우울과 창백한 현실 사이에서 파스텔 톤의 희망을 찾아가는 박진미의 춤사위는 사랑으로 덧칠된 희망을 희구한다. 박진미의 춤은 스토리와 무브먼트가 일체되게 만들고 춤은 작가의 경계를 허문다.
타래, 선, 천 등은 연결을 상징하는 기표로 주로 등장한다. 천벌처럼 달라붙는 타래의 현실을 시인 이상은 반복적 강박으로 여겼고, 까뮈는 도시에서 느끼는 ‘이방인’을 호소한 지 오래된다. 타래지기는 ‘마음 다잡기’의 중심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오색울음은 오방색과 혼령이 섞여 비주얼과 사운드의 현란한 도움 속에 카오스적 혼돈을 나타낸다. 우리들의 탐욕과 분노, 번민을 거치는 전투적 춤사위는 클라이막스로 전이된다.
정제된 춤은 끊어진 실타래를 찾아 잇고 매듭을 푼다. ‘용서는 있다’를 강조한 춤은 교훈적 결론을 내린다. 이 작품은 힘의 과잉과 들뜸을 잠재우고 차분한 결말로 연의 소중함을 기억해내며, 시대의 아픔을 슬기롭게 치유해 나아가는 과정을 차용함으로써 현실극복 논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춤의 충격적 효과를 위한 비극적 결말을 애써 우회한다.
박진미는 백현순(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총연출, 이미영(국민대 교수)의 연출로 이루어진 성암아트홀의 기획공연 ‘제3세대 한국 전통춤’(2011)의 약진에서 절정에 오른 여성 안무가들의 독무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소고춤은 한국 전통춤의 정형과 진정성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파격이었다. 살아있는 전통 춤 교본이 된 공연은 춤 진법과 가변/변주의 춤 미학을 가산(可算)케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박진미는 여러 곳에서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 손잡이가 달린 작은 북을 손에 쥐고 그녀의 『소고춤』은 경쾌함을 바탕으로 소리와 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가끔씩 들리는 구음은 박진미 특유의 활달함, 테크닉과 더불어 모두의 신명을 불러일으킨다.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장단에 맞추어 부드럽게 춤추다가 흥겹게 연결하여 씩씩하고 활기차게 엮어간다. 『소고춤』은 생활의 재창조와 삶의 에너지 재충전으로 해석된다.
한국창작무용의 든든한 지지자인 독립안무가 박진미의 ‘2013년 춤깔’은 영남 춤의 색향미(色香美)를 느끼게 하는 춤사위와 가락으로 대구에서 이어져온 춤의 수준, 현재와 미래를 간파하게 해준다. 신명과 삶의 춤 길에서 만난 그녀의 작품들은 영남검무, 활인국무, 북춤, 한량무, 달구벌 덧배기 춤, 쌍검무, 화관무, 진도북춤에 걸쳐있다. 그녀가 정착하여 유목민의 고달픈 삶이 정지되기를 기원한다.
박진미, 그녀는 '다시 ‘광야에서’ ‘삶~그 이상의 고도에서’ ‘논개’가 되고 ‘태양새’가 되어 고원을 날고 유토피아를 꿈꿔야 한다. 박정진, 구란영, 이미영, 정태진, 김경연, 정선화, 천혜선 등과 어울린 박진미의 춤연기는 늘 존중받았다. '어울마당', '삶의 궁전'에서 '바람과 물과 人間의 춤'을 겸허하게 즐겨야 한다, 박진미는 ‘사랑의 향기와 빛의 공간에서' '꽃등'을 타고 무신(舞神)이 '구원'하는 춤밭을 일굴 것이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 박진미(한국춤 연기자, 안무가) 약력
진주교대 체육교육과 외래교수
한국 춤 교육원 강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
한국 미래춤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