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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봉 어머니와 맹자 어머니 '같은 듯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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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봉 어머니와 맹자 어머니 '같은 듯 다른 길'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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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머니들이여! 좋은 학군이나


학원이 몰려있는 곳으로 이사 가려는


'맹모 삼천지교'의 어머니에서 벗어나라


자녀들이 독립적으로 클 수 있도록

상호 의존적인 끈을 먼저 끊는


'한석봉의 어머니'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로벌이코노믹=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국과 중국에는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후대에 귀감이 되는 어머니가 있다. 물론 이 땅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희생과 헌신으로 자녀들을 키워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에는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그리고 한국에서는 한석봉(韓石峯)의 어머니가 훌륭한 어머니의 모범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맹자 어머니의 교육방침은 자녀의 교육에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려주는 고사(古事)다. 맹자가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그러자 맹자는 늘 보던 것을 따라 곡(哭)을 하는 등 장사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맹자의 어머니는 이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시장 근처였다. 그랬더니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의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곳이 아니구나 하여 이번에는 글방 근처로 이사를 하였다. 그랬더니 맹자가 글을 읽는 흉내를 내며,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마침내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고 한다.

▲현대판맹자의어머니들이8학군이몰려있는대치동으로이사하기위해한건설회사가지어놓은건물모형을살펴보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현대판맹자의어머니들이8학군이몰려있는대치동으로이사하기위해한건설회사가지어놓은건물모형을살펴보고있다.
예나 지금이나 환경이 자녀의 교육이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잠재력을 가진 씨앗이라도 옥토에 뿌리고 잘 가꾸어야 큰 결실을 맺게 된다. 같은 씨앗이라도 자갈밭이나 가시덤불에 뿌리면 결국 말라죽거나 많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따라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서울)으로 보내라”라는 격언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성공하는 데는 환경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심리학에서 제일 핵심되는 공리(公理) 중의 하나는 “행동은 개인적 변인과 환경적 변인의 상호작용의 결과다”라는 것이다. 이 공리를 따르자면 환경은 행동에 영향을 주는 변인 중 반에 불과하다. 또 다른 반, 즉 개인적 변인과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성공에 영향을 주는 개인적 변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개인으로서 결정하고 책임지는 성숙한 성품을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적인 사람은 결코 성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

한 성인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제일 의존적이었던 대상으로부터 심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일반적으로 부모, 그 중에서도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한 개인으로서 결정하고 자기 삶을 책임지는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가족 문화는 어머니와 자녀, 특히 어머니와 아들이 심리적으로 성공적으로 분리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전통적인 우리의 가족 문화에서 어머니에게 아들이란 단지 자식이 아니다. 아들은 가족 내에서와 사회적으로 시집와서 대를 이어야한다는 막중한 의무를 달성하게 해준 은인이기도 하다. 동시에 성의 표현이 억압된 남편과의 관계에서 만족하지 못한 본능을 간접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연인이기도 하다.

이런 특수한 관계에서 어머니가 자녀를 곁에 두려는 욕망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이 마치 자신이 잘 된 것과 같이 느끼는 ‘자녀와의 동일시(同一視)’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동시에 자녀가 잘 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랑’이 ‘지배’와 ‘소유’와 구별이 안 되고 뒤엉켜 나타난다. 자녀를 마치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 된다.

자녀의 입장에서도 모든 것을 미리 알아서 해주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서 구태여 힘든 현실에 한 개인으로서 맞서야 하는 어려움을 택할 이유가 없다. 계속해서 어머니의 태중(胎中)에 있는 것처럼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며 그 품에서 의존적인 삶을 계속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느낀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은 비록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성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어린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소위 우리 사회에서 ‘마마보이’로 불리는 사람들이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우려는 어머니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한국 어머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석봉의 어머니의 위대함과 그 교육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어려서부터 서예에 뛰어난 재질을 보인 한석봉에게 더 많은 공부를 하도록 어머니는 아들을 절에 보냈다.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한 지 몇 년 후, 어느 날 석봉은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밤에 몰래 절에서 빠져 나와 집으로 찾아왔다. 돌아와서 이미 공부를 많이 해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하자 어머니는 석봉에게 어두운 방에서 자신은 떡을 썰고 석봉은 글씨를 쓰게 하여 둘의 솜씨를 비교해 보자고 하였다.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크기나 두께가 모두 똑같아 보기가 좋았는데, 석봉이 쓴 글씨는 서로 크기가 제각각이고 모양이 비뚤비뚤하여 보기가 흉했다. 이에 어머니는 석봉을 크게 꾸짖으며 자신의 떡처럼 눈을 감고도 글씨를 고르게 쓸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집에 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엄명을 하여 석봉을 다시 돌려보내 공부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 내려져 오고 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한석봉어머니떡썰기·글쓰기대회’를개최하기전참가자들에게행사에대해설명하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한석봉어머니떡썰기·글쓰기대회’를개최하기전참가자들에게행사에대해설명하고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떡을 썰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들 하나 잘 되는 것에 모든 힘을 쏟았던 석봉의 어머니는 얼마나 아들을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었겠는가? 아마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석봉의 마음과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서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애틋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성공을 위해 이 애틋한 마음을 단칼에 자르고 다시 자녀를 품에서 내보내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다.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한석봉은 명필로 그 이름이 대대로 내려오는 큰 인물이 되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실천하는 어머니가 얼마나 될까? 요즘은 ‘엄마살이’라는 말이 다 생겨났을 정도로 미리 앞서서 극성스럽게 자녀를 품에 끼고 안달하는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자녀들은 언제 어머니와의 의존적인 관계의 끈을 끊고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현실과 용기있게 맞설 수 있는 그 마음의 힘을 어디에서 키울 수 있을까?

▲서울양재동농협하나로마트에서열린'한석봉어머니의마음으로행운의떡국떡담기'행사에참가한시민들이바구니에떡을담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양재동농협하나로마트에서열린'한석봉어머니의마음으로행운의떡국떡담기'행사에참가한시민들이바구니에떡을담고있다.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머니부터 먼저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썰어 생계를 유지하는 자신만의 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석봉과 겨룰 수 있었고, 본인의 경험을 통한 지혜의 도움을 받아 애틋한 정을 끊고 석봉을 다시 절로 보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고등교육까지 받은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자녀와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자신만의 일과 세계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자녀의 양육에 ‘올인’하면서 자녀의 삶을 모두 떠안으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좋은 학군이나 학원이 몰려있는 곳으로 이사 가려는 ‘맹자의 어머니’에서 벗어나 소중한 자녀를 성숙하게 키울 수 있도록 상호의존적인 끈을 먼저 끊는 ‘한석봉의 어머니’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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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