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기성세대에 반항하고 자기만의 세계 구축
기득권을 지키려 젊은이 핍박하는 '惡의 축' 인식
'타협은 패배' 인식 인류 혁명역사의 전위대 역할
'질풍노도시대' 부족하더라도 감싸주는 노력 필요
인지심리학자 피아제(J. Piaget)는 ‘조작(操作)’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인지발달 단계를 나누었다. ‘가역적(可逆的) 정신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조작은 유아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둘 더하기 셋은 다섯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섯에서 셋을 빼면 둘이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 집에서 유아원에 가는 길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유아원에서 집에 오는 길은 이야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아원에 데리고 가서 집에 가는 길을 물어보면 잘 대답한다. 반대로 집에서 유아원에 오는 길을 물어보면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아직 가역적 사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되면 이제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의 세계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경험의 영역으로 사고 능력이 확장된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數)’의 세계에서 벗어나 상징적인 기호로 계산할 수 있는 ‘수학(數學)’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제 청소년들은 구체적인 수를 사용하지 않고도 ‘x+y=z이면 z-y=x’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형식적 조작기(形式的 操作期)’로 들어간다. x와 y에 어떤 수라도 대입할 수 있으므로 계산의 영역이 사실상 무한대로 넓어진다.
비록 계산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이제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하여 직접 경험하지 못한 영역까지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착한 어린이가 되자”거나 “예절 바른 어린이가 되자”와 같은 구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이제는 ‘우정’, ‘정의’, ‘자유’ 등과 같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고, 그 개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청소년들은 권위적이고 수직적 관계를 맺어온 부모와 교사들에게서 벗어나 동등한 관계에서 사고할 수 있는 동년배들과 새롭게 경험하는 추상의 개념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한다. 소위 “개똥철학자”로 변한다. 이들은 지금까지 어른들이 알려준 사물과 세상의 의미에 대해 의심을 하거나 틀렸을 것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자신들에 대해 오히려 놀라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이들은 부모에게 저항하고 반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듯이 부모들의 생각과 기성세대에 대해 반항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고 노력한다. 기성세대와 현실 세계의 부정적인 측면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면서 자신들만의 이상세계(理想世界)를 꿈꾸기 시작한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엉뚱하고 괴상하기까지 한 주장을 열심히 하는 것도 이런 발달상의 이유에서 연유된다.
청소년들에게 기성세대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을 핍박하고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자신들을 부정하는 ‘악(惡)의 세력’이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타파해야 할 대상이다. 마치 기성세대들의 가치를 부정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이 노력하는지를 보여주어야만 자신이 얼마나 순수(純粹)한지를 증명할 수 있는 지표라도 되듯이 강렬하게 기존의 현실을 부정한다.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 생각할 능력과 겨를이 없는 청소년들은 이런 과정에서 폭력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 ‘타협(妥協)’은 ‘패배(敗北)’와 동의어다.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진 않는다”라는 모토를 지닌 청소년들은 ‘혁명(革命)의 전사(戰士)’의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실제로 혁명의 역사를 보면 맨 앞장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투쟁하는 사람들은 거의 젊은이들이다.
일견 무모하게 보이기조차 하는 청소년들의 이상을 향한 열정은 사회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발전을 이루는 힘찬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3·1 운동이후 최대의 항일민족운동으로 평가받는 ‘광주학생항일운동’도 그 도화선은 광주의 고등학교학생들에 의해 촉발되었다.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당시의 격문 내용을 보면 학생들이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검거된 학생은 우리 손으로 탈환하자./언론·결사·집회·출판의 자유를 획득하라./식민지 교육 제도를 철폐하라./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를 확립하라./용감한 학생, 대중이여!/최후까지 우리의 슬로건을 지지하라./그리고 궐기하라./전사여 힘차게 싸워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귀영달(富貴榮達)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하는 학생들의 결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 4·19혁명을 촉발시킨 김주열학생의 죽음과 고려대학생 습격사건에서도 보듯이 조국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젊은이들의 의분강개(義憤慷慨)한 기개는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성숙·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경륜과 젊은이들의 이상(理想)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저항과 이상을 단지 미성숙하고 사회 발전을 해치는 파괴세력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청소년들의 정열이 경험이 부족하여 거칠고 치기어린 모습으로 나타날지라도 그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과 이상은 사회를 발전시킬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고 부족한 점을 감싸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성숙한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이 결국 현실에서 달성될 때에만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꿈꾸는 것은 몽상(夢想)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이루어놓은 현실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고 자신의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나가야 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몸을 담그고 변화시켜 나가야 할 삶의 현장으로 보아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