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발레' 13년간 83회 공연에 13만명 관람
부산의 맹주로 서울 진출작 '분홍신…' 대성공
'서정과 동화'로 어린이 발레 통한 대중화 앞장
소외지역 찾아가고 미래 관객 발굴 등 사회공헌
그녀의 낭만 발레의 서막은 대학시절 조숙자 교수, 신정희 교수의 발레구성과 연습역량 강화로 이루어진다. 바다를 끼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피어오르는 파도 결(潔)의 미세함을 감지해내던 그녀가 가슴으로 느끼던 격정과 느긋하게 가라앉히던 열정의 흐름은 세월이라는 가지들을 껴안으면서 창작과 타 장르와의 융합, 어린이 발레를 통한 춤의 대중화를 지향하고 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녀는 대학원에서 홍정희 교수와의 교류와 지도는 그녀의 안목과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오늘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타 장르와의 융합된 무대공연을 시도하고, 잘 알려진 문학이나 새로운 얘기들을 발굴한 창작발레를 지향하며, 춤의 저변확대를 위한 기초적 자산인 어린이 발레를 적극 육성하고 있다.
김옥련의 숲속발레는 국내 최초, 최장기(2002년~2013년/83회 12만9000여명 관람) 가족발레 공연이며, 2011년 <꿈속의 꿈>과 현진건의 대표적인 한국문학을 창작한 2012년 <운수 좋은 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기금 사후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우수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잠들지 않고 부산을 지키는 발레단의 동력은 그녀로부터 나온다.
불도저 같은 거침없는 진전, 그녀는 60여개의 신작 초연과 우수 레퍼토리 정착화로 지역에서 활발히 단체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으며, 다양한 시도와 폭넓은 관객개발로 부산 예술계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그녀는 허약한 발레 체질의 안주보다 개척정신으로 야성(野性)의 발레 시스템을 구축, 주변 발레인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그녀의 대표 안무작들은 <운수 좋은 날>, <분홍신 그 남자>, <날개>, <순간>, <꿈속의 꿈>, <꿈꾸는 비상>, <영혼의 동반자>, <카르멘은 죽었는가?>, <초혼>, <저 태양을 삼켜라>, <숲속발레>, <천상의 악장>, <벼랑의 노래> 외 다수가 있다. 이 작품들은 명 소설에 대한 발레적 해석, 서정성에 대한 깊은 관조, ‘발레’에 대한 성찰, 동화적 어울림과 동행의 가치를 추구한다.
김옥련은 부산KBS 무용콩쿠르 제2회 발레부문 금상, 제2회 MBC 무용창작 경연대회 우수상, 제14회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표창장, 제53보병사단 사단장상, 2010PAF 춤예술 공헌상을 수상함으로써 적어도 부산 지역에서 만큼은 그녀가 맹주임을 입증하고 있다. 척박한 토양의 부산 발레가 제 갈 길을 가고, 그 기반을 다지는 김옥련의 의로운 작업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발레에 대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김옥련, 인생의 사계에 얽힌 실타래 풀기인 김옥련 안무의 발레 <분홍신 그 남자(男子)>를 살펴보자. 지난 2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부산 출신 제작진과 출연진들이 합심하여 서울 무대에 진출한 작품이다. 춤과 노래, 라이브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창작발레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이다.
‘모든 치유는 세상과 사람 속에 있다’는 기본 모티브는 예술의 향기, 그 치유의 역사를 훑어간다. 발레리나인 그녀는 오랜 예술 활동과 과로로 희망 요양원에 입원한다. 그녀처럼 격동기를 지켜온 병든 예술가들이 그녀를 환영해 준다. 그녀는 악몽과 치유의 시간을 가지며, 근대화 과정에서 희생되었던 예혼(藝魂)을 과거의 회상과 추억 속에서 찾아낸다.
상징적 의미로 병든 발레리나는 시대의 모습이며, 치료하는 의사는 예술이고, 시련은 끊임없는 자본의 유혹과 개인의 저급한 욕망, 자기희생으로 얼룩진 투쟁의 시간을 보여준다. 시대를 치유하는 예술의 힘, 치열하게 지켜온 예술혼을 보여줌으로써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새로운 세상의 문을 활짝 열고, 함께 나아가길 서원하는 춤과 노래, 연주들이 함께 펼쳐진다.
‘분홍신 그 남자’의 배경은 예술인들이 모여 생활하는 요양원이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치매와 노환으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자신의 삶이며 습관과도 같은 예술에 대한 열정은 소진되지 않고 남아있다. 좌충우돌하는 그들의 일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치유되는 과정이 종합 장르에 담겨진다.
특히 많은 방송과 CF에 출연한 ‘한국발레리노의 전설’, ‘살아있는 발레 교과서’로 불리는 이원국이 열연한다. 문화가 지닌 소비성이 아닌 정신적 재생산적 가치를 인식시키고, 중장년을 위한 공연예술의 지표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대치를 향상시켜 무용문화의 파급효과를 높이고, 또한 지역 내외 교류 공연으로 지역문화의 개방성을 제고시키고 있다.
김옥련이 꿈꾸는 세상, 참 좋은 세상,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 인생길의 향방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쉼 없이 도는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삶은 나고 또 진다. 과거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한 부분이다. 인생의 시간 또한 이 지구상의 수많은 시간의 한 부분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원처럼 다시 태어나는 환생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간은 없다. 시간을 잃어버린 그녀. 어느 순간 나이도 잊고 바쁘게 살아 온 그녀. 그녀는 이제 정말 시간을 모두 잊어버린 채 희망 요양병원에 들어와 있다. 그 요양병원에는 과거의 화려한 음악가,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서로 만나 매일 연주회를 연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자신이 오래 익혀 온 발레만큼은 신기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들이 연주하고 노래하면 그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춘다. 그리고 과거에 만난 그 남자, 남편, 애인, 아들을 음악 속에서 만난다. 그녀는 모든 기억을 잃은 지금 실제 만나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꿈속에서 자신이 했었던 일인 양 환상을 가진다. 매병을 앓고 있지만 그녀는 하루는 10대 소녀가 되고, 어느 날은 20대 숙녀처럼, 하루는 30대 미부가 되고, 어느 날은 40대 정숙한 여인이 되어 분홍신을 신고 춤을 춘다. 이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된다.
그녀가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의 일부는 위와 같다. 현실에 대한 이념적 비판, 여건을 타개해 나가는 혜안, 흐름의 아픔을 공유하는 진지함, ‘그래도 희망은 살아있다’는 여유로움, 창작에서 생기는 자신감을 소지한 김옥련은 늘 실험적 무대 구성으로 우리에게 그녀를 주목하게 만든다. ‘창의력의 보고’인 부산 앞 바다는 아직도 춤추고, 그 춤에 동참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김옥련발레단의 열정 무대가 지속적으로 이 시대의 낭만과 서정을 복원하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 김옥련 감독 약력
김옥련발레단 단장 및 예술감독
한국발레연구학회 이사
경성대학교 겸임. 외래교수(1991~2011),
신라대학교 외래교수(1996~1998),
부산대학교 외래교수(2001~2002),
진주교육대학교(2008~2009) 외래교수
부산예고(2002~2003) 강사
울산예고(2004~2008) 강사
한독 경영 정보 여자고등학교(1987~1988)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