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지난달 15일부터 17일까지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는 순헌무용단 예술감독 차수정(숙명여대 무용과 교수) 안무의 『한지위의 우리춤』 공연이 있었다. 그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로서 우리전통문화의 핍진성을 찾아 우리춤의 고품격화에 노력해온 거대한 우리 춤의 고리를 독해하는 고행의 과정을 걸어왔다.
설명보다는 암시로 춤의 품격을 높여가는 그녀는 전통의 고수와 공인되지 않은 변주 사이의 갈등을 내적의지로 극복한다. 그녀가 선보인 이번 춤은 ‘꽃밭에서’ 모두가 즐긴 자연주의적 춤의 양상을 보인다. 그림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하고, 자연을 상징하는 나비는 꽃이 피고, 춤이 진행됨에 따라 날아다닌다. 경이로운 풍광과 넉넉한 춤이 일체되는 춤판이었다.
그녀의 춤사상을 읽게 해주는 춤은 『제3의 시간 속으로』,『술이불작(述而不作』,『바다위의 푸른 달』,『물빛이 하늘빛을 담을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의 춤은 그녀의 스승, 제27호 승무 인간문화재 정재만의 지적처럼 ‘하늘의 기운을 머금은 대지’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원대한 꿈은 우리민족의 건국신화를 모티브로 단군왕조로 까지 춤 영토를 확장하는 일이다.
『한지위의 우리춤』은 오프닝을 포함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프닝으로 ‘난의 향기’가 그림처럼 진입한다. 여덟 명으로 구성된 국악관현악단이 포진하고, 좌우측에서 등을 든 여인 둘이 등장하면서 해설과 같은 정가가 불린다. 배경 막에 그려지는 그림, 풀벌레 울음소리 요란하고, 그 그림을 사선으로 음미하며 왕비가 등장한다. 악단과 관객들에게 인사하면서 징의 여운이 남고, ‘난향만리’, 차수정의 신비감을 더하는 춤은 궤도에 오른다.
1장: ‘난의 그윽한 향기’, 차수정의 ‘태평무’ 독무로 가을밤 산책을 나온 왕비가 보름달을 보며 나라의 번영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춤을 추며 기원하는 부분을 표현화 하여 재안무하고 장단에 변화를 더한 작품이다. 춤의 서정성이 강화되는 주발 소리, 가야금, 장고 등이 춤을 겨들면 탁월한 기량, 뛰어난 묘사의 춤은 관객을 압도하고, 완전한 집중을 이끌어 낸다. 가야금을 지나 사물은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세상의 도래가 오기를 기원한다. 인자함이 풍겨나는 태평무를 따라 대금과 피리, 해금이 운다. 조명은 완전 하이키라이트, 태평(太平)이다. 2장으로 연경되는 피리소리에 따라 등을 든 여인의 안내로 왕비가 퇴장한다. 연출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2장: ‘흥과 멋’, 소고춤 4인무가 벌이는 신명의 춤이다. 영상에는 달이 떠 있다. 악단의 북이 선도하는 리듬에 따라 소고 팀은 연기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정연기와 일체감을 보여준다. 원색의 색감을 의상, 숨겨진 보물들의 집중력, 사위와 자세, 들숨 날숨에 걸린 회전과 점프와 같은 동작들은 고품격 춤연기의 일면이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춤과 음악을 사랑하여 신명과 멋의 민족이라 하였다. 왕비가 보고 소원을 빌었던 둥근 달을 보며 부녀자들이 한 낮에 힘들었던 일과를 잊고 둥근 달과 같은 소고를 가지고 흥겹고 기분 좋게 추는 춤이다.
3장: ‘나비 살풀이’, 춤결이 고운 차수정의 ‘살풀이’ 독무다. 영상에 그려진 꽃을 만지면 그곳에 있던 살아있는 나비가 옷에 달라붙는다. 죽은 자의 넋이 나비로 환생한 것과 같은 신비감을 불러온다. 악단의 가객의 구음이 슬픔을 침화시키면 나비는 다시 날아가고 관객들은 슬픔의 몽환으로 빠져든다. 그림은 계속 그려지고 우리춤의 고품격은 기품과 여유로 다가온다. ‘나비 살풀이’는 살풀이장단으로 사랑하는 이에 넋을 나비에 비유하여 나비를 하늘에 띄우며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기원하며 추는 춤이다. 춤을 추는 사람의 내면의 세계를 가장 아름답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춤으로 심적인 고도의 기교를 보여준 춤이다.
4장: ‘내마음에 이는 바람’, ‘부채춤’ 4인무이다. 묘기에 가까운 춤연기를 보여준 작품이다. 꽃과 새를 그린 민화인 ‘화조도’를 보고 안무한 작품으로 한지부채 위에 그려진 꽃과 나비가 선율에 따라 나와 아름답게 노니는 모습을 춤으로 상징화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서양 악기인 행드럼을 사용하여 변화무쌍한 여성의 내면심리를 몽환적으로 풀어낸다. 부채에 그려진 그림, 배경 막에 그려진 그림, 그림이 된 춤꾼들의 화려한 연기로 뜨거운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5장: ‘소리의 풍류’, ‘장고춤’ 5인무다. 장고를 메고 객석에서 여인 4인이 등장하고, 차수정은 무대에서 등장한다. 느린 선율에서 급선회하는 매력이 있는 이 춤은 전승해온 농악놀이 중 설장구의 개인놀이를 경기 충청제 양도일에게서 박은하로 이어지는 가락과 춤을 바탕으로 재안무한 작품이다. 장구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로 이어지는 춤과 음악이 우리 선조의 풍류로 전해지는 것을 상징화하였다. 마무리 구성으로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때 배경 막의 그림은 매란국죽 모두를 이미 피워내고 있었고, 설장고의 현란한 연기는 손, 발 모두에 걸쳐 있었다. ‘꽃이 웃고, 나비가 따르는’ 구음은 분위를 고조시키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모두를 격정의 순간으로 이끈 『한지위의 우리춤』은 차수정의 최상위 춤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한 순간도 흐트러지게 하지 않은 명작이었다. 전 장르를 아우르며 신비적 힘을 가진 전통에 시메트리적 조형감, 색채감, 리듬감을 살려 자신의 작품에 예술적 정수를 투입,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결과는 경탄이다. 이런 의미 있는 공연은 국가의 브랜드이자 문화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