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등 동아시아는 아버지와 아들 '피의 영속성' 문화
나는 조상과 자손의 연결 고리로 '혈연 동일체' 재확인
"조상숭배 제사와 성묘 당연한 것" 힘들어도 고향 간다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올해에도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추석 때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기 위해 열차나 버스를 예약하려고 줄을 서고 있다. 우리에게는 일 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에 고향을 찾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민족의 대이동’을 하는 모습이 낯익을 뿐만 아니라 정겹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모습이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참모습이라고 뿌듯해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 설날과 추석은 무슨 의미일까? 왜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타지에 나와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녀들까지 데리고 고향을 찾는 것일까? 어려움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두 명이 아니라 한 민족이 대이동을 하는 데는 공통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공통의 이유를 ‘문화(文化)’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설날과 추석에 고향을 찾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 현상의 기저에 있는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인류학자 슈(Francis Hsu)에 의하면, 한 문화의 속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 중에서도 제일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문화들이 존재하지만, 가족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양자(兩者) 관계로 나누면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포함되는 아버지-아들(父子) 중심의 문화가 있다. 다음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포함되는 남편-아내(夫婦) 중심의 문화가 있다. 세 번째는 인도 등이 포함되는 어머니-아들(母子) 중심의 문화가 있고, 마지막으로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포함되는 형-아우(兄弟) 중심의 문화가 있다.
이 네 가지 문화군(文化郡) 중에서 우리나라가 포함된 부-자 중심축 문화와 이와 대비되는 부-부 중심축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부-자 중심의 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영속성(永續性). 현재의 나는 아버지의 아들인 동시에 내 아들의 아버지다. 내 아들은 동시에 그의 아들, 즉 나의 손자의 아버지다. 나의 손자는 아들의 아들인 동시에 증손자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부-자 중심의 가족관계에서는 아들은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관계는 윗대로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즉 이들은 조상(祖上)이 된다. 이처럼 나의 존재는 조상과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는 **공파의 28대 손입니다.”라고 하여야 ‘뼈대 있는 집안에서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아들은 동시에 손자의 아버지이고, 손자는 증손자의 아버지이고 증손자는 고손자의 아버지다. 이와 같이 현재의 아들은 동시에 아버지이고, 그 자손들의 관계도 앞으로도 계속 마찬가지로 이어진다. 이들은 내 아들과 그 아들을 통해 계속 이어져내려가는 자손(子孫)이 된다.
이처럼 나 자신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조상과 앞으로 계속 존재하게 될 자손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된다. 이런 문화적 전통에서는 영속성이라는 특징이 나온다. 즉, 나를 통해서 조상과 자손은 영원히 계속 된다는 관념이 강하게 형성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피를 나눈 동일체이기 때문에 조상과 자손도 동일하게 하나의 동일체라는 관념이 강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것도 나이지만, 동시에 자손에게 그것을 물려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도 나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버지의 것은 아들의 것’이라는 전통이 생기게 된다. 아버지의 것도 결국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자손에게 잘 물려주어야 한다.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대로 처분해서는 안 된다. 이 전통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만든 기업체를 아무 거부감 없이 아들에게 물려준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창업자의 자식들이 계속 ‘주인’으로서 기업을 물려받고 계속 주인으로 행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편과 아내를 중심축으로 하는 문화는 ‘단속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남편과 아내는 대를 이어가며 역할을 물려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남편이 동시에 부인일 수는 없다. 그리고 특정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당대(當代)에서 끝나는 것이지 선대(先代)나 후대(後代)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조상과 자손의 관계는 연결된 것이 아니라 부부관계가 끝남과 동시에 단절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단속성이 강한 문화에서는 ‘아버지의 것은 아버지의 것’일 뿐이라는 관념이 강하게 형성된다. 당연히 내가 모은 재산은 나의 것일 뿐이고, 이것을 자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영속성의 문화에서보다 현저하게 약하다.
영속성의 문화에서는 나의 것은 ‘조상의 은덕(恩德)’을 물려받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 문화에서는 조상을 알뜰히 모시는 것이 ‘자손 된 도리’다. 동시에 조상을 잘 모시면 그 분들의 음덕에 힘입어 복을 받게 된다는 ‘조상숭배(祖上崇拜)’의 정신이 강조된다. 물론 조상숭배의 목적이 복을 받는다는 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한 가족이 다같이 모임으로써 ‘형제 친척’ 간의 유대감(紐帶感)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조상을 알뜰히 모시는 마음은 결국 눈에 보이는 행동, 즉 의례(儀禮)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제사(祭祀)’를 모시는 양식으로 나타난다. 제사를 통해 돌아가신 조상님, 특히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동시에 자식들을 대동해서 조상들에게 가문이 영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보고할 수 있게 된다.
추석에 또 하나 중요한 의례는 ‘성묘(省墓)’다. 성묘도 마찬가지로 조상님들의 묘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잘 돌보아드리는 것이 자손 된 사람들의 도리다. 성묘를 통해 자손들은 오늘의 자신을 존재하게 해 준 조상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자신도 자녀를 생산하는 것을 통해 조상님의 피가 영속되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처럼 제사와 성묘는 일반적으로 부-자를 중심축으로 하는 문화에서는 많이 나타나는 의례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약소 국가로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어려움을 겪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려움을 가족구성원들의 끈끈한 유대감으로 이겨나가야 한다는 경험과 생각이 강하게 형성되었다.
이번 추석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참고 귀성해서 제사와 성묘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통해 조상과 자손을 연결하는 마음을 되새기고, 현재를 살아가는 의미와 의무와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