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한 과목만 잘해선 안되고 모든 과목 다 잘해야 하고
음식도 배타적 洋食과 달리 국과 밥?반찬 한꺼번에 나와
한국 특유 ‘재벌’ 창업자 정점으로 子회사?孫회사로 연결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축으로 하는 가족관계의 두 번째 문화적 속성은 ‘포괄성(包括性)’이다. 일반적으로 한 아버지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다. 비록 가정 형편 때문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가정이 있지만, 이런 가정에서도 아들이 여럿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서로 성격이 다른 여러 아들들을 잘 다독이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게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포괄성이 특징인 문화에서는 어느 하나를 특별히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동시에 포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해진다.
여러 아들들은 개성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성장해서 직업을 가질 때에도 다양한 직업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더군다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질 때에는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아들은 의사, 또 다른 아들은 법조인, 또 다른 아들은 사업가 등 여러 직업을 갖도록 교육시킨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아들들은 가족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아플 때는 의사 아들이, 법적 분쟁이 있을 때는 법조인 아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가족이 번성하게 할 수 있다.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남편과 부인을 중심축으로 하는 가족제도를 가진 서구에서는 ‘배타성(排他性)’이 중요한 속성이 된다. 서구의 대표적인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다. 따라서 한 남편이 여러 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정서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남편과 부인 사이에는 어느 것도 끼어들 수가 없다. 따라서 부부 관계는 전적으로 배타적인 특성을 가진다. 그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는 심지어 자녀들조차 끼어들 수 없을 만큼 배타적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갓 태어난 아기들도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능하면 일찍 다른 방에서 자도록 훈련시킨다. 오랫동안 자녀들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자도록 허용하는 우리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 자녀들을 가능하면 일찍 독립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우리의 포괄적인 속성은 여러 다양한 영역에서 골고루 나타난다. 우선, 교육 제도에서도 이런 포괄성을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과목만 잘 해서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가 없다. 여러 과목을 골고루 다 잘해야 한다. 한 과목만 잘 하고 다른 과목들을 잘 못한다면 내신 성적이 좋을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자녀가 수학 한 과목만 잘하면 대개의 부모들은, “수학은 잘 하니 이제 그만하고, 대신 성적이 나쁜 영어를 해라.”라는 조언을 한다. 우리나라의 고교생들이 공부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공부하는 데 들어가는 절대적인 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과목은 못 하고, 재미없는 과목을 할 수 없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심리적 괴로움이 크다.
한 체육심리학자는 우리 교육의 이런 특성을 ‘동물올림픽’에 비유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올림픽을 하면 오리가 금메달을 딴다. 오리는 호랑이보다 빨리 뛸 수는 없지만, 땅에서 뛸 수 있다. 오리는 독수리보다 더 높이 날 수는 없지만, 하늘에서 날 수도 있다. 오리는 상어보다 멀리 헤엄칠 수는 없지만, 물에서 헤엄칠 수는 있다. 땅 하늘 물에서 다 살 수 있는 것이 오리다. 하지만 올림픽의 목표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이다.”
포괄적인 특성은 식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음식물은 처음부터 골고루 차려져 있다. 밥, 국, 반찬들이 식사를 시작할 때 이미 다 식탁 위에 차려져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국에 말아서 먹는다. 숟갈에 국에 말은 밥을 퍼서 그 위에 반찬을 올려놓고 입으로 가져간다. 우리 음식의 진정한 맛은 입에서 여러 다양한 음식물들이 섞일 때 나오는 오묘함에 있다. 처음 시작 때부터 설렁탕이나 곰탕, 해장국 등은 아예 말아서 나온다. 오죽하면, 밥과 국이 따로 나오는 것을 “따로 국밥”이라고 부를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음식 중에 ‘비빔밥’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포괄적인 문화적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비빔밥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위 ‘양식(洋食)’은 음식물이 서로 배타적으로 제공된다. 먼저 전채(前菜)나 수프가 나오고 그 후에 다른 음식들이 차례로 제공된다. 마지막 후식까지 따로 먹는다. 철저히 서로 배타적이다. 한식을 이런 식으로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국을 다 먹은 다음에 밥이 나오고, 밥을 다 먹은 후에 반찬이 나오는 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포괄적 속성과 배타적 속성은 음식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문화의 포괄적 속성은 ‘의복(衣服)’ 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한복은 특정한 한 사람에게 꼭 맞도록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성들이 입는 저고리나 치마도 비슷한 몸매를 가진 여러 여성들이 다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다만 고름을 조금 더 여미거나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남성들이 입는 의복은 말할 것도 없다. 윗옷은 물론이고 바지나 두루마기도 키만 비슷하면 거의 모든 남성이 입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배타적인 서구의 속성은 의복에서도 잘 나타난다. 서양의 옷은 특정한 한 사람에게 맞도록 만든다. 키와 몸매 등을 철저히 측정해서 만들기 때문에 한 사람만 입을 수 있다. 옷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입으면 금방 남의 옷을 빌려 입은 어색한 티가 난다. 지금은 백화점 등에서 기성복을 사서 입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지금도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옷매무새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양복점에서 자신에게 꼭 맞도록 맞추어 입는다.
최근에는 포괄적 속성이 기업 경영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많은 경영학 서적에서 소위 ‘재벌(財閥)’을 한국식 기업 경영의 한 형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Wikipedia)는 재벌을 ‘chaebol’이라고 영어로 표기하면서 ‘기업집합체의 한국적 형태’라고 정의하였다. 일반적으로 재벌은 주로 가족이나 친척으로 구성된 거대한 기업 집단이다. 재벌을 다양한 영역에 걸친 계열 기업체를 거느리고 있고, 대개 창업자나 창업자의 자녀가 경영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각의 계열 기업체들은 형식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상호출자’ 등의 방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창업자는 기업을 시작한 후 여러 영역에 걸친 계열사를 거느리며 각각의 아들들에게 개별 기업체를 운영하게 한다. 각각의 기업체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맺어지면 재벌을 형성하게 되고, 그 정점에 창업자가 있게 된다. 또한 처음 시작한 기업을 중심으로 각각의 개별 기업체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개개의 기업체는 ‘자회사(子會社)’, 즉 아들회사가 된다.
1997년 12월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지원의 조건으로 여러 조건들을 제시하였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의 경제 위기를 불러온 주범 중 하나라 재벌체제를 지목하고 재벌을 해체하도록 강력히 권고하였다. 초기에는 여러 대기업에서 자회사들을 매각하는 등 해체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늘날 재벌들은 수십 개에 이르는 자회사를 거느리는 등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재벌이 한국의 경제에 미친 공과(功過)는 차치하고, 우리 사회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포괄적 속성이 단단히 뒷받침하고 있다는 증거다.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IMF에서 요구하기 전에 이미 사라졌을 것이고, 문화가 뒷받침되어 있다면 강제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문화는 이처럼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원래 포괄적 속성을 가진 ‘한식(韓食)’이 소위 ‘한정식(韓定食)’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배타적 속성을 가진 양식처럼 한 번에 한두 가지씩 음식을 차례로 제공하는 형식으로 변하고 있다. 원래는 포괄적 속성을 지닌 ‘한복(韓服)’보다 ‘양복(洋服)’을 입는 것으로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배타적 속성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