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관계는 '天倫' 불변의 관계…윗사람?아랫사람 구별 확실
'주민증 까봐라' 등 나이-학번-계급이 기준 되는 수직적 사회
서구적 능력?평등 중심 사회로 변하면서 수많은 '갈등' 양산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형성하는 문화에서는 ‘서열의식(序列意識)’이 강한 속성이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상대방이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 지를 정확하게 지각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서열의식이 강하게 형성되는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라는 표현을 쓴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보면 날 낳아주신 분은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다. 하지만 심리적·문화적으로는 아버지가 날 낳으신 것으로 여긴다. 이는 아버지는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주신 분이고, 어머니는 날 길러주신 분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키워주었다는 뜻으로 ‘모(母)’를 앞에 붙인다. 예를 들면, ‘모교(母校)’는 문자 그대로 어머니가 다니신 학교라는 뜻이 아니라, ‘나를 키워준 학교’라는 뜻이다. 모국(母國)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부교(父校)’라든지 ‘부국(父國)’이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이처럼 나를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신 아버지와 나와는 동등한 관계를 절대 맺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받들고 어려워해야 할 분이 바로 아버지다. 그리고 아버지로 상징되는 ‘윗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래야 하는 것으로 가르친다. 전통적인 가족에서는 아버지와 자녀는 겸상을 같이 할 수 없다. 당연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어느 문화적 관습도 용납될 수 없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이처럼 수직적 서열의식이 제일 강한 우리 문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신보다 윗사람에게 사용하는 ‘존댓말’과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반말’이 발달하게 된다.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도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다르다. 같은 식사를 말하면서도 아버지가 드시면 ‘진지’이고 자식이 먹으면 ‘밥’이 된다. 행동을 지칭하는 말에서도 차이가 있다. “아버지께서 진지를 드신다”와 “아들이 밥을 먹는다”처럼 자신과의 관계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고, 또 달라져야 한다. 이와 같은 예는 많이 있다. 아버지께서 잠을 ‘주무시고’, 아들은 잠을 ‘잔다’, 아버지는 ‘댁에 계시고’, 아들은 ‘집에 있다’도 그런 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편과 부인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관계에서는 서열의식보다는 ‘평등의식(平等意識)’이 강하게 발달한다. 남편이 부인을 낳은 것도 아니고 기른 것도 아니다. 물론, 부인이 남편을 낳은 것도 아니고 기른 것도 아니다. 남편과 부인은 각자의 부모 밑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후 동등한 ‘성인(成人)’으로 만나서 ‘부부의 연(夫婦之緣)’을 맺은 것이다. 따라서 부부관계는 어느 한 쪽이 윗사람이거나 아랫사람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수평적 평등관계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는 당연히 ‘경어(敬語)’가 발달할 필요가 없고, 모든 대상을 동일한 언어로 지칭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수평적 관계에서 성장한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울 때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는 존댓말과 반말을 구별하고 정확히 사용하는 것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 한국 사람은 윗사람이 자기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 어색해 하고, 아랫사람이 반말을 쓰면 자동적으로 불쾌해진다.
가족 내에서도 수직적 관계가 강조된다.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형제들 사이에도 형과 아우의 관계가 강조된다. 형은 나의 윗사람이고 동생은 나의 아랫사람이다. 따라서 부모가 안 계실 때에는 형이 부모의 역할을 맡아서 동생들을 돌보고 키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동생들은 형을 부모처럼 여기고 순종하고 존경해야 한다.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인 것’이고, 형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애비만한 자식 없고, 형만한 아우 없다’.
가족관계에서 배태된 서열의식은 사회의 모든 조직에 전파되고 일반화된다. 서열을 나누는 기준으로 제일 많이 이용되는 것이 ‘나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동적으로 윗사람이 되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아랫사람이 된다. 길에서 다투는 사람들의 대화 중에 ‘너 도대체 나이가 몇이냐?’ 라든지 ‘나이도 어린 놈이 감히…….’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서로의 서열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꺼내 봐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이가 확인이 되면 수직관계가 성립하고 거기에 맞는 대인관계가 이루어진다.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는 나이보다는 학번이 서열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교우회 등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학번을 밝히고, 학번이 높은 사람은 나이가 한두 살 어리더라도 선배가 된다. 선·후배 관계가 확인되면 선배는 선배답게 후배는 후배답게 행동할 것을 은연 중에 강요받는다. 군대에서는 계급과 군번에 의해 서열이 정해진다. 회사에서는 직급과 입사연도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서열이 높은 사람은 당연히 그 서열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문화에서는 서열에 따라 재화를 나누는 ‘연공서열제(年功序列制)’를 선호한다. 연봉은 당연히 그 조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에 따라 결정한다. 이런 체계에서는 별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자동적으로 직급이 높아진다. 따라서 심리적 안정성(安定性)이 높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체계에서는 경쟁이 배제되고 능력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평등성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능력’에 따른 보상을 선호한다. 모든 사람은 나이, 직급, 성별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재화는 본인의 ‘능력(能力)’에 따라 나누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능력이 많은 사람은 많은 보상을 받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보상을 적게 받을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심리적 안정성 대신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의 극대화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전통적인 서열 중시 사회에서 서구적인 능력 위주의 사회로 변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조직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공서열에 의한 연봉 책정보다는 능력에 의한 연봉으로 바꾸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인위적으로 끊을 수 없는 ‘천륜(天倫)’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아무리 능력이 부족하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아들은 아들이다. 이 관계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말 할 것도 없고 죽은 후에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관계다.
평등을 기반으로 남편과 부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는 ‘인륜(人倫)’을 기반으로 맺어진 문화다. 따라서 두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상대에게 더 이상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거나 잘못이 있으면 그 관계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문화다. 부부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또는 조직원으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문화다.
한국 사회의 많은 갈등은 그 본질적인 면에서 너무 빨리 서열 중심의 심리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능력 중심의 생산성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느 문화나 장·단점은 다 있다. 두 문화의 장점은 흡수하면서 단점을 줄여나갈 수 있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