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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며느리는 왜 밉고 '媤'자는 왜 다 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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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며느리는 왜 밉고 '媤'자는 왜 다 싫을까?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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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분신'인 아들을 딴 여자에게 양보하는 것 인식


'새아기'로서는 남편만이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며 보호막

바뀌어가는 결혼문화,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갈 지혜 필요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굿하고 싶어도 맏며느리 춤추는 꼴 보기 싫어서 안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국 가정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갈등이 많다. 어머니와 딸 사이도 “너도 시집가서 더도 말고 딱 너 닮은 딸 한번 나 봐라”라는 말이 있듯이 딸이 어렸을 때는 갈등이 심하지만, 딸이 나이가 들거나 결혼하게 되면 어머니와 사이가 가까워져 친구 같이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같은 여자들끼리의 관계인데 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나이가 들어도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 “며느리 흉 없으면 다리가 희다고 한다”는 속담에서처럼 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미울까? 한편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처럼 왜 며느리들에게는 ‘시(媤)’자가 붙는 관계는 다 싫은 것인가?

아버지와 아들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전통 문화에서 어머니에게 아들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편 집에 ‘새아기’로 들어온 며느리가 해야 할 제일 큰 과제는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이다. 내세관(來世觀)을 뚜렷이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 문화에서도 죽어서 조상만은 만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죽어서 조상을 뵐 면목이 제일 없는 일’이 바로 아들을 낳지 못해 자기의 대에서 대(代)가 끊기는 것이다. 당연히 남의 집에 시집 온 며느리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는 시댁의 대를 끊은 큰 죄인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만약에 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면 첩(妾)을 얻거나, 밖에서 다른 여자에게서라도 아들을 얻어 대를 이어가야 한다.

▲고부간의갈등을그린연극'고부전쟁'.한국가정에서시어머니와며느리사이에는갈등이많은데,아버지와아들의연속성을강조하는부자중심의문화가그원인으로꼽힌다.이미지 확대보기
▲고부간의갈등을그린연극'고부전쟁'.한국가정에서시어머니와며느리사이에는갈등이많은데,아버지와아들의연속성을강조하는부자중심의문화가그원인으로꼽힌다.
이런 문화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며느리로서 제일 중요한 임무를 완성한 것이 되고, 그 때부터 한 집안의 부인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시부모는 물론이고 시댁의 일가친척에게도 대를 이어준 공(功)을 인정받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아들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단지 자식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는 집안에서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준 일종의 ‘은인(恩人)’이기도 하다.

이처럼 귀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온갖 노력을 다해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만약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 일이기 때문에 아들을 보호하고 잘 키우려는 어머니의 정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여성의 삶의 의미는 아들을 낳은 어머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삶의 의미이고, 아들을 잘 양육하는 것이 어머니의 제일 큰 목표다. 당연히 아들에게 쏟는 어머니의 애정은 그 어느 것보다 더 강하고, 오히려 너무 지나쳐 맹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오히려 남편에게보다도 더 아들에게 애정을 쏟는다. 한국에서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애착(愛着)관계는 너무나 견고해서 그 사이에는 어느 것도 끼어들 수 없고, 또 아무 것도 그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전통적인 한국의 가족 문화에는 무성욕성(無性慾性)의 속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가족 안에서는 성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의식화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심지어 부부사이에서도 이 욕망을 억제해야 하고, 남편과 부인은 각각 다른 방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문화에서는 남자는 집 밖에서 성욕을 해소하게 된다. 남자들이 집 밖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여성과 관계를 맺는 것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남성다운 것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남성들을 위한 유흥문화가 발달하게 된 이유다.

남자들이 밖에서 성적 욕망을 해결한다면, 집안에서 주로 생활하는 여자들은 어떻게 성적 욕망을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여자들의 성욕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 일차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성적 욕망을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여자는 ‘질이 나쁜’ 여자로 간주되고, 정숙한 부인은 가능한 한 성적 활동을 억제하거나 생각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한다. 따라서 여성의 성은 마음 속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성욕이 본능인 것은, 비록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최소한의 성적 욕망을 만족해야 한다. 의식적인 표현과 행동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에서 적정 수준의 만족을 얻을 수 없고, 집 밖에서 해결할 수 없는 여자는 집 안에서 그 대상을 찾아야 하고, 그 방법도 공개적이고 의식적이기보다는 은밀하고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

집 안의 세계에서 생활해야 하는 여성들이 만날 수 있는 이성(異性)은 자연스레 가족 안의 남성이다. 아버지, 남동생, 남편 그리고 아들이다. 이 중에서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는 어렸을 때에만 애교(愛嬌)라는 이름으로 허용되고, 딸이 여성으로 성숙하면 신체적인 접촉 등이 엄격히 제한된다. 남동생과의 관계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친밀감을 표시하는 행위가 금기시된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과의 관계에서 성적 욕망을 제대로 만족할 수 없는 부인에게 공개적으로 애정을 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남성은 아들이다. 한국의 문화에서 아들은 어머니에게 단지 자식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은밀하게 만족되는 이성, 즉 연인의 의미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가족 관계에서 아들은 자식과 동시에 연인이고, 이 두 역할이 분리되지 못한다.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충족되지 않은 사랑의 욕구는 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족된다.

▲종로구세종로충무공이야기전시관교육실에서어머니와아들이복주머니를만들고있다.한국사회에서아들은어머니에게집안에서의사회적지위를높여주는존재이기도하다.이미지 확대보기
▲종로구세종로충무공이야기전시관교육실에서어머니와아들이복주머니를만들고있다.한국사회에서아들은어머니에게집안에서의사회적지위를높여주는존재이기도하다.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정성을 다해 키우고 사랑해 온 자식이자 연인(戀人)을 다른 여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적으로 보면, 한 남자를 놓고 지금까지 사랑해온 여성과 앞으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또 다른 여성 사이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자신의 분신이라고 여길 만큼 자기의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마음 속 깊은 수준에서는 어머니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따라서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어떤 며느리라도 곱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반면에, 결혼과 동시에 낯선 시댁 가족들 틈에서 ‘새아기’로 살아가야 되는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남편만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대상이고 보호막이다. 따라서 남편은 자신만을 사랑해야 하고, 이 사랑은 시어머니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배타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남편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아들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의 위치도 확고히 다질 수 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뒷방 신세가 된 부인은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의식적 무의식적 수준에서 며느리는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게 되고, 남편에게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를 요구한다.

남편과 부인을 중심축으로 하는 성욕성(性慾性)의 서구의 가족관계에서는 고부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부부관계를 통해 성적 만족을 얻기 때문에 또 다른 관계가 필요하지 않다. 서구의 남성들이 퇴근 후에는 일찍 집으로 들어가서 부인과 자녀들과 생활을 하는 이유는 집 밖의 대상을 통해 만족을 얻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생스럽고 신경이 많이 쓰이던 ‘돌봄의 의무’를 며느리에게 양도하고, 이제부터는 부부만의 ‘제2의 신혼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쁜 일이다. 며느리도 한 남자를 놓고 시어머니와 경쟁해야 하는 괴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성적 욕망을 충족하고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한국 문화는 지금 급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부자(父子) 중심에서 부부(夫婦) 중심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변화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예가 ‘호주제도’의 폐지다. 호주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부자 중심의 가족관계가 더 이상 그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바로 변화하는 시간에 대한 기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내 아들까지는 안 바뀌기를 원하지만,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지금 당장 변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작은 배는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항공모함이나 대형 여객선은 방향을 바꾸는 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그 갈등의 와중에서 제일 괴로운 사람은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이다.

고부간의 갈등이 없는 서구 문화에는 오히려 장모와 사위 사이의 갈등이 심하다.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는 우리 문화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갈등이다. 어느 문화이건 갈등은 있다. 다만 그 갈등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고 현명하게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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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고려대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