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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여!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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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여!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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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시기


청소년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


그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과 기회를 주고 기다려야



▲아이들의꿈과희망을위해노력하고있는안양의한숲지역아동센터가지난8일안양아트센터수리홀에서늘푸른한숲세번째이야기-우리에게행복을주는사람이란제목으로공연무대를열었다.이미지 확대보기
▲아이들의꿈과희망을위해노력하고있는안양의한숲지역아동센터가지난8일안양아트센터수리홀에서늘푸른한숲세번째이야기-우리에게행복을주는사람이란제목으로공연무대를열었다.
청소년기의 발달과제는 ‘자아정체성(自我正體性)’을 확립하는 것이다. 전생애발달심리학자 에릭슨(E.H. Erikson)에 의하면 자아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Who am I?) 또 이 거대한 사회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am I?)”라는 질문에 나름대로의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실 한평생을 통해 확립되는 것이다. 결혼을 해야지만 배우자와의 관계를 통해 “나는 과연 어떤 남편(아내)인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자녀가 있어야지만 “나는 어떤 부모인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직장을 가지고 난 이후에야 “나는 과연 유능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정확히 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정체감들을 정확하게 형성하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하면 “나는 좋은 배우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상 무망한 것이다. 청소년기에 자아정체감을 확립하지 못하면 성인으로써의 삶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자아정체감을 영어로 ‘Identity’라고 하는데, 이는 ‘동일시(同一視)하다’ 라는 뜻의 ‘identify’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즉 자아정체성은 많은 동일시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어린이들은 수없이 많은 대상을 동일시하며 성장한다. 한 어린이는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등과 동일시해가면서 자신의 성품을 형성해 간다. 또 다양한 직업과 동일시하면서 성장한다. 나쁜 사람을 체포하는 광경을 목격한 어린이는 경찰관과 동일시하여 “나도 커서 경찰이 될꺼야”라고 다짐한다. 며칠 후에 불을 진압하는 소방관을 보고는 “나는 커서 소방관이 될꺼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후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 온 후에는 “나는 커서 의사가 될꺼야”라는 결심을 한다. 지금 이 어린이는 ‘경찰’ ‘소방관’ ‘의사’와 동일시를 한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어린이는 성장하면서 무수히 많은 대상과 동일시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동시에 경찰, 소방관, 의사, 교사, 군인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동화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결국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이 어린이는 이 많은 동일시의 대상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어떤 선택이든지, 선택은 ‘포기’를 의미한다. ‘경찰’이 되기를 선택한다면, 소방관, 의사, 교사가 되는 것을 포함하는 무수한 대상을 포기해야만 한다.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소장백상현)미지메솟희망원정단‘메아리’15명의청소년들과관계자들이최근태국메솟에서희망의운동화전달식및문화교류행사를개최했다.이미지 확대보기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소장백상현)미지메솟희망원정단‘메아리’15명의청소년들과관계자들이최근태국메솟에서희망의운동화전달식및문화교류행사를개최했다.
어느 일이나 완벽하게 100% 긍정적인 것은 없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어린이가 ‘교사’ ‘군인’ ‘공무원’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 어린이가 청소년이 된 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교사가 되면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군인도 마찬가지이고 공무원도 그렇다. 만약 군인이 되기를 결심한다면, 종은 점과 동시에 부정적인 점도 수용해야 한다. ‘조국을 지킨다’는 명예를 얻지만, 동시에 자주 이사를 다녀야하고 상대적으로 불편한 생활을 한다는 부정적인 면을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교사나 공무원이 되었으면 누릴 수 있는 좋은 점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의 부정적인 측면을 수용하고 포기한 다른 것들의 좋은 점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자아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선택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성장한다면 청소년기에 자아정체감을 확립하는 과제에 직면할까? 조선시대에 태어난 어린이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어린이는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농사를 지을 것이다. 고기를 잡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는 거의 대부분 어부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즉, 이런 환경에서는 자아정체감을 확립할 필요 자체가 없다. 당연히 이런 시대에서는 ‘청소년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자기정체감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이유는 이들 앞에 선택할 대상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직업을 당연히 물려받는 일은 거의 드물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자신과는 다른 일을 하기를 기대하고 교육한다. 아버지가 농부라고 해서 당연히 그 자녀들이 농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어부라고 해서 그 자녀가 어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설사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지 강요나 관습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는 부모의 직업에 관계없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똑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부모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회사에 다니는 부모를 둔 자녀는 자신의 부모가 회사에 다닌다는 것만 알지 실지로 부모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대개 부모의 회사에 가 본 적도 없다. 집에서도 부모들이 자녀에게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부모가 교사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지 부모가 교사인 것만을 알 뿐, 교직의 의미와 보람, 어려움, 그리고 실제로 행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경험할 기회가 없다.

무수한 직업 앞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보람은 무엇인지,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를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진 청소년들은 가능하면 그 선택을 미루려고 한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계명을 익히며 성장한 청소년들은 자신이 지금 하려는 선택 앞에서 ‘이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가?’에 대해 확신이 없다.

▲한국건축가협회가꿈다락토요문화학교의일환으로청소년을대상으로한행복을담는건축학교봄강좌를진행한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건축가협회가꿈다락토요문화학교의일환으로청소년을대상으로한행복을담는건축학교봄강좌를진행한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조급한 결정은 결국 후회할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을 뿐이다. 또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시행착오(試行錯誤)’를 통해 성장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진부한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실패 없는 성공이 있을 수 있다는 명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황과 실패를 딛고 올바른 자아정체성을 확립한 청소년들에게는 ‘충직성(忠直性, fidelity)’이라는 덕성이 보상으로 기다리고 있다. 충직성은 ‘비록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것을 굳게 지켜나가는 힘’이다.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여론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고 확신에 찬 삶을 이끌어 간다. 뿐만 아니라,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인가?’라는 내면의 불안한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앞을 보고 나아갈 수 있다.

청소년기에 자아정체감을 확립하지 못 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懷疑)하면서, 계속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일들을 전전(轉轉)하게 된다. 동시에 가능하면 선택하는 것을 회피하면서 ‘성인아이’로 살아가게 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웠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빛나는 그 어떤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웠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은 청소년들에게 바치는 격려와 당부(當付)의 시다.

▲한성열고려대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고려대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